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만난 ‘어른의 동심’

일상 속에서 소소한 크리스마스 낭만 실천하기

by hler moong



아직도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만 들어도 나처럼 마음이 괜히 설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별일 아닌 하루처럼 흘려보낼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크리스마스’라는 단어에는 몽글몽글한 감정이 먼저 올라온다. 어릴적 외국영화에서 흔히 보던 눈 덮인 마을과 반짝이는 조명들, 꼭 동화속 마을에 들어온 것 같은 그 풍경을 나는 아직도 마음 어딘가에 품고 있나보다. 이렇게 크리스마스는 나같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아마 아직도 ‘꿈’같은 시간으로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내가 겪은 수많은 여행과 시간들 속에서도 유독 해외에서 맞았던 크리스마스의 장면들이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남아 있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머릿속에서만 늘 그리던 크리스마스가 현실이 되었던 순간이 나에겐 딱 두번 있었다. 하나는 20대에 캐나다 어학연수를 하던 때였고, 또 하나는 30대에 떠난 세계여행 중 유럽 크리스마스마켓을 만났을 때였다.


캐나다에서 처음 맞이한 크리스마스의 인상은 ‘낭만’이라는 말로도 다 담기지 않을만큼 강렬했다.

내가 머물던 캐네디언 홈스테이 근처 마을은 11월 중순만 되어도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걸리기 시작했고, 해가 지면 집 안뿐 아니라 집의 외관까지 온통 반짝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라면 집 안에 트리 하나만 꾸며도 충분히 신나했을텐데, 그곳에서는 마을 전체가 하나의 크리스마스 풍경이 되니.. 이보다 흥미로운 광경은 없었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그 꾸밈이 의무가 아니라 사람들이 진심으로 즐기는 소소한 일상 속 축제처럼 느껴졌다는 점이다. 어쩌다 한두 집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각자의 개성대로 빛나니, 저녁마다 마을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신났던 기억이 난다. 마치 동화 속 작은 마을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달까?


캐나다 토론토 어느 마을의 크리스마스시즌 풍경


크리스마스이브의 풍경은 나에겐 또 하나의 작은 문화충격이었다. 당시 함께 지내던 친구와 근사하게 외식을 하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보자는 계획으로 집을 나섰는데, 문을 연 가게가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겨우 한 곳을 찾아 저녁만 해결하고 바로 다시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알고 보니 가족중심적인 문화를 지닌 캐나다에서 크리스마스는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보내는 날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문을 연 레스토랑이 없다니…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정말 외국영화에서 보던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거실 한가운데 반짝이던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그 아래 가득 쌓인 어마무시한 선물들, 그리고 그걸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아이들과 부모들의 얼굴.


캐네디언 가정의 크리스마스날 풍경


그날은 홈스테이 가족모임도 있어 따라가기도 했었는데, 포트락파티처럼 가족들 모두가 음식을 하나씩 가져와 나누고, 커다란 트리 앞에서 서로의 마니또가 되어 선물을 건네는 모습이 참 따뜻했다. 그 자리에는 외국인인 나를 위한 선물까지 조심스레 준비되어 있었다. 그날의 온기와 웃음소리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가족끼리 마니또라니.. 낭만적이잖아


두번째로 마주한 유럽의 크리스마스는 또 다른 의미에서 정말 로맨틱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해외크리스마스마켓에 대한 오랜 로망을 품고 회사를 그만둔 뒤 동유럽을 중심으로 헝가리, 체코, 오스트리아, 폴란드의 크리스마스마켓을 찾아다녔던 여정이었다. 유럽에서의 크리스마스라니.. 말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는데, 실제로 마주한 그곳의 크리스마스는 그 기대를 훨씬 넘어섰다. 화려함을 넘어,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마음만큼은 묘하게 포근해졌던 그 분위기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크리스마스마켓 풍경


광장 한가운데 서있는 거대한 트리, 하늘을 가득 채운 오색 조명, 곳곳에 늘어선 아기자기한 크리스마스 소품 상점들, 그리고 코끝을 간질이던 달콤한 음식냄새들. 그런데 그 모든 장면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던 건, 그 공간을 진심으로 즐기던 사람들의 표정 덕분이었다.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세대를 가리지 않고 함께 모여 마켓을 거닐고, 핫와인을 마시며 웃고있는 얼굴에는 여유와 행복이 자연스럽게 묻어나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 마음까지 덩달아 따뜻해질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폴란드 크라쿠프 크리스마켓 풍경


그곳에서 크리스마스는 단 하루의 이벤트가 아니라, 기다리는 시간 자체가 이미 축제인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가 되기 한달 전부터 집을 꾸미고 크리스마스마켓을 들르며 어른들마저 아이처럼 설레어하던 모습, 그 안에서 느껴지던 ‘어른의 동심’이 나에겐 참 색다르게 다가왔다. 일상 속에서 모두가 소소한 낭만을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있는 느낌이었달까.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그들의 일상 속에 조용히 스며들어 있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뒤 크리스마스가 다가와도,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어도, 그런 따뜻한 낭만을 온전히 느끼기란 쉽지 않았다. 트리가 반짝이는 곳을 찾아가도, 캐롤이 흐르는 거리도 걸어봐도, 어딘가 모르게 내가 기억하던 크리스마스와는 조금 다른 결의 풍경으로 느껴졌다. 아마도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함께 기다리고 누리는 설렘의 시간‘이라고 여기기보다는,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기분전환하는 하루’ 정도로 받아들여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가져본 우리의 공간에, 그때 해외에서 느꼈던 그 크리스마스 온기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보고 싶었다.

날은 춥고 기온은 떨어지지만, 이 공간에서 머무는 시간만큼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따뜻하게 차오르는 곳이 되었으면 했다.

아파트처럼 실내에만 국한된 장식이 아니라, 한옥이라는 시골집 전체가 하나의 ‘크리스마스 집’이 되는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실내는 그 분위기에 살짝 더해주는 정도로 꾸미고 바깥 공간에 더 많은 힘을 줘봤다.


크리스마스는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더 따뜻하고 그 빛이 은은하게 오래 남는다고 믿기에, 올해 크리스마스공간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것은 ‘조명’이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집으로 만들기 위해 작년보다 더 많은 조명을 달았다. 바깥에는 전기가 없다보니 태양광조명으로만 설치해야 했는데 처음에는 어느정도 햇빛을 잘 받아야 작동이 정상적으로 되는지조차 잘 몰라 애를 먹기도 했다. 그렇게 트리와 트리주변은 물론이고, 툇마루 기둥, 처마, 감나무와 모과나무까지 하나하나 조명을 달아 불빛을 더해보았다. 언젠가 측백나무까지 모두 빛으로 채울 날을 기약하며 말이다.



또 하나, 크리스마스 공간에서 빠질 수 없는건 바로 ‘오르골’이었다. 반짝이며 천천히 돌아가는 오르골이 주는 그 작은 움직임 하나로, 그 공간은 한순간에 다른 세상 속 장면으로 바뀐다. 그래서 올해는 각 방마다 오르골을 하나씩 더 들였다. 사실 가격만 더 착했더라면 욕심껏 더 들였을텐데 그 점은 조금 아쉽지만 말이다.



대신 이번에는 여기에 최대한 자연친화적인 소재들로 공간을 채워보았다. 빨간 남천열매와 장작, 솔방울, 잣나무가지 등 주변 자연에서 소소하게 얻을 수 있는 재료들로 우리만의 오브제들을 만들어 트리와 공간 곳곳에 놔두었다. 직접 포장한 선물상자들과 가을날 자연에서 가져온 호박과 밤송이, 모과 등까지 더해지니, 훨씬 더 자연스럽고 우리다운 크리스마스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실내공간에도 각 방의 구조에 어울리는 오브제들을 포인트처럼 배치해보았다.



이렇게 어느정도 완성된 크리스마스 공간에는 마지막으로, 캐롤까지 있어야 최종완성이 된다. 캐나다에서도, 유럽에서도, 집집마다 흘러나오던 캐롤소리만 들어도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졌던 기억이 난다. 캐롤이 없는 반짝거림은 뭔가 알맹이가 빠진 듯 허전하고, 캐롤까지 흘러나오기 시작한 순간 비로소 “완벽히 따뜻한 크리스마스 공간이 되었구나”하고 실감하게 된다.



물론 크리스마스 공간을 꾸민다는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손이 가고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런데도 내가 사랑하는 이 공간을 크리스마스로 채워가는 그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누리는 또 하나의 작은 즐거움이 된다. 그리고 이곳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우리가 준비한 이 공간 속에서 훈훈한 겨울의 시간을 보내고 간다면, 이런 수고로운 작업도 더 즐겁게 하게 되는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평범한 일상 속에 녹아든 진짜 힐링이 아닐까.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이 공간에서 크리스마스의 설렘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


아이들뿐 아니라, 특히 어른들까지도 이곳에서만큼은 잠시 잊고 지냈던 동심을 다시 만나 크리스마스 낭만을 느꼈으면 한다. 그것만으로도 이 공간은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한 셈일테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살아간다면, 시간이 흘러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크리스마스’라는 단어 하나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