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냐하세요

완벽하지 않아야 합니다

by 프시케

<쿠냐하세여>


스물한 살 때 만났던 캐나다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친구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고, 저는 작가는 아무나 될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곤 했지요. 친구는 대책 없이 해맑았고, 저는 쓸데없이 심각했지요. 또 친구는 감탄을 잘했고 저는 생각이 많았어요. 저는 그저 친구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또 저는 이 친구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아마도 저도 이 친구와 비슷한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끝마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어렵다’고 말하곤 했었습니다.





저는, 스스로는 인정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사실 완벽주의자였습니다. 가장 좋은 때를 기다리고 가장 좋은 모습을 기다리는 완벽주의자였지요.

어느 날 저의 이야기를 듣다 못한 친구가 저의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말로 Just do it을 뭐라고 해?"

그때 저는 맥도널드에서 방금 나온 햄버거의 포장을 펼치고 있었지요.

“그냥 하세요.

친구는 제 말을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쿠냐!! 하세요!”


햄버거를 입에 넣으려던 저는 풋 웃었습니다. 웃고 말았습니다. 친구는 스스로 연습하듯, 또 저에게 연습시키듯 한 번 더 강조했습니다.


“쿠냐! 하세여!”

저는 웃으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친구의 서투른 한국어 발음이 귀엽기도 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전까지 마음에 쌓아 올린 저의 심각하고도 단단하고도 현실적인, 삶의 날실과 씨실 사이의 올들이 한꺼번에 풀려가는 느낌을 받게 되었거든요.


친구는 그렇게 같은 자리를 돌고 있는 완벽주의의 도돌이표에 갇혀 있는 저를 거울처럼 비춰주고 꺼내 준 것이었죠.

쿠냐 하세요, 는 문화도 나이도 성도 다른 친구가 저에게 준 유산이었습니다. 너무 빽빽하고 빡빡하게 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었지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복잡하고 어려운 강박으로부터 저를 구해준 것은 복잡하고 어려운 말이 아니라 단순하고 당연한 말이었습니다.





<1=365>

시간이 흘러 이 ‘쿠냐 하세여’ 원칙이 정교 해지는 되는 작은 사건이 하나 생깁니다. 대학원 논문을 쓸 때였는데요, 그때 저는 좋은 논문을 써야 한다는 목표의식을 품고 컴퓨터 앞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쿠냐하세여’가 되지 않았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대체, 논문은 어떻게 쓰는 건가요?”

우연히 연구소에 들른 박사 선생님을 붙잡고 하소연과 같은 질문을 했는데 선생님이 이런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하루에 한 페이지씩 쓴다고 생각해보세요. 항상 시작이 어려운 법이니 처음에는 그냥 아무 평가도 계획도 세우지 말고 그저 나오는 대로만 밀고 나가봐요. 하루에 한 페이지가 쌓이면, 1년이면 365페이지잖아요.”

너무나 당연하고도 쉬운 말이라고도 생각했지만 어느샌가 마음속에 쌓여가던 완벽주의의 벽을 담담히 지나가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닻을 내리고 조금씩 유영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페이지가 아니라 반 페이지를 목표로, 잘 쓰기보다 칸을 채워나간다는 심정으로 논문을 쓰기 시작했지요.

생각해보니 그랬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소설도, 아무리 잘 만들어진 작품도,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지루한 부분이 있고 엉성한 부분이 있고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날 만들어간 나의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그건 단지 오늘의 페이지가 별로 였다는 것을 의미할 뿐, 내일은 더 나은 페이지를 만들 가능성이 백지처럼 우리 앞에 있지요.


그런 생각을 하면 내일은 적어도 더 나은 실패를 하기를 기원하며, 저는 완성도가 아닌 완성에, 완벽이 아닌 완결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논문을 완성했고 또 하루에 한 페이지가 세 페이지, 네 페이지의 습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작년의 어느 날에 시작한 어떤 하루 한 페이지는, 언제나 결국 작품이 되었습니다. 오늘 쓴 한 페이지의 글에서 책 한 권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지만 묵묵히 밀고 나가다 보면 종국에는 ‘완결’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완결을 하고 그렇게 자기 경험으로 뭔가를 완성하고 나면 그다음 페이지를 열어갈 새로운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언제 어떻게 뭔가가 되겠다고 완벽한 계획을 세운 적이 없이 언젠가부터 작가가 되어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주옥같은 공식은
‘실천’으로 완성됩니다.>



몇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가 되고 저만의 마음 작업실을 가지게 된 저는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과거에 저에게 ‘하루 한 페이지를 쓰라’고 이야기해주셨던 박사 선생님으로부터 온 전화였지요.

선생님은 그즈음 한 대학의 교수님이 되어있었고 학생들에게 심리학 책을 읽고 리뷰를 써오라는 과제를 내준 뒤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들을 통해 제 책들을 읽어보시게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흥분된 목소리로 질문을 하셨습니다.

“대체, 책은 어떻게 쓰는 건가요?”

불과 몇 년 전에 제가 그분께 했던 같은 질문을 제가 받게 된 것이지요. 이 질문을 통해 저는 제가 삶에서 내면에 쌓아온 완벽주의의 덫이자 도돌이표의 지점을 다시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한 페이지씩 매일 쿠냐 하세요를 하는 이 모든 과정은, 결국 완벽을 내려놓는 과정이자,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꾸준함이라는 사실을 배워가는 과정이자, 또 어떤 주옥같은 삶의 공식을 안다고 해도 ‘실천’이 따라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음을 실감하는 과정이었던 것이지요.




<지금이 아니면 언제, 내가 아니면 누가 하리>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시작을 못하게 붙잡는 어떤 마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상담실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10대 때는 제가 너무 어린것 같았고, 20대 때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았어요. 30대 때는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했고 40대가 되고 나니 많은 것이 이미 끝났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50대가 되어서야 이 모든 시간을 다시 굽어보며 완벽한 때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지금은 가장 좋은 때를 기다리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바로 해요. 그것이 나중에 생각나지 않을까 봐 원하는 것이 떠오르면 필사적으로 적어놓기도 합니다.”

그분이 가시고 노트에 이런 문장을 적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하리,
내가 아니면 누가 하리.’

세상에 완벽한 타이밍은 없고 우리의 능력은 언제나 한참 모자라고 세상은 온갖 빼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 투성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간 속에서 우리가 기댈 것은 완벽이 아닌 완결, 원하는 것을 꾸준히 해나가는 힘일 수밖에 없습니다.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하루에 한 가지씩 ‘실천’하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오늘, 당신의 한 페이지는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나요? 오늘의 1은 1년 뒤 어떤 365가 될까요? 그것이 무엇이든, 저는 우리 삶에서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힘은 꾸준히 하는 힘이라는 것을 믿기에, 저도 저에게 가장 중요하게 들렸던 말, 또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고 싶은 말을 한번 더 들려드립니다.

쿠냐, 하세여!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