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영국에 간다는 얘기를 건너 건너 들은 후배가 환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그 목소리에 담긴 설렘과 반짝임에, 바로 그 말을 끊을 수가 없었다.
유학이 아니었다. 셋째 출산과 남편의 주재원 발령을 계기로, 나는 영국에서 육아 휴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육아 ‘휴’ 직이라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 이야기인가. 육아와 쉼이 어떻게 한 단어 안에 나란히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감상과 환상 만으로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너무 어려웠다. 혼자서 하루 24시간을 오로지 육아‘로만’ 채워야 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아이들 자는 시간만을 기다리는 일상이었다. 읽을 수 없고 쓸 수 없고 만날 수 없으니 가슴이 딱딱해지고 엉킨 감정들이 목까지 들어차는 것만 같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동시에 아이들을 적응시키는 일도 만만치 않았고, 한국에서라면 쉽게 지나갈 많은 일들이 새로운 시스템을 거쳐 실시간으로 돌진해오니 작고 사소한 일상의 과제도 크고 묵직하게 다가왔다.
하루하루 산을 넘어갔다.
그럼에도 읽고, 썼다. 그리고 사실상,
그렇기에 읽고, 썼다.
마음의 경로와 목적지가 단 하나였다.
'읽고 쓸 시간 확보하기'
매 순간 납작해지지 않기 위해, 제한되고 딱딱해지고 함몰되고 축소되지 않기 위해 싸우는 중이었다. 내 시간의 한 조각을 확보하여 읽고 쓰기를 계속하겠다는 그 하나의 목표 의식 아래 일상의 모든 것이 정렬되고 통일되었다.
이것‘도’ 할 수 있으니까가 아니라 이것 ‘밖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내가 숨 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밥보다, 잠보다, 귀했다.
걸으면서 쓰고 졸면서 쓰고, 아파도 쓰고 아프니까 쓰고 기획과 계획과 청탁서 없이도 쓰는, 오로지 쓰기 위한 쓰기였다. 그러면서 나는 내내 기다렸다.
오롯한 혼자의 시간을.
그런 시간들을 통과해서 드디어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혼자의 시간을 '통으로' 얻게 되었다.
아이들이 다른 방에서 자고 있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다른 집에서 자고 있는 시간. 그러니까 엄마 수행의 틈과 틈 사이에 쓰는 글이 아니라, 온전히 글을 쓸 수 있게 확보된 시간.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마음이 허전해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아이들 없는 집이 너무 휑하고, 펜과 종이만 마주한 그 공간 속에서 오로지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니, 막상 주어진 이 자유를 어디서 어떻게 써야 할 지도 막막했다.
웃음이 나왔다.
‘아니 이제는, 어디선가 자고 있는 아이들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시간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도 밀려왔다. 글은, 말하자면 나의 한계를 드러내는 일인데, 아이들 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아이들이 불러서’, 라는 핑계에 기댈 수 없이, 오롯한 나로서의 한계를 쓰게 되는 일인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아이들이 있기에 글을 쓰면서 뻔뻔해졌는지도 몰랐다. 어차피 아이들을 키우면서 쓰는 것이니 엉성해도 좀 봐달라고 해볼 여지가 있었기에 글을 쓰면서 자유로울 수도 있었는지도 몰랐다.
한계가 나에게 주는 자유의 지분이 생각보다 컸던 것이다.
어떤 감정들에 함몰되기 전에 그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 서둘러 나왔다. 언제가 마지막이었을지 모르는 혼자 걷는 밤의 거리. 다리 위에서 흐르는 강물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그러면서 자유와 구속을 생각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일상이 나에게 구속이었지만, 그 구속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했던 글쓰기 역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나에게 또 구속이 되었다. 구속이자 자유였다.
나는 어쩌면 지난 3년 동안 육아 감옥과 글 감옥에 갇혀 있었다. 항상 벗어나기를 꿈꿨지만 사실은 나에게 가장 큰 구속이 되었던 것들이 나에게 가장 큰 자유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가로막는 벽인 줄 알았는데 나를 열어주는 창인 지도 몰랐다.
들어내야 하는 역기인 줄 알았는데 매달려 있는 철봉 인지도 몰랐다.
나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이 결국 내가 의지 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모든 것에 이 전복의 가능성이 있었다.
나를 힘겹게 하는 것이 결국 또 나를 힘나게 했던 것이다.
그날 나는 커피숍으로 가서 좋아하는 라테를 마셨고,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가서 충동적으로 딸기 한 바구니를 사서 안고 집에 들어왔다.
왜 이 밤에 딸기인가, 했더니, 딸기는 아이 셋이 모두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그래서 두 팩을 사도 모자랄 때가 있었고 나는 꼭지를 썰어내다가 뭉그러지거나 작은 딸기 한두 개를 입에 넣고는 '빨리 달라, 많이 달라, 저게 더 많다, 내 것이 더 작다'며 나를 졸졸 쫒았다니는 아이들에게 주느라 맛을 제대로 모르고 지나가곤 했었다.
천천히 딸기를 씻어서 그릇에 담아서 먹으며, 그리고 역시 썼다.
가능성이 통으로 잘려 나갔기에 주어졌던 유일한 한 조각의 가능성에 대해.
전에는 상담하고 글을 쓰며 새로운 영토를 개척해나가는 일에서 '자기 발견'을 해나간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밥해주고 빨래하고 아이들 건사하는 일상의 반복된 행위들 속에서 나를 발견하게 된다.
다양한 선택권을 가진다는 것,
시간이 충분하다는 '풍족이 주는 제한'을 보게 되고
선택지가 따로 없다는 것,
촌각을 다투게 되는 '결핍의 주는 자유'를 보게 된다.
사방이 벽처럼 나를 조여올 때 그 벽을 창처럼 써볼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안돼', 라는 말이 들려오면 이미 닫힌 문을 바라보기보다는 '그렇지만 이건 될걸'을 이야기하며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문을 씩씩하게 열어볼 마음이 전보다는 더 신속히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