해가 떠 있을 때는 도저히

by Amber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조금의 집중력도 발휘할 수 없다. 글자들이 흩어지고 문장들이 널을 뛴다. 단어가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이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찰할 수 없다. 인물이 슬프다고 말해도 그녀가 왜 슬픈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아마 아주 오래된 속독 습관이 문제인가 해서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려지는 영어 책을 집어들어보았다. 별반 다르지 않았다. 눈에 정확하게 들어오는 몇몇 문장만이 마음에 들었고 또다른 도시를 유영하듯 여행하고 있다는 이야기 속 인물이 어떤 심상으로 카페에 앉아 있는지 도통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런 때에 책을 읽는 것은 책에게 실례라는 생각이 든다. 중학생 때 나는 같은 책을 세 번씩 빌리는 아이였지만 이제는 너무나 다각도의 삶을 살고 있어서 비싼 돈을 주고 산 책도 한 번 다 읽기나 하면 다행이다. 두 번 읽을 것도 아닌데, 처음이자 마지막인 정독 기회를 이런 식으로 날려버린다면 책과 내가 지불한 책의 값과 내가 쓰고 있는 이 시간의 값에 걸맞는 쓰임새가 아닐 것이다.

책을 펴고 있어서 저 매미 소리가 저렇게 크게 들리는 건가 싶어서 책을 덮어 보았지만, 그대로다. 으레 여름의 소리라고 불리는 저것을 나는 아주 싫어했다. 단언컨대 인생의 단 한 순간도 좋아한 적이 없다. 모종의 이유로 나는 지금보다 어렸을 때 여름을 더 싫어했다. 얼마전에는 십년 넘게 연락이 끊겼던 친구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반가운 얼굴의 그녀는 내가 지독하게 여름을 싫어했던 것이 기억났다고, 이 더운 여름에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나는 잘 지내려고 온갖 애를 쓰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 여름 내내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저런 여름의 소리에 사랑하는 독서 시간을 방해받는 날은 도저히 잘 보냈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말한다면 그저 타인을 안심시키기 위한 구실밖에는 안 될 것이다.

여름의 소리가, 여름의 햇빛이, 여름의 열기가 나를 쫓아온다. 그저 머리 위에서 응당 그럴 시기가 왔다는 듯 퍼부어지고 내리쬐일 때는 쫓아온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여름은 그저 언제나처럼 와야 할 시기에 왔고, 이 행성의 이 위도와 이 경도에 위치한 지역은 어쩔 수 없이 아주 취약하고, 나는 이 위도와 이 경도에 위치한 지역에 태어난 죄, 죄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기만적이지만 땀이 줄줄 흐르는 고통에 녹아내릴 때는 어쩔 수 없이 입밖으로 나오고 마는 그 단어를 읊조리며, 여기에 태어나고 여기를 끝내 벗어나지 못한 죄로 가만히 견디며 최대한 빨리 이 시기가 지나가기만을 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좇아온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저번 주가 너무 시원했던 탓이다. 확신할 수는 없어도 슬슬 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잠깐 그 자리에 머물렀다 가더라도 다시 다가오지는 않을 줄 알았는데. 아마 실제로 그렇기는 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온도가 많이 내려갔으니까. 하지만 저 매미 소리, 자연과 공존하는 것이 인간의 몫이 아니냐고 생각하면서 벌레를 보면 기겁하듯 난리를 치는 나같은 모순적인 인간은 도저히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저 매미 소리는 어째서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일까? 매미 소리가 자꾸 쫓아온다. 나는 밤으로 숨었지만 밤은 영원하지 않아 나를 영원히 숨겨주지 못한다.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으므로 나는 어디에도 영원히 숨을 수 없다.

밤 열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가 사주 오행 상 수의 시간이라는 말을 보았다. 중학교 2학년 이후 내가 그 시간에 잠들어 있었던 날은 다 합쳐도 일년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시간만 되면 나는 괜히 신이 나곤 했다. 해는 졌고, 보통은 그 날의 일과가 끝난 상태고, 저녁 먹은 것도 다 소화되어 더부룩하거나 졸리지도 않은 시간. 그 시간은 책이 가장 잘 읽히는 시간이다. 무엇을 봐도 머릿속에 바로 들어오는 시간이다. 들어온 것이 잘 나가지도 않는 시간이다. 가장 효율이 좋은 시간이다. 그런 인생의 시간을 어떻게 잠 같은 것으로 낭비할 수 있을까? 늘 좋은 꿈을 꾼다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야. 내 사주에 있는 수水는 70이 넘는다.

여름에는 특히 더 좋은 시간이다. 그 시간까지 더울 때도 많지만 어쨌든 해는 확실하게 진 시간이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열 시가 되어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여행한 적이 있다. 여행이라 마냥 즐거웠지만 돌이켜보니 아주 기껍지는 않았다. 열 시에는 해가 져야 한다. 그럼 책을 읽을 수 있다. 영화도 드라마도 볼 수 있다. 지루함에 몸부림치다 깊은 생각을 하고 깊은 생각에서 도망치기 위해 영화를 보다가 흥미가 떨어져 다시 지루함에 몸부림칠 수 있다. 그것들 모두 해가 졌을 때만 할 수 있다. 해가 떠 있을 때는 책도 읽을 수 없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았다가는 이상한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며, 밝은 낮의 지루함은 사치에 가깝다.

매미가 시끄러워 책을 못 읽겠다고 이렇게나 길게 투덜대고 있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소리가 멈췄다. 그래도 소용없다. 창밖이 아주 밝다. 이것 역시 견디기 어렵다. 새로 꾸민 방에는 커튼을 해 달았지만 햇빛을 완전히 막아주지 못한다. 창밖이 아주 밝고, 나는 도저히 아무것도 묵상하거나 고찰하거나 기념하거나 애도하거나 사랑할 수 없다.


오늘은 8월 11일이고, 여름의 끝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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