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로 에이전시를 창업했고, 뼈와 영혼을 갈아넣고 있어요.
물론 호기롭게 멀쩡히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했을 때는 거창하고 아주 구름같이 몽글몽글한 (결과보다는 성공한 사람의 인터뷰의 주인공이 나일지도 몰라~라는 헛된 상상상) 꿈을 꾸며 나온 것 같습니다. 이것저것 시도는 했지만, 생각보다 아닌데? 싶은 것도 많았습니다. 되돌리기는 싫었고 그렇다고 게으르기도 싫었고 저에게는 자기 증명의 순간들이 필요했습니다. 대학원 생활은 루틴이 정착되어 관심 있는 주제로 연구했던 것들이 학회에 게재도 되고 발표도 하게 되었고요. 전 학문을 연구하는 것을 목표로 퇴사한 것은 아니었기에, 무언가 해야만 했습니다.
어느 날 메일이 한 통 왔습니다. 정말 예상치도 못했습니다.
저의 고교시절 창업기와 생각들을 브런치에 일부 그리고 이 곳 저곳에 기록한 적이 있는데, 그것을 쭉 따라오시며 보고 계시는 분이 있을 줄이야! 6개의 사업군을 운영하시며 확장 계획이 있으신 대표님이었습니다. 저에게 일을 의뢰하고 싶다는 글이었습니다. 각각 운영의 성공 여부는 스스로에게 달려있지만, 이 모든 것을 통합하며 그림을 그릴 시기가 온 것 같다고. 최소한 함께하는 임직원들이 조금 더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그룹 통합의 경험 브랜딩이 필요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디렉터는 유명한 회사도 고려했지만, 결국 나와 가장 가까이에서 많은 대화를 하고 우리 조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고민하다 계속 저의 글이 뇌리에 맴돌아 저에게 연락을 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한국과 중국의 여러 브랜드, 마케팅 경험이 있지만 그룹사 통합이 쉽지 않다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대기업에 근무할 당시, 그룹 통합 브랜딩 전문가 이자 광고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하는 이용찬 교수님과 통합 브랜딩 프로젝트를 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대표님을 만났고,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저는 브랜딩을 중심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 에이전시 화이트매터를 창업했습니다.
회사 이름을 어떤 것으로 하면 좋을까. 처음 사업자 등록을 앞두고 한 이틀남짓 고민했습니다. 프로젝트가 사업자등록과 함께 곧바로 돌입을 해야 했고 프로젝트 팀원을 꾸리는 것이 나의 이름보다 더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이름이 제법 맘에 듭니다. 메타포가 숨어있지만 알듯 말듯한, 절 아는 사람이라면 무언가 이예지(글쓴이)스러운 것 같고, 발음이 쉬운 이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네이밍을 결정한 과정이 또렷하게 생각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베이스가 마케팅과 전략기획인 점, 하지만 결국 가장 강점이 있는 영역이 '감성'이라고 보았을 때 회사 이름은 조금 이성적인 영역에서 차용하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성, 이성을 한참 헤매다 생물학 사전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에 감각이 인지되는 건 뇌... 뇌에 뭐가 없나? 뇌의 다양한 세포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문득 greymatter라는 피질이 어감도 그렇고 이름이 좋더라고요. 이게 뭐지 하면서 더 찾아보았더니 정보 인풋을 전달하는 뇌의 피질이라고 합니다. 워 이름 좋다 하고 이 이름을 갈까 했는데 에이전시명으로는 없지만 쇼핑몰이 하나 있더라고요. 속으로 역시 좋은 이름은 다들 귀신같이 알아채는군 생각하며 좀 더 서치 하다가 미지의 피질, 화이트매터를 찾았습니다. 이름을 보고 이거다 싶었어요.
우선 저하면 떠오르는 것,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전 흰색을 무척 좋아합니다. 설령 김칫국물이 튀더라도 가능하면 올 화이트 혹은 웜한 화이트 계열로 셋업을 입는 것을 좋아해요. 저라는 사람이 연상되는 컬러 그리고 matter 말 그대로 무언가 happening 이 일어날 것 같지 않나요? 문제가 발생하면 흰색 깃발을 들고 해결하려고 나아갈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그레이와 다르게 화이트 매터는 감정적인 부분을 정보화하는 역할을 하는 피질입니다. 아... 완벽해!
*화이트매터는 현재 상표권 신청중입니다.
과거에 내용보다 그럴싸한 프레젠테이션이 눈을 사로잡았던 시기가 있습니다. 저는 현재 마케팅 전략을 기반으로 광고/디자인의 경력으로 브랜딩을 하고 있지만, 기본 바탕이 사회학이라는 인문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디자인의 시간보다는 가치의 할애하는 시간을 많이 두는 에이전시이길 바랬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디자인이란 '심미성'이 아닌 '경험' 전반을 아우르는 기획을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마케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만남입니다. 첫눈에 반하게 하는 것, 그래서 클릭을 하게 한다던가 관심이 가는 것이 마케터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이죠. 그러고 나서 인터랙션(구매일 수도 있고, 살펴보는 행위 일수도 있고)은 이제 경험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사용자는 여기까지 왔을 때, 결심합니다. '더 함께 할까?' 아니면 무관심?
화이트매터는 시작점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모두 총체적인 고려를 할 수 있는 역량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커뮤니케이션 에이전시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분명한 철학이 담긴 네이밍, 카피라이팅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메시지 나아가 애플리케이션부터 UI/UX 통합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너무 토탈 패키지 같나? 싶지만 제가 근무했을 때의 프로젝트가 전문가들과 함께 모든 영역의 일관된 톤 앤 매너를 유지하는 IMC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부분은 꼭 지키며 가져가고 있습니다. (물론 개별적인 프로젝트도 진행하지만, 클라이언트와 대체로 롱텀으로 보며 장기적인 플랜을 세웁니다.)
화이트매터는 보다 모듈화 된 조직을 추구합니다. 고정 직원이 아닌, 프로젝트별로 가장 경험이 있고 감각이 있는 인원들을 함께 구성하여 최상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기술이나 감각의 측면일 수도 있고, 성향과 취향을 측면일 수도 있겠네요. 예를 들어 테크 기반의 프로젝트이면 보다 테크 방면에 경험이 있는 디자이너 그게 아니라면 보다 인터내셔널한 디자인에 강점이 있는 디자이너와 함께, 그리고 플렉서블한 사고를 하고 프리랜스와 기업의 경험이 모두 있는 팀원을 구성하여 프로젝트가 시작됩니다. 프로젝트의 효과적인 솔루션을 위해 보다 유연하면서도 완벽히 몰입하는 구조를 택했습니다.
화이트매터에서는 현재까지
2개의 대형 CX,BX 프로젝트,
3개의 BI/BX 프로젝트,
1개의 UX프로젝트,
6개의 컨텐츠 크리에이티브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바쁜 와중에 제출한 디자인 어워즈에서 수상도 할 수 있었고요.
(이건 총괄 기획자인 저에게도 맡겨주신 클라이언트님께도 큰 의미였습니다.)
프로젝트의 사이즈가 기여도에 반영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정말이지 규모가 작은 프로젝트여도,
팀원들이 저를 보며 몰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무드를 만든다고 생각할 정도로 뼈와 영혼을 갈아 넣으며 클라이언트와 좋은 브랜드와 콘텐츠 그리고 솔루션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이제 1년이 거의 다 되어가네요.
여기에 왈가왈부할 순 없지만 참 힘든 일도 많았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을 해내는 데에 있어서 힘든 일은 기쁘게 보낸 것 같아요.
팀원이 고정된 것이 아니기에, 다가오는 1주년은 조용히 자축하면서
여태껏 함께 수고한 팀원들에게 편지와 선물 그리고 마음을 담아 보내려고 합니다.
화이트매터가 어떤 형태로 변할지는 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느 순간 화이트매터가 잠시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요 (아마 저의 노선에 따라 결정될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그 어떤 순간에도 새로운 영감과 학습을 소홀히 하진 않는 유연하고 냉철한 화이트매터가 되기 위해서 제가 부단히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조만간 열심히 작업한 것에 대한 과정 그리고 기록들을 하나둘씩 업로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