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표현방식과 언어는 나의 것과 다른 것일뿐
11월 중순에 막역한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5박 6일 일정으로 잠시 한국을 다녀왔다. 항상 몇 개 없는 휴가를 쪼개고 붙여 쓰다보니 출발시간과 도착시간이 새벽인 저렴한 비행기 티켓을 이용하곤 한다. 새벽 1시에 호치민에 도착해 입국 심사를 하고, 택시를 잡고 집에 오는 여정은 생각보다 고되다. 그래서 항상 ‘엄마가 싸준 반찬만 냉장고에 넣어두고 바로 자야지’하는 생각과 조금은 지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그런 마음으로 집에 도착해서 캐리어를 열면, 갑자기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엄마가 넘치도록 싸준 반찬과 먹을거리들이 잔뜩 차있다. 한국에서 호치민으로 출발하는 날이면, 이것저것 짐을 싸느라 바빠서 엄마가 뭘 싸준지도 모르고 넣어준대로 들고 오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엄마가 곶감 몇 개 넣겠다, 떡은 냉동실에 넣고 데워 먹어라 등등 뭐라고 얘기하신 게 많았는데, 뭘 넣어주셨는지 호치민에 와서야 제대로 살펴보게 되었다. 내가 먹고 싶다고 했던 깻잎 반찬, 내가 좋아하는 낙지 젓갈 등을 작은 박스가 터지도록 담아주셨다. 내가 하나라도, 더 많이 가져갔으면 하는 마음에, 행여나 또 너무 무거운 짐이 될까봐 작은 박스 2개에 꽉꽉 눌러서 담아주신 마음이 다 느껴졌다. 가끔 한국에 갈때면 이렇게 엄마의 사랑과 애정을 느끼곤 한다.
지금은 내가 경제활동을 하는 직장인이지만, 한참 알바를 하며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나에게 경제적인 서포트를 해주지 못했던 부모님이 야속할 때도 있었다. 그럴 수 없었던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어린 마음에 그게 서운했다. 나이먹기가 무색하게 머리가 커서도 그때 생각하면 왠지 모를 서운함이 밀려오곤 했었는데, 해외에서 타지 생활을 하며 그 서운함이 많이 옅어졌다. 가끔 1년에 한두번씩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엄마 아빠가 보여주는 사랑들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한국에 갈 때마다 나보다 더 바쁘시다. 계속 요리를 만드시고, 과일을 사오시고 깎아주시고, 청소 설거지도 못하게 하시고는 맛있는 것 먹고 잘 놀고 쉬다가 가라고 하신다. 엄마는 그렇게 하고 싶으신 것이다. 그게 엄마의 사랑이자 표현방법이었다.
아빠도 마찬가지이다. 엄마 말로는, 아빠는 우리 삼남매의 기저귀를 한번도 갈아준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육아에는 소홀했던 아빠겠지만, 그리고 실제 내 대학교 졸업식도 바쁘다며 오지 않으셨지만, 겨울에는 항상 붕어빵을 잠바 가장 안쪽 품에 넣어오시곤 했다. 우리한테 따뜻한 붕어빵을 주고 싶으셨다고 한다. 이번에 한국에 갔을 때도 아빠는 붕어빵을 품 가장 안쪽 따뜻한 곳에 넣어서 나에게 사다 주셨다. 이것도 아빠의 사랑이자 표현방법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다.
부모님이 나에게 느끼는 마음도 비슷하지 않을까? 나 역시 엄마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놓는 다정다감한 딸은 아니다. 하지만 엄마가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내가 나서서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이번에도 엄마가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같이 인터넷 서칭하여 주문해드리고 왔다. 내가 그렇게 했던 이유와 마음은 엄마에 대한 사랑과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다정다감한 딸이 아닌 것 대해 부모님이 나한테 서운하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나의 표현 방식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타지 생활을 하고 나서야 이제 좀 알게 됐는데 말이다.
나의 부모지만 그들의 표현 방식과 언어가 나의 것과 다른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내가 부모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표현과 형태가 전부가 아니다. 내가 내 관점으로만 생각하고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다른 사람의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친구들, 애인, 직장 동료들, 그들도 그들만의 언어와 표현으로 나를 위하고 있음을 항상 생각하려 한다. 그렇게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올해 휴가는 다 소진하여 내년쯤 다시 한국을 방문할 계획을 세워볼 예정이다. 그때는 엄마에게 엄마가 원하는 방식대로 표현을 해보려고 한다. 회사에서 힘든 일, 남자친구랑 싸운 일, 미주알고주알 얘기하고 엄마에게 친근하게 대해봐야겠다. 엄마가 나에게 준 사랑을 엄마도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