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이민 20년째 살아보니
2006년 1월 처음 카타르 도하에 입성했습니다.
2월에 있는 대학교 졸업식 참가도 포기하고 날라온 스물세살의 해외취업이민이었습니다.
2001년에 911 테러가 일어나고 중동에 대한 이미지는 테러리스트 그 자체였고
우리나라에도 2004년에 고 김선일씨 사건이 일어나면서 알자지라 방송국이 유명세를 탈 때였습니다.
그리고 알자지라 방송국 본사가 있는 카타르 도하로 간다고 하니 해외취업을 해서 나간다고 해도 주변에서는 하나같이 걱정어린 시선들 뿐이었습니다.
거길 니가 왜가...
왜 하필이면 중동이야..
1000대 1의 경쟁력을 뚫고 입사한 외항사 승무원이 된걸 축하해 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왜 대학나와 버스차장 같은걸 하냐고 하셨으니까요. 하긴 지금껏 저에게 쏟아부은 교육비와 유학비의 종착역이 항공 승무원이라는것이 마땅치 않으셨을것도 같습니다.
그렇게 마땅한 축하도 받지 못하고 날아온 도하는 또 어찌나 척박하던지요.
사실 당시 저도 정보가 부족해 두바이는 기름 한방울 안나오고, 또 이제 빚더미에 앉아 지는 해라면,
도하는 천연가스 보유량이 세계 최대인, 이제 떠오르는 해다! 라는 에이전트 말에 저의 미래를 걸고 출국한것이었죠.
그러나 당시 도하의 모습은 사실 그동안 제가 살아온 서울이나 미국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마치 북한에 떨어진 느낌이었습니다.
당시 세계최고 속도를 자랑하던 한국 인터넷 속도를 전혀 따라오지 못하는 속터지는 인터넷 속도에, 한국에서 사용하던 삐까뻔쩍 예쁜 최신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하고 제일 싸구려 노키아 폰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죠. 와이파이라는것은 존재하지도 않아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20분가량 걸어가 담배연기 자욱한 한 피씨방에서 겨우겨우 네이트온이나 MSN 메신저로 한국 친구들과 연락을 할 수 있었고, 전화카드를 사서 스카이프로 눈물을 훔치며 가족과 통화를 하고는 했습니다.
미래가 창창하다던 도하는 제 눈엔 아직 멀어보였습니다. 그대신 첫 이니셜 트레이닝동안 트레이닝 센터를 빌려쓰러 잠시 날라갔던 두바이는 도하에 비해서는 거의 미래도시같았습니다. 저는 도하에 취업하자마자 이직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물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은 도하에서 월드컵을 개최하기도 하는등 승승장구 하며 환골탈태해버렸죠. 당시 이미 많이 개발된 상태였던 두바이를 거의 따라잡았다고 하니 정말 어마어마한 자본력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세계 최고 발전속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모든것은 타이밍인지라, 제가 이직을 하려던 시기에 두바이 옆동네 아부다비 베이스 항공사에서 활발하게 채용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부다비든 두바이든 일단 카타르를 벗어나자는 마음으로 아부다비 베이스 항공사에 이직을 하였고, 곧 두바이에 거주하며 서울-인천 거리인 아부다비-두바이를 왕복하며 일을 하게됩니다.
그리도 어렵게도 중동을 돌아돌아, 두바이에 입성한것이 2008년이니, 벌써 18년동안이나 두바이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습니다.
모두 이곳에 올땐 같은 마음일거에요.
수영장 딸린 아파트 제공에 텍스 프리 월급, 돈과 경력을 쌓으러 많으면 한 4년까지만 살다가 더 좋은나라(?) 또는 우리나라로 이직하려는 것이 우리모두의 첫 계획입니다.
그런데 어라...?
어찌저찌하다보니 여기서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애도 둘이나 낳고, 대학도 다시 다니고 취업도 다시 했다고요?
이곳은 과연 어떤 곳이길래... 한번 발담그면 빠져나오기 힘든 곳인건가요.
이곳에 살아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합니다. 모르면 몰랐지 알면 빠져나가기 힘든곳이라고... 마치 개미지옥같다고도 합니다.
슬기로운 두바이 생활, 지금부터 저와 함께 탐험해보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