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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송 Mar 10. 2020

누군가는 늙고,
누군가는 내공을 적립합니다.

 처음으로 사원증을 목에 걸었을 때, 그 별것 아닌 플라스틱 카드가 나는 왜 이리도 좋았는지 모르겠다. 대기업도 아니고, 뛰어난 직급도 아니었는데 처음 받는 사원증은 초등학교 첫 입학식에 받았던 이름표 같은 설렘을 주었었다. 사원증 외에 다른 것은 끼워 사용할 수가 없을 정도로 좁은 틈인데도 나는 그것을 비집고 비집어, 체크카드를 끼워 넣었다. 하루에 서너 번 버스와 지하철에 갖다 댔고, 안간힘을 쥐어짜 꺼냈다 뺐다를 반복하며 밥도 사 먹고 커피도 사 마셨었다. 


  업무를 하다가 유일하게 사원증을 목에서 빼낼 때는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는 때, 얼굴이 붉어져서 비상구 계단을 올라야겠는 때였다. 통제불능의 표정과 어디로 가시 돋칠지 모르겠는 혼잣말을 뱉어버리는 것이 조심스러울 때면 조용히 사원증을 책상에 올려두었다. 사무실에 있으면서 그것을 한편에 내어두면, 약간의 해방감과 허락된 일탈이 느껴졌다. 그 안에 머물면서 가장 쉽고 빠르게 기분 전환을 주는 나름의 소중한 행위 의식(?)이었달까. 


 그날도 그랬다. 6-7명이 근무하던 작은 사무실에서 커다란 통유리창을 마주하고 앉았던 나는 사원증을 조용히 목에서 빼내었다. 그때에 내 얼굴이 빨개졌었을까, 아니면 하얗게 질렸었을까. 그래서 누가 봐도 '얘 화났음'이라고 티가 팍팍 났었을까. 티 내지 않으려 모니터를 마주하고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데, 통유리창에서 똑똑 소리가 났다. 지긋이 나이가 드신, 고객사의 대표님이셨다. 


 대표님과는 같은 오피스를 사용하는 터라, 간간히 대화를 나누었었다. 공용공간에서 같이 컵을 씻거나 커피를 내리며 주고받은 인사가 전부긴 해도, 평일이면 매일같이 얼굴을 뵈었고 업무의 시작과 종료를 비슷한 시간대에 같이 했다. 작은 키에 단단한 체구, 가만히 계셔도 웃는 얼굴이셔서 절로 덩달아 입꼬리가 올라가는데도  아우라가 제대로 느껴지는 그런 분이었다. 


 평소에 그렇게 웃음을 지니고 계시는데, 조금 굳은 얼굴로 한 손을 드시며 "에이미, 잠깐 볼 수 있을까요?" 하셨다. 깜짝 놀란 나는 바퀴 달린 의자를 부리나케 발로 밀어 팔걸이에 손을 짚지도 않고 냉큼 일어났다. 사무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거나 말거나 나는 그 짧은 몇 걸음을 걸으며 '내가 실수한 게 있었나?' '대체 뭐지? 대체 뭐지?' 하며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렸다. 사무실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부르시더니 몇 보 더 걷게 하셨다. 자연스레 건물 밖에 나가, 용건에 대해 여쭈었더니 주시는 대답이


 "응, 아이스크림 땡땡이 좀 같이 치자고" 


 나는 그때 얼마나 안도했는지, 그리고 그 바닐라 아이스크림 콘을 먹으며 얼마나 위로되었는지. 그 가게가 그렇게나 맛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였나 다시 간판을 올려다보았었다. 아이스크림으로도 건배를 할 수 있다는 걸 배웠고, 8천 원의 비용으로 30분이 채 걸리지 시간에 회사에서 찐하게 좋은 우정을 쌓을 수 있는 방법도 배웠다. 같은 회사 내에 부하직원들이 많으실 텐데, 꼭 동료가 아니더라도 그 층, 그 건물 여기저기에 지인이 아주 많으신데 왜 나한테 아이스크림 땡땡이 특권을 주셨을까? 짧게 생각했다가. 아이스크림 맛에 취해 더는 생각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생각 치 못한 한입을 베어 물었다고, 씁쓸한 마음이 한방에 날아가는 게 하도 신기해서. 


 땡땡이를 계기로 대표님과는 점심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특권도 이어졌었는데, 그때의 환기는 메뉴보다 테이블 위로 오고 가는 대화였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누구랑 먹느냐가 더 중요한 게 업무 중 점심시간이라는 것도 배웠으니까. 머리가 희끗하셔서 나이가 한참 있으신데 어조와 어투, 태도와 방식이 아주 근사하셨다. 일방적으로 들어야 할 필요도, 말해야 할 필요도 없어서 일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편하게 주고받았다. 


 여러 에피소드를 들으며 대표님께 배운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누군가 내가 준비한 것들을 끝내버리려 할 때, 정말 끝이 난 건지를 재차 확인하며 판을 바꾼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말씀은 빈대떡 뒤집듯 쉽게 하셔도, 그 과정이 얼마나 애절하고 치열했을까를 가늠하면 경험한 적 없이 듣기만 하는데도 덩달아 심장이 철렁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교육. 교육의 중요성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실행하고 있지 않는데, 대표님은 일상 자체가 교육을 받거나 주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나이 어린 사람이라고 함부로 가르치지 않으셨고 오히려 배움의 자세를 가지셨었다. 누구를 만나도 만나는 상대에게 예의를 갖춰 존중하며 아주 작은 것이라도 배워내는 근육이 아주 튼튼하셨는데, 거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을 더하셨다. 내가 방목형 자녀교육에서 관찰형/계획형 자녀교육으로 바뀐 전환점도 대표님을 뵙고 나서였다. 


 여러 가르침을 주셨는데 단 한 번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말을 직접 하신 적이 없었다. 다 삶으로 살아내시고, 살아낸 것들을 아주 간결하게 말씀해주시는데 그게 그렇게 와 박혔다. 내가 그런 삶을 살아냈다면 성경책 급으로 장황하게 엮어내거나, 쉴 새 없이 떠들어 댔을 텐데. 진짜 겸손은 이런 것인가 싶다. 나는 대표님이 가끔씩 주시는 에피소드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서 잘 저장했다가, 내 삶에서 필요한 때에 꺼내 들었다. 지금은 더이상 같은 오피스를 사용하지 않지만, 여전히 근사한 친구로 남았으니 그때 그 회사에 입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앞으로도 변함 없을 것 같다. 


 스쳐가는 사람이 누군가를 찌르려 이런 말을 했다. "대게 서른까지는 능력을 쌓고, 그 이후부터는 쌓은 것들로 살아가죠"라고. 그녀는 질 좋은 교육을 받은 30대 중년의 여성이었는데, 뒤통수로 들었던 당시에는 그게 맞는 말인지 틀린 말인지 판단이 서질 않아 숨을 잠깐 멈췄던 기억이 난다. 그때 들었던 말과 내가 만난 대표님의 삶에 대한 태도를 나란히 두고 보니, 해를 거듭할 때마다 누군가는 늙고 누군가는 내공을 적립하는 것이 한눈에 보인다. (물론, 그녀가 했던 말이 그녀의 삶 전체를 대변하진 않겠지만서도) 30대 중반의 늙은 여성과 70대 초반의 청년이 가지는 삶의 태도를 엿보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시 점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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