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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송 Apr 05. 2020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중입니다.

: 함부로 힘들다고 말하지 않아요


 작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막 지날 즈음 페이스북으로 여러 영상을 봤다. 중국 지역의 거주자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병원에 환자가 문전성시를 이루는 영상, 치료하는 의료진이 과로로 쓰러져 가는 영상,  20대의 간호사들이 치료에 집중하기 위해 줄기차게 머리를 삭발하던 영상, 서로의 안녕을 위해 자가격리를 당부하고 권고하는 의료진의 눈물 어린 영상, 각자의 집에 갇힌 아파트 거주자들이 서로에게 힘을 돋우기 위해 힘내라고 베란다에서 목소리를 외치며 함께 노래 부르는 영상들. 그것들을 보며 '어떡해 어떡해'를 마음으로 외쳤지만, 그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는 삶은  십 수일 내에 우리네 것이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하루가 다르게 수천, 수만 명의 감염 확진자가 나오고 갈수록 높은 치사율로 사람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생명을 보호, 혹은 연장시키는 도구들로 높은 차익을 발생시키려는 사람의 이기와, 감염된 남편을 병상에 두고 다른 이들을 치료하러 방호복을 동여 메고 바이러스의 최전방으로 나서는 사람의 이타를 본다. 하루에 곱절씩 경제시스템이 붕괴되어, 세계 어디에도 안전한 직업은 없다. 직장인은 위기와 불안을 들이쉬고, 자영업자는 대안이 없는 깜깜함에 몰아낸 한숨을 뱉어낸다. 입학통지서를 받은 신입생은 물론이고, 그 어느 학생들도 배움터로 갈 수 없어 크고 작은 스크린에서 모든 것들을 해결한다. 돋아나는 새싹, 꽃잎과는 다르게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가는 사람들의 삶. 


  코로나 바이러스의 직접적인 첫 경험은  회사원 두 명과 초등학생 두 명으로 구성된 우리 가족이  마스크를 구해지 못해서,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여기저기에 전화하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 것이었다. 조금 불편하다가 그치는 줄 알았는데,  '잠깐이면 지나갈 거야' 했던 시간들은  2-3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의 삶은 바이러스 이전과 이후를 명확하게 대조할 수 있을 정도로 달라졌다. 나는 아이들의 학원을 모두 중단했고, 개학이 연기됨으로 나태해질까 싶어 열심히 할 것들을 찾아댔다. 수학 문제집을 풀어볼까?로 시작해서 이어진 매일 글쓰기,  한문, 요리수업은 날로 그 주제와 메뉴가 다양해졌다. 또래와 운동장을 누비며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안쓰러워 오르기 시작했던 뒷산에서 체육과 자연탐구/관찰을 동시다발적으로 해결했다. 최근에는 미술시간을 가장하여 'Song's Kitchen' 메뉴판도 작성했는데, 색연필로 삽화를 넣는 시간이 여간 좋기는 했어도, 일하며 가족들을 챙기기에 손과 발, 몸이 모자랐다. 


  학교는, 아이들보다 부모에게 필요한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 지식은 아무데서나 쌓을 수 있지만, 함께 살아갈 친구들은 쉴 틈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영상에서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40km가 훌쩍 넘는 거리를 단숨에 운전하도록 만들어주던 '바람 빛'의 가족들도 그 소중함이 새로이 와 닿았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열 걸음을 채 걷지 않아도 갈 수 있는 이웃의 집은,  찾아갔다가는 실례의 수준을 넘어서 민폐가 되기에 가깝지만 먼 거리를 유지했다. 최선의 애정표현은 간식거리나 생필품을 사다가 서로의 문 앞에 걸어주는 일. 학교의 필요성과 속한 공동체, 이웃의 귀함을 다시 새겼다. 


  원래도 패션에 뛰어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당당히 패션 테러범이 되어간다. 막 나갈 수 없을 때에는 스티브 잡스나 마크 주커버그처럼 회색 티셔츠에 청바지면 훌륭한 패션이 된다. 호박에 줄 긋던 시간은 가족에게 조금 더 신경을 쓴다. 원래도  중요시 여겼던 먹거리에 더 날을 세우며,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하루에 섭취하는 영양소를 머릿속으로 그린다. 하루 삶의 질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아이들의 상태를 가늠하고 이어 나의 상태를 본다. TV가 있었으면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조금 더 수월했을까 싶다가도,  두어 달 간 살아낸 삶을 뒤돌아보면 TV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매사  열심히 살고자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더욱 진화하여 역대급 멀티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는, 


필요와 불필요, 우선순위를 명확히 한다. 


  남편과의 의리와 전우애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부부는 작은 일로 싸우고 큰일 앞에서  똘똘 뭉친다더니 , 정말이지 한 몸 되어 가계의 균형을 유지한다. 두 아이와 함께하는 터라 초기는 물론이고 방심하는 틈이란 언제도 없어야 하기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는 일상들을 산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자꾸만 미뤄, 이제는 평소보다 조금 긴 전화통화로 그 아쉬움을 달랜다. 


  이제 막 감염자보다 완치자의 수치가 더 높아진, 감염 수가 가장 높았던 대구경북 지역에서. 치료를 담당하는 간호사가 꽃놀이를 위해 한강에 모여든 인파들로 다시 무너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값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의미 있는 성취와 보람을 가져야 하는 사람이, 가장 쓰고 무거운 돌덩이를 다시 가슴에 지닌다. 봄은 모두가 함께 맞아야 한다. 


  질병에 가장 취약한 자는 노인도 유아도 아닌 가난한 자. 가난한 사람에게 질병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전 세계가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방역에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내는 와중에도, 그들은 여전히 굶주림, 가난과의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운동량이 적고 음식 섭취량이 늘어 몸무게가 늘어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 '확찐자'. 그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가슴의 비수로 꽂힐지 모른다.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 자녀를, 부모를 바라보는 가족의 심정. 우리는 그 마음의 무게를 모두가 지녀야 한다. '내 것'을 위해서는 '네 것'도 지켜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 모두가 살아갈 수 있고, 살아내야 하는 삶이다. 


  이 사태를 벗어나고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일상을 걸고서, 삶을 걸고서 일하고 있는지-  국가재난상황을 선포한 국가의 수장과, 해당 질병을 관리하기 위한 본부의 장이 지니는 무게를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치료하겠다고 먹지도, 자지도 않고 사투를 벌여가는 의료진과 방역진의 끝없는 하루를 우리는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들이 하루하루 그 적나라한 숫자를  마주할 때의  심정은 어떠할까. 확진자의 걱정과 의심환자의 우려, 완치자의 힘겨웠던 시간들, 우리는 그것들을 끊임없이 상상하고 공감해야 한다. 


누군가가 삶을 고스란히 바쳐 지켜내는 안전함을 누리고 있으면서, 함부로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나도 지키고 상대도 지키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으면서 마스크를 여러 장 구하지 못해서, 또는 착용의 답답함을 발설하지 않기를, 한 달치 급여가 잠깐 얄팍해졌다고 해서 그 두께만큼 마음이 움츠러들지 않기를,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시기에 지녀야 하는 태도가 무엇인지를 매일같이 되뇌기를, 주어진 삶에 고개 숙여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그래서 함께 살아가는 누군가의 마음도 일렁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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