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바로 설 때

베란다, 말라죽은 식물처럼

by 한아르미

첫째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벌써 십여 년 전 이야기다.


당시 맘카페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맞벌이하는 여자들은 남편 수입이 부족해서 회사를 다니는 것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돈이 넉넉하면 왜 회사를 다니느냐는 문장이었다.


나는 그 글을 보고 꽤 열을 냈다.

돈이 60~70퍼센트쯤 차지할 수는 있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름의 소신과 자부심으로 회사를 다니는 거라고, 그런 뉘앙스로 댓글을 달았다.

비슷한 반응들도 꽤 많았던 것 같다.


두 번의 출산과 육아휴직을 보내며

나는 복직하는 날을 설레며 기다렸다.

워킹맘이 내 적성에 맞는 삶이라고 믿었다.

그땐 그랬다.


그런데 요즘,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하면서

그때의 일이 문득 떠올랐다.

막상 그만두려니

돈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결국 나도 돈 때문에 회사를 다니고 있었구나.

그때의 나는, 조금의 허세를 부리고 있었던 거구나.


이 사실을 인정하니

오히려 마음이 명확해졌다.

돈만 보고 버티기엔

너무 불행하고 벅찼다.


사람들은 말했다.

버티는 사람이 승자라고.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라면

굳이 승자라는 말이 붙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하루는 버틸 만했다가

또 하루는 당장 그만두고 싶어졌다.

아침엔 견디기 힘들다가

오후엔 그럭저럭 괜찮아졌다.

감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쳤다.


고민하는 사이

정신은 이미 많이 피폐해져 있었다.

위액이 올라오고,

가슴이 답답하고 콕콕 쑤시는 것 같았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당장 이번 주를 버티는 것도 버거웠다.

1년 넘게 반복해 온 고민이라면

이쯤에서 충분히 애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보다 건강이 중요하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상하게도

내가 회사를 그만두는 게 아니라

쫓겨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언젠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나느니

내가 선택할 수 있을 때

결정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이들이 등교 준비를 했는지 CCTV를 확인했는데

두 아이 모두 자고 있었다.

전화를 걸자 놀란 첫째가 둘째를 깨웠고

아이들은 5분 만에 후다닥 준비해 집을 나섰다.


세상 느긋한 아이인데

또 걱정도 많은 아이라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서야 마음이 놓이는 아이다.

그날도 머리를 제대로 말리지 못한 채 나가

이 겨울에 물이 뚝뚝 떨어졌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는 육아휴직을 결심했다.


새벽에 잠이 깨

베란다를 바라보았다.

말라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포기해야 할 화분도 있었고

조금만 손을 대면

다시 살아날 것 같은 것들도 있었다.


천천히 마음을 추스르고

화분을 가꾸듯

나 자신도 돌보기로 했다.

조급하지 않게,

느리더라도

다시 바로 서 보기로 했다.


첫째를 키우며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모든 순간들이

얼마나 대견했고, 대단했고, 고마웠는지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 기준으로 키운 둘째가

얼마나 힘겨웠을지,

얼마나 외로웠을지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엄마가 바로 설 때.


아이들 각자에게

서로 다른 이유로

미안함과 고마움이 남았다.


엄마가 주저앉아 서야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