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시간성
아이를 키우며 시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뭔가가 풍족할 때에는 그에 대한 성찰과 계획을 할 필요가 없는 법, 항상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시간의 구획을 긋어주는 사람이었다가, 또 아이들을 어떤 시간 안에 편입시키는 사람이다. 시간의 존재를 인식시키고 시간을 읽는 법을 가르치고 시간을 쓰는 법을 알려주고 또 결국 내가 시간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나는 내 시간을 써서 아이들을 키운다.
내 시간을 쓴다는 것은 내 생의 시간 중 많은 부분을 아이들을 위해 떼어놓는 것이고, 그래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때로 ‘희생’의 범주로 설명되기도 한다. 이를 ‘기꺼한 선택’으로 보는가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보는가는 그때 그때 내 마음과 상황 따라 달라진다.
어쩌면 엄마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가 ‘기다림’일 텐데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전에도 알긴 했지만 더 절실히 내가 기다림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난 아직도 내 시간을 아이들을 위해 온전히 내어주고 내내 기다림의 자리에 있는 것을 어려워한다. 내가 깨어있는 거의 모든 시간이 아이들의 시간 속에 정렬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주 답답해한다.
아이들 주변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뒤틀리고 공간의 해석도 시시각각 달라진다. 그 환상의 시간과 공간과 아이들이 결국 가야 할 현실의 시간과 공간, 그 양쪽에 두 발을 디디며, 자주 분열되며, 또 때로 다른 시공간 속으로의 점프를 몽상하며, 엄마의 시간도 그렇게 흘러간다.
그 함께의 시간 덕분에 아이들은 결국 혼자의 시간으로 흘러갈 것이다. 시간이 없던 자에서 시간을 운용할 수 있는 자로 커갈 것이다. 이 모든 시간 속에서 관계가 성립하고 경험이 쌓이고 기적이 축적됨을 실감하며 한 명의 주체로 설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정지하지 않고 앞으로만 뻗어간다는 것, 그것이 때로 얼마나 안타까운 동시에 또 얼마나 다행인가를 본다. 그렇게 뻗어나가는 시간의 어느 한 줄 위에 서 있는 우리를 본다. 내 진짜 가치는 내가 무엇을 위해 누구와 함께 어떻게 시간을 쓰는 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 속에 담긴다는 생각도 한다.
우리는 서로의 시간에 귀속된다. 아이들은 내 시간의 흐름에 맞춰 자신의 시간을 쓰게 되고 나는 아이들이 펼치는 시간의 자장 속에서 때론 지켜보며 때로 재촉하며 때론 온전히 함께 하며 시간을 공유한다. 결국 나만 생각하던 마음, 나의 시간만 생각하던 마음에, 너를 대입하여 우리의 시공간을 창조해내는 어떤 감안과 조율과 포기가 어느 순간 기꺼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것만 같던 나의 뾰족한 마음이 어느 순간 너를 만나 동그래지는 것
너를 위한 거의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거의 모든 것이 되는 일.
너의 시간과 나의 시간, 그 양쪽의 알력이 서로 만나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온전히 하나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
유한한 시간 이주는
무한한 사랑이다.
너의 시작으로 나는 내게 남은 삶의 모든 시간 속에서
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물론,
함께 할 수 없는 모든 시간 속에서도
너를 생각하고 있지.
내 많은 생각의 시간 속에서 너는
이미 내 안에 있던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이자 실루엣으로
아직 내 안에서 떠오르지 못한 모호한 계획이자 기도로
나와 시간을 나누어 갖지.
너를 키우며
내 모든 시간의 시작점이 된 부모님을 다시 보고,
또 내 모든 시간의 연장선으로 너를 내내 본다.
우리는 뻗어간다.
시간의 품에 안겨 사랑을 나누며.
최근 육아와 모성에 대한 사회에세이 <엄마를 위한 동그라미>를 출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