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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 Feb 13. 2023

또다시 파주


또다시 파주에 왔다.

연말을 또 이곳에서 보내게 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어느새 나는 파주를 찾고 있었다.


여전히 파주는 적막하고 고요했다.

작년과 달리 예약이 가득 찬 예약 현황을 보고 내심 걱정했던 마음이 무색할 정도로 여전했다.

그 여전함이 반가웠다.


같은 장소에 머무르며, 같은 식당에서 같은 메뉴를 먹었다. 

조촐한 반복이 연말의 일상이 되었다.

일 년 전 어느 날이었는데, 어제도 이런 날이었던 것처럼.


식당으로 걸어가는 길도, 길가에 즐비한 카페들도,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본 한옥도 그대로였다.

같은 감상을 떠올렸음을 느낀 순간 발걸음이 절로 멈췄다. 

그대로인 게 이렇게도 좋을 일인가 싶게, 그 길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평온해졌다.




유달리 도망치고 싶은 날들이 많았다. 

느닷없이 휴가를 쓰는 날도 많아졌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꼼짝 않은 날도 늘었다.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보내다 사람 없는 한적한 곳을 찾는 날은 더 잦아졌다. 

지난날의 도피가 좋았던 탓인지, 하루의 무게가 무거워진 탓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날 그런 순간에는, 다 읽지도 못할 책들을 와르르 챙겨서 낯선 곳으로 길을 나섰다.

해결되지 않을 답답함은 한 구석에 몰아 둔 채 당장의 고요를 찾았다.


집이 아닌 곳에서의 고요는 다른 세상 같았다.

그곳에서의 시간이 나의 일상인 것처럼 현재를 오롯이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런 날은 집으로 돌아온 순간에도 여전히 나의 시간은 그곳에 있었다.




공간에 사람은 늘었는데 적막은 그대로다.

숨소리조차 없이 책을 찾는 발걸음 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이곳에서 맥주 한 캔과 함께 밤을 보냈다.

퇴근하고 나면 글자도 보기 싫다며 외면하던 책이 여기선 술술 읽힌다.

책 좀 읽어야겠다, 하며 이곳으로 온 나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적막 속, 안온한 밤이었다.




돌아오는 길조차 파주의 하늘은 여전했다.

지난날의 도망을 이야기할 때 마지막은 항상 돌아오는 길 지평선 너머를 물들인 하늘이었다.

카메라로도 담지 못할 장면임을 알면서도 그 순간을 캡처해서 스크랩해놓고 싶을 만큼, 핸들을 놓고 나만 멈춘 것처럼 그 자리에서 변해가는 하늘을 남김없이 담고 싶을 만큼 파주의 하늘은 찬란했다.


마음이 부산한 어느 날, 어느 순간이면 파주를 떠올린다. 그날의 공기, 그날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갈 때 한없이 그곳이 그리워진다.


고향도 아닌 낯선 그곳이 어느새 안식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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