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돌아오지 마, <시네마 천국>

1988, Dir. Giuseppe Tornatore

by Amber



어디 가서 영화 좋아한다는 말을 안 한다. 정말로 그렇게까진 좋아하지 않아서다. 나는 영화보다 영화관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영화다. (영화를 더 좋아하는 사람에겐 차라리 <파벨만스>나 <바빌론>을 추천한다) 영화관. 시네마. 나를 현실에서 분리시켜 고통을 잊게 하고 환상 속에 가둬주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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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말로 파라디소. 영어로 파라다이스. 한국 말로는 천국. 시네마 천국, 시네마 파라디소란 건 어떤 의미일까? 영화가 가득한 공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상향? 현실의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낙원? 그렇다면 시네마 파라디소라는 말은 동어반복이 된다. 시네마는 그 자체로 파라디소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오직 현실에 없는 가상의 아름다운 이야기 감상이라는 목적만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천국을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는 사람이 바로 영사기사다. 그가 못 배운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자조하든 말든 관객은 모두 알고 있다. 영사기사 알프레도의 일은 신성하고 고귀한 일이다. 파라디소를 파라디소로 만드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의 권능 아래서라면 시네마 파라디소는 더 이상 물리적 공간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가 영화를 선물하는 곳이 바로 파라디소다.


파라디소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알프레도가 움직이던 시네마 파라디소의 시대, 토토가 물려받은 누오보(새로운) 시네마 파라디소의 시대, 그리고 마침내, 아무도 찾지 않아 온전히 끝나버린 극장의 시대. 어쩌면 한 시대를 끝내는 방법은 그걸 불태워버리는 것뿐인가. 한순간에 무너트려버리는 것뿐인가. 알베르토의 낡은 영사실은 말 그대로 활활 불타올랐고 사랑에 마음을 열렬히 불태웠던 토토는 채도 잃은 눈으로 영사실을 떠나 입대한다. 30년 후의, 다 쓰러져 가는 누오보 시네마 파라디소 건물은 철거를 위한 폭탄에 힘없이 무너진다. 어쩌면 그런 방법뿐인가. 자연스럽고 받아들이기 편한 한 시대의 종말이란, 충분한 예고 후에 서서히 찾아오는 새 시대의 시작이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걸까.


파라디소를 사후세계의 천국이라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지만, 한국어 번역이 천국인 만큼 글자 그대로를 받아들여 생각해보기도 했다. 영화관은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필름 속에 붙잡아두고 계속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환상인 척 관객들을 속이는 곳이다. 이미 죽어버린 시간, 이미 완결을 맺은 이야기가 영화관에서는 계속된다. 시네마 파라디소에선 시간이 멈출 뿐 흘러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생동하며 움직이지 않고 자리에 앉아 이미 죽어버린 시간을 따라간다. 시네마 파라디소 밖으로 나오면 관객들은 다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자신의 살아있는 시간을 살지만, 영사기사에겐 그 죽어버린 시간을 끊임없이 되감는 것이 자신의 현실이므로, 어떻게 보면 영원히 죽어버린 시간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발전의 여지가 별로 없어보이는 시골 마을, 그곳의 작은 시네마와 더 작은 영사실... 자신만의 이야기와 드라마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 젊은 청년이 계속해서 회귀할 만한 공간이 아니다.

토토는 널뛰는 감정들과 생생한 현실에 즐거워하고 상처받으며 자기만의 시간을 살아가야 했다. 타인의 꿈과 환상으로 범벅된, 죽은 시간 안에 갇힌 지상낙원에 가만히 안주해서는 안됐다. 토토가 어릴 때 알프레도는 낡은 필름과 영사기를 잘못 만졌다가 불을 낼까 염려해 어떻게든 영사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청년이 된 토토는 낡은 시간과 지나버린 감정에 붙잡혀 제 젊음을 다 태워먹고 그대로 소진될 수도 있었다. 영화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바로 알프레도 자신처럼. 사랑하는 아이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어른의 마음에는 얼마나 짙은 농도의 후회와 반추가 들어 있는가? 알프레도는 토토를 꽉 붙잡고 단단히 이른다. 절대 돌아오지 마. 이 작은 마을로 돌아오지 마. 이 낡은 건물로, 이 좁은 영사실로, 이 지나버린 시간들로 돌아오지 마. 넌 잘 모르겠지만, 아주 위험하단다.

꼭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은 오히려 큰 감흥을 주진 못했다. 어른들이 아이한테 조언할 때 으레 하는 말이지. 토토가 하고 싶은 걸 못 찾았거나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돼서 주저앉고 있었던 건 아니잖아. 혹은 본인이 젊은 시절 못다한 꿈 같은 게 있으셨는지도. 그럼 그건 사실 토토보다는 본인을 위한 말이고.


자투리 필름 조각들을 모아두는 토토의 보물상자는 오늘날의 어떠한, 클립 아카이브형 소셜 미디어 계정과 비슷한 면이 있다. 좋아하는 영화, 드라마, 혹은 다양한 영상에서 마음에 들거나 재미있는 부분들을 짧게 짧게 잘라 업로드하는 것이다. 토토가 필름들을 상자에 모아두고 자기 전에 소중히 꺼내 들여다보듯이, 그런 소셜 미디어 계정들 중 다수의 운영 목적도 보고 싶은 부분을 보고 싶을 때마다 다시 보려는 데에 있을 것이다. 또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에서, 알프레도가 잘라 두었던 키스씬을 모두 모아 붙여 하나의 필름으로 만들어둔 것은 오늘날 팬덤 문화에서 성행하는 비디오 에딧 제작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이야기가 담긴 영상물을 좋아하는 방식은 그 매체와 도구가 바뀌었을 뿐 그 양상에는 큰 변화가 없는 듯 싶다.


이 필름을 다 네게 선물로 주겠어. 하지만 일단 여기 두고 밖에 나가 있어. 그것이 알프레도의 약속이었다. 토토도, 관객인 나도 잊었던 그 약속을 알프레도는 잊지 않았다. 일단 내가 가지고 있을게. 너는 바깥 세상을 보고 와. 그리고 네가 영사실에서 사고를 치지 않을만큼 크면, 네가 이 조그만 시네마 파라디소와 구닥다리 시골 마을에서 마음을 다치거나 과거에 붙들리지 않을만큼 크면 다시 돌아와. 그러면 이 필름을 네게 선물로 주겠어. 나는 아직도 내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어른들이 원망스럽다. 어른이 된다는 건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 아니면, 약속을 해놓고도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알프레도는 토토와의 약속을 지켰다. 시험을 도와주면 영사 일을 알려주겠다는 약속을 지켰고 엘레나와 얘기할 동안 신부님을 붙잡아둬주겠다는 약속을 지켰고 잘려나간 환상들을 모아 두었다가 네게 주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내가 시네마 파라디소를 지키던 시절, 나의 시대. 지금은 불타 사라지고 없는 죽어버린 나의 시간... 그것들을 모아 너에게 줄게. 내 시대가 저물어갈 때에 천국의 일부가 되었다가 이내 전부가 되어버린 너에게 줄게. 마침내 언젠가, 네가 다시 이 천국에 돌아올 수밖에 없을 때에...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해놓고 나면 어쩐지 많이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잖아. 웬만한 영화는 다 보고 꿰고 있어야 할 거 같잖아. 나는 영화광이라면 누구나 봤다는 '고전 영화'들 중에 본 게 거의 없고(사실 그래서 요즘의 재개봉 열풍이 좀 반갑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정말로 땡기면 봐야지 하고 열심히 미뤘더니 재개봉이 제발로 굴러왔다. 이래서 존버는 승리한다는 거다.

하지만 '고전 영화'라는 것은 교과서적인 면모가 있다는 뜻이고 그 말은 이미 후대의 많은 영화들에서 오마쥬되거나 재생산되거나 비슷한 정서와 전개를 물려주게 되었다는 뜻으로, 즉, 최근 영화만 좀 깔짝거린 나에게 사실 막 아주 신선한 이야기 구조라곤 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좀 더 어렸을 때 봤으면 더 큰 감명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은 죽은 시간이고 오늘의 나는 남은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나니까 어쩔 수 없이 그냥 만족해야겠지? 그리고 어렸을 때의 나는 시네마가 내 파라디소라는 것도 몰랐으니까.


요즘 한국 영화관 산업이 진짜 망할 거다 뭐다 말이 많다. 나도 좀 걱정되고, 티켓 값도 당황스럽고, 서비스 수준도 짜증나긴 하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며 겸허해졌다. 어쨌든 내 천국이 여기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시네마 파라디소처럼 폐허가 되어 무너져버리기 전에 통신사 할인 받아서 한 편이라도 더 보러 가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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