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가 한명이었을 때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었다.
아이가 둘이 되었을 때에는
‘좋은’이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조금 더 구체적인 형용사를 갖다 붙였다.
언제부턴가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다'고
쓰기 시작했다.
육아를 하며 자꾸만 거친 표정을 짓는 내 모습을
다정함이라는 표현으로
사포질 해내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를 셋 정도 낳아 기르다 보니
그 ‘다정’ 조차 구현이 어려울 때가 많고
아이가 몇이든,
정신없는 육아의 한복판에서는
그냥 엄마로 버티고 서는 것도
힘에 부칠 때가 많다는 것을
결국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애써 쌓아가고 있던
'좋은 엄마'를 보유하는 둑도,
'다정한 엄마'를 구현하는 둑도,
마음에서 무너뜨리고 범람시키기로 했다.
애써 안 되는 것을 쌓아서
둑으로 만들어 버티기 보다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범람시키고
다시 처음으로, 첫 마음으로,
기본 으로 돌아가 흐르게 하기로 했다.
이제 나는 ‘그냥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을 처음 만난 그날처럼,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든 시간 속에서,
나는 그냥 엄마로 내내 함께 할 생각이다.
그렇게 꼭 좋은 엄마,
다정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사라지자
엄마의 강물은 자유롭게 흘렀다.
좋은 엄마도 다정한 엄마도 목표하지 않자,
오히려 엄마로 버티기가 쉬웠다.
그냥 엄마로 충분하기에
그냥 아이들로도 충분했고
그냥 아빠도 충분했다.
자주 버벅거리며,
때로 마비의 감각을 느끼며,
순간순간 거친 표정을 지으며,
그냥 엄마를 구현한다.
육아의 날들이 강물처럼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