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도움을 받아봐야, 잘살았다고 할까…?
나는 영국에 산다.
1명의 반려인과 1마리의 반려견과 함께, 운이 좋게도 어찌어찌 집까지 구매해 살고 있다.
영국, 국민의료서비스가 몽땅 무료인 이 나라에서 사는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모든 종류의, 양이 얼마든지 간에, 한번 약국에 갔다 올 때마다 만원이면 충분하고 (내가 먹는 종류와, 양에 비하면 이 정도는...), 그 외에도, 각 council별로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은 덤이다.
물론 어마무시한 대기 인원수와, 대기 시간, 그리고 '네가 찾지 않으면, 받아볼 수 없음' 같은 특징은 나와 같은 사람에게 치명 적이긴 하다.
진단을 받기 전, 나는 이미 한국에서부터 동반해 왔던 이십 년간의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 등을 가지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심리상담가 아무나 만나 토킹 테라피로는 진전이 전혀 없어, 수십 종류의 크기도 색도 다양한 알약에, 열댓 명의 전문의 의사를 거쳐, 현재 매달 여러 종류의 항정신성 약들을 복용받고 있다.
매번 나 대신에 약국에 다녀오는 나의 반려인은 마치 시장에서 일주일치 장 보러 갔다 오는 것 같다며 나의 약상자 들을 내 앞에 와르르 쏟아 보이곤 했다.
어느 날, 최종 자폐진단을 받던 날, 전문의 선생님께
'혹시 약을 줄이거나, 끊으면 안 되나요?' 물었다가,
'왜요? 부작용이나 문제가 있나요? 그게 아니면 끊으면 안 돼요.‘
라는… 결국은, 자폐는 치료는 없어도, 통제가능한 증상들은 약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결국 답도 없는 답(?)을 들어야 했다.
이건 어차피 치료라는 게 필요가 없는 신경 다양성의 (Neurodiversity) 하나라는 게 결말이었다.
결국 자폐는, condition이지 symptom (증상; 우울, 불안, 공황 등)의 증상이 아니라는 것.
다시 말하면, 저 앞에 내가 겪어왔던 모든 불편한 멘털이슈들은 결국, 자폐라는 장애에서 비롯된 부가적인 증상 중 여러 개라는 것이었다. 결국 증상이 기적적으로 나아지지 않는 한, 나는 평생 약을 달고 살아야 한다.
징글징글하게 많은 알약을 매주 일요일마다 까고 버리고, 1주일치 칸이 7개나 있는 기다란 약 통에 정리하고 넣고 하는 짓거리를 이제 좀 그만해도 되려나 싶었건만…
이 나이에 이렇게 많이 먹으면, 나 고희 때는 어떡하지 싶다.
고희는 그렇다 치고, 환갑잔치상에 올라오는 음식가짓수보다, 내 손안에 알약수가 더 많을 것 같은 건 그저 기분 탓은 아닌 것 같다.
증상완화는 그렇다 치고, 그 외에 자폐로 인한 불편함이나 신체적인 테라피들도 추가로 받아야 한다고 전하시기도 하셨다.
’ 그게 결국은... 말하는 테라피나, 뭐 그런 거 아닌가요...?'
물었더니, 선생님은 아주 명료한 말투로
'넵, 맞아요.'
라고 대답하셨다.
그 대신 이번엔 1:1 세러피 대신 그룹세러피를 받아보기로 했다. 약 6-8명 되는 사람들과 그리고 두 여명에 전문의들이 같은 Zoom미팅 콜에서 이것저것 각 주에 맞는 테마 등에 맞춰 세러피 세션을 진행한다고 하셨다.
여차저차해도 무엇이든 공짜로 받는 서비스는 무료이기 때문에 오는 장점과 함께, 단점도 같이 온다. 공짜라 공짜인 값을 하지 않을까 하는…
그룹 세션에서 최대한 많은 뽕을(?) 뽑으려면 최대한 섬세히 하루하루 내가 뭘 하고 뭘 느끼고 생각하고 있는지 잘 살피고, 컨디션이 안 좋을 땐, 왜 그렇게 기억했는지, 그때당시 내가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 등, 이 모든 걸 마치네가 나 자신을 관찰하고 있는 cctv를 관찰하며 열심히 열심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받는 council서비스 중에는 자폐인들과 같은 심리적 신이경학적 증상으로 인한 환자들의 취업 및 재취업 관련 전문 서포트도 있다.
경찰, 의사, 간호사, 오피스직, 화이트, 블루칼라 업종 등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어드바이저에 의해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감사하게도 나라는 인간도 그리스트에 끼어있었으나, 나 스스로 도움이 필요 없다고 해버렸다.
나를 담당하게 된 새로 온 어드바이저라는 여자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본인을 소개함과 동시에 상당히 대담하고도, 시니컬한 말투로,
딱히… 내가 도와줄 건 없어 보이는데…
그래도 다음 주에 연락할까?
라고 되려 물어봤고, 기분이 확 나빠진 나는 가시 돋친 말투로 네가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되물었다. 자폐인, 현재 풀타임으로 근무가 가능한 일명 “고기능 자폐” 사례 중에 몇 명이나 취업에 성공했는지, 인터뷰 도중에 혹은 이미 1차 서류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폐, 혹은 신경다양성을 공개했는지 따져 묻듯이 물었다.
‘글쎄… 그건 좀 대답하게 어려운 질문이네. 그렇지? 각각 다 백그라운드나 사례가 다르잖아…’
라며 직접적인 대답을 피했다.
결국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왜 이딴 걸 물었을까 바보같이 머리를 쳤다. 결국 “딱히… 내가 도와줄 건 없어 보이는데..로 시작한 의문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었다.
없어 딱히.
그리고 그녀는 홀가분한 듯이 다음에 도움이 필요하면 웹사이트 contact페이지에 있는 메일을 통해 연락하라며, 직통번호도, 본인의 이메일도 아닌 contact@company.com을 알려주었다. 연락처를 무작정 연필로 받아 적어놓고도, 나는 이걸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뭘 몰라 버려야지.
자폐로 사는 생이 처음인 나도, 내가 어떤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해랴 할지, 뭘 요구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만, 찬밥 더운밥 가릴 것 없는 나는 그래도! … 결말이 해피엔딩이 아니라도, 나 혼자 오롯이 기댈 곳 없이 살아가는 그 차가운 벌판 같은 느낌을 더 이상은 받고 싶지 않았다… 않다!
도움이 필요하다… 누구든지 따뜻한 손만 내밀어준다면 덥석 두 손으로 꼭 잡고 싶은 마음이다.
날씨도 내 머리도 꿉꿉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