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눗방울에도 부서져버릴 연약한 날이 있다

환상, 메모어 19기

by 공백

비눗방울에도 부서져버릴 연약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은 꼭 점심을 홀로 먹고는 했다. 간단한 샌드위치를 포장해서 공원에 나가 벤치에 걸터앉는다.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하루의 정오. 바쁘게 공원을 산책하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홀로 음악을 듣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온전히 홀로이지만 고립되지 않는다는 작은 위안을 얻기도 했다. 거칠게 빠져나가는 썰물과도 같이 오랫동안 쌓아두었던 슬픔을 따뜻한 햇살 아래 내려놓는다. 그게 뭐 중요하다고. 우선순위에 따라 나열한 하루의 일과 중 '감정을 다루기' 는 가장 후순위로 밀려났다. 그 밀려난 감정은 마음 가장 안쪽에 차곡차곡 쌓인다. 더이상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이 쉽지 않을 때, 말 하나, 시선 하나에도 기꺼이 주저앉을 준비를 한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슬픔이라 어찌 할 수 있으리랴. 하루의 대부분을 지하철과 회사에서 보내는 출퇴근 직장인에게 숨을 곳은 마땅하지 않다. 그저 화장실 한 켠, 회의실 구석 자리 한 켠, 혹은 그 마저도 허용되지 않는 바쁜 시즌에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운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프로페셔널하지 않다라는 피드백에 나는 속으로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까. 어린아이의 치기어린 마음으로 휘뚜루 말아 던저버리기엔 너무나 크고 무거운 마음이었다. 자연스레 올라오는 감정을 감추면서 나는 의레 상상했던 어른이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일의 효율적이고, 빠른 완성을 위해 다른 변인은 통제하는 어른. 악조건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어른. 너무나 멋져 보였던 어른들의 모습을 제멋대로 상상하고, 따라하고, 서툰 나를 감추었다.

그러다 비눗방울처럼 펑! 터지는 날을 마주한다. 혼자 야근하다가 펑!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펑! 혹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펑! 그렇게 모질지 못한 내가 싫었다. 회사를 떠나시는 상무님을 마지막으로 보며 펑!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회사에서 길을 잃다가 쫓겨 나가시는 분들을 볼 때 펑, 그리고 잘하고 싶은 마음 하나 다루지 못하고 불안해하다가, 일을 그르치는 스스로를 볼 때, 함께 일하는 팀원들에게 실망감을 줄까봐, 더 일찍, 더 많이, 더 전략적으로 일하며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에 삶의 속도를 올리다가 지친 스스로를 볼 때 펑!


아침저녁으로 눈물샘이 마르지 않았던 날들이 있었다. 때로는 감추고, 때로는 드러내며. 지나가는 말 한마디도 마음에 내려앉는 날. 나는 그 떨림과 울림은 숨기지도, 부정하지도, 혹은 그저 '슬프구나'라는 말로 퉁치고 넘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어떤 상황이나 언어들이 마음을 가라앉게 했는지,

그때 감정은 어디서 느껴졌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지금 그런 사람이 마법처럼 짠 하고 될 수는 없지만, 이상향을 향한 여정에서 어떤 보폭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걸음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다정한 질문을 던진다. 글자를 하나하나 적는다.

그마저도 쉽지 않은 날이 있다. 다 내려놓고 침대에 털썩 눕는다.

눈을 감는다. 슬픈 과거, 희망찬 미래.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으로 들어선다.

공허, 고요,

어둠, 없음,

그저 있음.

그때 써내려간 글은 내일의 나를 살아가게할 것이다.

그때 마주한 감정은 여러 번 나를 괴롭게 할 것이다.

그 끝에 마주한 어둠은 비눗방울도, 연약함도 그리고 부서짐마저 감싸안아주는 요람과도 같을 것이다.


무뎌져서 단단해지기보다는, 차라리 부서져서 연약해지는 이가 되기를 바랐다.

부서져 버릴 연약한 날이 찾아올 때마다, 이미 부서져 버린 후의 나를 생각한다.

부서짐을 아는 자만이 부서짐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고, 부서진 자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