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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함도 타고난 것이다

전에는 싫었지만 지금은 인정하는 말

by 유 매니저

나는 4살 터울의 오빠가 있다. 초중고 시절 오빠와 나는 학습 스타일이 꽤나 달랐다. 나는 성실하고 꾸준한 스타일이었고 오빠는 머리 좋은 천재 스타일이었다. 오빠는 아침에 매일 늦잠을 자서 엄마가 두드려 깨우고 눈을 뜨고 바로 옷만 압고 5분 만에 튀어 나가야 되었고, 나는 필요한 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엄마가 꺠울 필요 없이 알아서 일어나고 아침까지 야무지게 다 먹고 등교를 했다. 시험 준비도 그랬다. 고등학교 때 나는 중간 고사나 기말 고사 한 달 전에 미리 계획을 다 세우고 그대로 실천했다. 나는 밤을 세우는 일이 전혀 없었다. 밤을 세울 일이 없었다. (대학생 때 처음으로 밤을 세봤는데 - 양이 너무 많았고 노는 맛을 알아버렸다 - 역시 나한테는 맞지 않았다. 난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속이 너무 안 좋다) 반면에 오빠는 벼락치기의 귀재였다. 시험 공부는 아마 며칠 전에 시작을 했을 것이고, 주요 과목이 아닌 경우에는 전날 밤에 밤을 세워서 훑어보고 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공부를 꽤나 잘했기 때문에 엄마는 학습자의 성향 차이라고 여기고 크게 개의치 않았고 두 명의 학습자도 별 생각이 없었다. 다른 성향의 학습자가 비슷하게 좋은 학업 성취를 이룬 것에 대해 해석해보자면 아무래도 유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성장 환경 (아무래도 부모가 같고 같은 집에서 사니까 비슷한 환경을 제공함)도 영향을 줬을 것 같다.


4살 터울이기 때문에 내가 고등학생 때 오빠는 대학생이었다. 오빠는 대학 초기에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였는데, 그 당시에 내가 괜찮은 수학 학원을 구하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 한 두달 정도 였는데, 나는 문과였고 오빠는 이과였다. 오빠는 수학을 꽤나 잘해서 엄마가 아들 집에 좀 오라고 해서 밥도 해주고 과외비 겸 용돈도 주겠다는 마음으로 오빠에게 내 수학 과외를 맡겼다. 과외의 결말은 내가 좋은 수학 학원을 찾게 되었고, 역시 가족끼리는 과외를 하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다시 얻었다는 것이었다.


오빠가 수학 과외를 하면서 내가 성실한 것을 몸소 체감했는데 (그 당시 아마 나 말고 다른 괴외 알바를 더 했을 것이고, 다른 학생과 비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했던 말이,


"성실한 거랑 노력하는 것도 타고난 거야"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생각을 했고, 누구는 노는 거 모르냐, 나도 다 꾹 참고서 열심히 하는 건데 내 노력을 타고난 것으로 손쉽게 치부해버리는 말에 굉장히 분노했다.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나는 즐거움을 희생하면서 노력을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가 노력을 안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예체능에 대한 재능이나 아이큐 같은 부분은 다르게 태어날 수 있지만 노력이라는 건 누구나 공평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이 생각이 바뀌었다. 억울하긴 하지만 오빠의 그 말이 맞았다. 성실함과 노력은 타고나는 것이다. 나는 성실하게 사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고 무언가에 노력을 한다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다. 물론 나도 성실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사는 게 순간적으로는 더 즐겁고 편하다는 걸 안다. 그걸 모르지는 않는다. 다만 성실하게 살고 노력을 하면서 살기 위해 내가 들여야 하는 수고가 다른 사람이 들여야 하는 수고보다 적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성취해 낸 게 아니라 타고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성실과 노력이 없는 사람에게도 조금은 덜 냉정할 수 있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겸손해질 수 있다.


하지만 성실과 노력이 어려운 사람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성실하고 노력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실과 노력이 필요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보통의 환경에서 살아갈 때, 성실과 노력은 필요하다. 다행히 성실과 노력은 후천적으로도 학습할 수 있다. 운동 신경이 좋은 사람은 자전거를 배울 때 금방 탈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운동 신경이 좋지 않은 사람은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지만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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