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하기] 나의 글쓰기

글쓰기라는 노동에 대해

by An

나는 아침에 쓴다. 눈 뜨면 습관처럼 모니터에 앉아 전날에 켜둔 아래아 한글 창을 쳐다본다. 모니터 양쪽에는 5권씩 참고할 도서가 쌓여 있다. 색인해 둔 쪽을 펼쳐 흝어보고 나서야 한 글자를 겨우 쓴다. 빠르면 30분, 길면 2시간. 초고 파일을 출력해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고, 붉은 펜을 꺼낸다. 탈고는 마감일까지, 휴식 없이. 내게 글쓰기는 노동이다.

작문에는 법도가 있다. 문어체, 구어체의 구분, 음운론부터 조어, 품사, 구조, 단문과 복문의 교차까지 점검한다. 사실 교차 검증과 참고 문헌의 탄력성, 문단의 배열과 구문의 논리들이 하나의 ‘주제’로 통섭하는지 원고를 만지다 보면 하늘이 보고 싶다. 그러니 나의 문장은 우원하다. 초고의 그것이 가파르게 타고 올라가다가도 몇 번의 퇴고 앞에 꼼짝 못 하고 고개를 조아린다. 나는 게으른 언어를 보면 꾸짖고 싶어진다.

그러나 나는 매문하는 자다. 한 줌 써서 벌고, 탕진하니 나는 고칠 수 있는 사람의 유가 아니다. 나는 우매하고 어두워 사고의 폭은 좁고, 말을 배설한다. 천박하게 저급한 말을 쏟아내고 다음 날 참회하니 나의 술똥은 불우하다. 파편으로 쪼개진 생의 흔적을 어리다 보면 나의 진술은 늘 비루했다.

내가 남을 꾸짖을 형편이 되지 못하니 나라도 엄히 다스려야 할 터인데 나는 멍청하게 쓰고 또 쓴다. 나의 죄는 중하다. 자학적 글쓰기는 글러먹은 내 성정이다. 그러나 초고를 기획할 때, 탈고할 때, 나는 기쁘다. 저 하늘에 고정된 별들을 바라보며 상상하는 즐거움, 순수한 자연을 관찰하며 얻는 생명력, 아름다운 지상의 어여쁜 청년들과 아이들에게 나는 생동하는 인생을 느낀다. 아, 초고를 쓸 때는 어떻냐고? 초고 뭉치를 보면 확 찢어버리고 싶다. 가학적으로 말하면 죽고 싶다. 그래도 쓴다. 저게 다 돈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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