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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Dec 28. 2022

작은 응원

Dear my husband, 

오늘 아침 평소보다 눈이 일찍 떠졌다. 밖이 어두워서 아직 이른 새벽인 줄 알았더니 아침 6시 50분. 아이가 깨지 않게 조용히 발을 떼 본다. 방문을 열고 나오자 거실의 찬 공기가 제일 먼저 반겨주는데 그리 달갑지 않다. 어두운데 춥기까지 하니 몸이 절로 움츠러든다. 7시가 이렇게 어두웠던가. 집이 조용한 거 보니 남편은 이미 출근했나 보다. 예전에는 겨울 새벽 시간을 사랑했다. 일어나서 담요를 두른 후 커피를 내리고 책상에 앉으면 뭘 하든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고 고요해서 모든 잡념을 떼어내고 오롯이 나만 생각할 수 있는 새벽을 사랑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새벽시간을 사랑할 수 있었던 건 매일 출근이 필요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새벽에 출근하기 위해 일어나는 건 정말 싫었을 거다. 보호막이 없는 3.3% 인생이지만 이건 좋았다. 이렇게 생각하니 오늘 출근 준비하고 나갔을 남편이 왠지 짠해졌다. 오늘 갑자기 왜라고 반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랜만에 느껴본 새벽 아니 새벽 느낌을 느끼니 온기 없는 거실에서 홀로 출근 준비했을 남편이 생각났다. 이사 와서 아이의 방이 생긴 이후부터 난 아이 방에서 잠을 자고 있다. 남편의 출근 시간대가 남들보다 좀 이르긴 하지만 그래도 옆에 있을 땐 오가는 인기척을 느끼며 일어나서 배웅이라도 해줬는데 요즘은 미안하게도 아침에 얼굴 보기 힘들다.  


얼마 전 회식을 한 남편은 10시 넘어서 퇴근 중이라며 알림용 톡을 보낸 후 내년 승진은 힘들 것 같다고 그다음 톡을 보냈다. 아이를 재우던 중이었는데 미리 보기로 흘러나온 그의 톡에 쿵하고 마음이 내려앉는다. 승진을 못한다는 말 때문이 아니라 그냥 툭 던진 문자 속에서 이 사람의 씁쓸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이 몰래 이불속에서 다급하게 톡을 보낸다. 


발표가 나왔어?

아니 


상처받지 않기 위해 보호막을 만들고 있는 거보니 이미 기대를 많이 하고 있음도 느껴졌다. 미리 상처받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발표전이니 기다려보자고 희망적인 말을 내놓기도 싫고 벌써부터 안 되는 걸로 위로하고 싶지도 않았다. 프리랜서로 조직생활을 모르고 승진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으로 살아오면서 이는 내가 알 수 없는 고통이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사랑하는 아빠와 동생이 스트레스받는 걸 보면서 살았기에 얼마나 피 말리는 일인진 잘 알고 있다. 또 내 수업을 받던 직원들이 조직개편이나 승진 발표에 웃고 우는 걸 많이 봐왔다. 임원 분들은 인사도 못하고 하루아침에 수업에 못 나오시기도 했다. 멀리서 보면 조직 안에서 매년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로 보이지만 그 안에 있는 당사자들은 피눈물이 난다. 눈앞에서 누군 되고 안되고에 목이 메고 숨겨지지 않는 퉁퉁 부은 눈으로 출근해야 하는 일상은 쓰다. 아빤 결과가 안 좋을 때마다 엄마와 속초 바다를 보며 쓰린 속을 달랬다고 했고 동생은 인사 시즌엔 짜증, 초조, 절망, 분노 등 널뛰는 기분으로 보냈다. 


괜찮다고 이야기해도 절대 괜찮아지지 않는 마음을 어떻게 위로할까.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그 위로의 방법은 없다. 타인에게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들어도 스스로가 마음을 달리 먹지 않으면 이것에서 자유로워지기 어렵다. 내가 하는 백 마디의 위로보다 남편의 단단한 결심 하나를 못 이긴다. 난 남편이 이 시기를 현명하게 보냈으면 한다. 세상 일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기다리는 끈기, 어쩔 수 없지하고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스스로를 믿어주는 너그러움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꿈을 꿨다. 꿈에 남편은 큰길 한가운데서 촉촉하게 비를 맞고 있었다. 꿈같은 건 믿지 않는 사람인데 꿈에서 깨자마자 바로 검색을 해봤다. 승진하거나 하던 일이 잘 풀리는 좋은 꿈이란다. 개꿈 전문가로서 크게 자랑할 꿈은 아니지만 오늘도 차가운 겨울 아침을 버티고 묵묵히 출근길에 나서는 남편에게 작은 응원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당신은 오늘도 역시나 멋지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승진에 울고 우는 직장인들을 위해 프리랜서 나부랭이가 힘내라고 외쳐본다. 

당신의 때는 옵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어느 순간에 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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