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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Jan 31. 2019

드디어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무언가 19년도는 좀 달라져야 할 것 같다.


2018년 12월 말, 이제 2019년이 되면 20대가 단 일 년밖에 안 남았단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그 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시간을 좀 더 잡고 싶은 적은 없었거든. 


2019년이 되면서 나는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더 이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는 있었다.'라고 합리화할 수 있는 나이가 끝난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서 싫다는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 물론 조금 더 무모해질 여력이 줄어든 건 참으로 아쉽지만, 그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실행력도 생긴 셈이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그토록 공포스러웠을까?


더 이상 "'창업 경험' 이 있어요. '상품기획'을 할 줄 알아요. '마케터'이기도 하죠. '브랜딩'좋아하고 공부해요."라고 둘러댈 수 없는 것 같았다. 이젠 무언가 아닌 것 같다면 과감하게 끊어내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도 해야 하고 거추장스럽게 끼고 있던 것 중 앞으로도 유의미한 것은 이제 또렷하게 만들 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무언가 아닌 것 같은 것이 무엇일까?


지금 회사의 방향성

평일 내가 살고 있는 공간

말 뿐이었던 내 맘속 프로젝트, 사업 등등 

말 뿐이었던 내 머릿속 배우고자 하는 의지

몸무게


사실 더 많은데, 위에 것도 다해낼 수 없으니 우선 크게 카테고리를 나누어보면,

1) 일 2) 집 3) 개인 건강. 그중에 3번이 해내기 어렵다는 건 28년의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 1) 2) 번부터 해결해보도록 하자. 우선 2)는 부동산 몇 군데에 원하는 위치의 견적을 말씀드리고 매물이 나오길 기다리기로 했다. 목표는 2~3월 중에 이사다. 생각보다 맘먹으니까 순차적으로 잘 진행되더라. 문제는 1)이다. 


먼저, 이력서를 작성했다.


석사를 관두고 지금의 회사에 들어간 이래로 단 한 번도 이력서 비슷한 것을 만든 적이 없었다. 무슨 오만함이었을까 만족하며 다니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약 일주일이 걸렸다. 이래서 다들 이력서를 미리미리 업데이트해놓으라고 했구나. 




그래도 다행히 여태까지 열심히 산 덕분인지, 아니면 썰 풀게 많았던 덕분인지 이력서가 제법 빼곡하게 구간들을 채워갔다. 단순 나열이라, 성과 수치가 기억나지 않아서 과거 보고서들을 찾아본 것을 제외하고는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간단하게 쓰려고 매우 노력했다. 이해하기 쉽게 쓰려고도 노력했고, 과하게 편집을 하여 디자이너가 아님에도 디자인 역량을 과시하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미학적인 것보다 콘텐츠가 중요하니까. 뭔가 사진 하나 넣으면 친밀감도 높아질 것 같아서, 아련한 표정 짓고 있는 내 얼굴도 슬쩍 넣었다. 


그래, 이 정도면 대충 된 것 같다. 



문제는 포트폴리오.


이력서를 작성하면서 PJ 단위로 이야기하다 보니, 성과에서 내가 포지션을 어떻게 담당했고 끌어냈다고 표현하더라도 보는 이가 정확히 이해할까에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기획자 같은 경우는 포트폴리오를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브랜딩 하시는 분들을 만났다. 감사하게도 많은 조언을 주셨지만 이걸 내 것으로 적용하기에는 업무의 태가 많이 달랐다. '그래 애초에 답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조언해주신 분들 덕분에 브랜딩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의 아름다운 포트폴리오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는 정말 유의미했다. 


정확히 3주가 걸렸다.

일주일은 했던 일중에 추리는 작업을,  2주는 글을 작성하는 작업을,  3주째는 필요한 사진을 추가적으로 구하고 촬영하는 데 반, 편집 디자인하는 것의 반을 소요했다. 동종업계 지인은 내가 매우 빠르게 만든 것이라고 위안했지만 1월 초부터 지난주까지 나는 거의 커다란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수정하고 다듬기 바빴다. 나는 포토샵이나 일러스트에는 전혀 깊은 이해가 없지만 (조금씩 다루는 정도?) 다행히 파워포인트만큼은 제법 자신이 있다. 모든 과정을 파워포인트로 완성했다. 



이렇게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나니, 그럴싸한 말만 하던 내가 아니라 어느 정 스스로 3년간 해오던 일들을 차곡차곡 쌓아둔 느낌. 동시에 비단 일의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이젠 나의 삶도 포트폴리오라고 생각해야겠구나라고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내가 해온 업무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인생의 포트폴리오가 이제부턴 나의 몸과 머릿속에 패턴화 되어 새겨질 것 같아서 공포스러웠던 것 같다. 그와 동시에 또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되기도 한다.


이 두장의 이력서가 포트폴리오가 나에게 어떤 기회를 줄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냥 아무 곳이나 넣어봐라고 하기엔 나는 매우 피곤하게 사는 사람이라서, 좋아하는 회사와 철학이 있는 곳을 발견해야 이 두 개의 문서를 발송할 수 있을 것만 같지만, 어쨌든 최소한 무언가 아닌 것 같다고 느낀 포인트를 1/2쯤은 해치운 느낌에 그저 18년보다 조금 성장했노라 매우 위안 삼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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