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하기] 학보사를 경험한 당신에게

꼰대의 단견과 그 이야기

by An

그때 우리의 꿈은 기자였지만, 우리는 기자였다. 어느 날, 국장이 부서를 돌아다니며 안내 사항을 전하고 있었다. 그의 자세는 조심스러웠다. 수습기자가 앉는 자리에 처음 보는 얼굴들이 노트북만 어정쩡 켜놓고 두리번거렸다. 국장은 우리더러 우리신문사를 참여관찰하려고 온 타대 학보사 기자들이라고 했다. 그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우리도 내심 불편했던 게 사실이다. 기수별로, 부서별로, 직급별로, 모여 의논하고선 간식거리를 들고, 기자님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하나둘씩 자신의 부서 테이블로 데려왔다. 다들 업무 현장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렇게 3~4곳의 학보사에서 파견이 왔는데, 대구에서 올라오신 차장기자 분이 기억난다. 그는 기자라기보다, 연구자에 가까웠다. 자기 학보사의 루틴과 부서별 커뮤니케이션을 설명했다. 그리고 차장님은 집요하게 우리 부서의 커뮤니케이션에 깊숙이 함께하고 싶어 했다. 그것은 밀착취재를 넘는 참여관찰이었다. 나는 차장님과 함께 부서 드라이브에 접속해 파일들을 하나씩 점검하며, 어떤 의제에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해 왔는지, 고민하고 있는지, 부서는 어떤 루틴으로 돌아가는지, 기자의 하루는 어떤지, 검토할 수 있었다. 당면한 과제만 해치우다가 1년 만에 했던 자기 성찰의 시간이기도 했다. '지방과 지역'이라는 행정 언어, 지방캠퍼스와 지방분권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 보니 대화는 길어졌다. 기차 시간이 다 되었지만, 그는 하루 자고 가겠다고 했고, 조금 더 이야기하다가 명함을 교환했다.


타 학보사와 교류하며 우리는 같은 기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루틴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자는 종일 보고하고, 정리하고, 글 쓰고, 데스크는 종일 회의하고, 보고 받고, 지시하고, 읽고, 리라잇하고. 학생이라는 본분이 분명히 존재했지만, 대학언론의 현장을 뛰고 있는 그들은 그 무게를 함께 짊어지기로 다짐한 자들이었다. 치열하게 의제를 설정하고, 담론을 생산하고, 날카로운 해석과 주장을 내놓고, 지면을 제작하는 언론인이었다. 사회는 대학언론인, 학생기자, 학생언론 등 그들을 다양하게 호명한다. 하지만 그들은 언론으로서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논조인가, 편향인가 그 사이에서 좌절하고, 사실을 선택하고 배제하며 재구성한 현실이 진실인지 의심하며 울고 웃는 누구보다 순수한 사람이었다.


학보사라고 하면 낭만적으로 그리는 사람도 있고, 학보사를 다니는 친구를 두었다면 바빠 보인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비단 학보사만의 얘기가 아닐 것이다. 언론인이 그렇다. 기자는 항상 낭만과 치열함 사이에 놓인 현실을 위태롭게 건넌다.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그런 환경에서 기자는 발전하기 어렵다. 공부하는 기자가 많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웬만해서 당면한 과제 외에는 깊은 '생각'을 피하게 된다. 꼰대로서 잔소리하자면 '당면'과 '생각'은 함께 가야 한다. 다독하거나 연구자가 되라는 조언이 아니다. 항상 내가 쓰는 문장과 어휘를 고민하고, 짧은 독서라도 돌아서면 사색하란 얘기다. 이건 나에 대한 죄스러운 고백이다. 나는 일하는 시간이 길었지만, 일을 잘하는 게 아니었고, 동료들과 같이 있었지만, 사람에게 잘하지 않았다. 늘 함께 일한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대학을 다닌 모두에게 학보사는 낭만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곳에는 구체적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결이 담겨 있다.



대학마다 시험 기간이 이제 끝나가고 있을 테다. 라떼는 시험 기간이 꿀맛 같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건 '게으름뱅이'라서 그랬던 것이었다. 시험 기간일수록 전공을 공부해야 한다. 시험 기간을 통해 학생기자는 사회적 현실을 톺아낼 관점과 이론적 프리즘을 추출할 수 있다. 그게 대학언론을 떠받쳐주는 아카데미즘의 초석이다.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좌절도 안다. 그건 대학 바깥에도 존재하는 엄연한 현실이다.(2022년 신문 열독률 9.7%) 그런데도 왜 써야 하는가. 왜 취재하고, 소통망을 구축해야 하는가. 지배계급이 앉아 있던 공론장이라는 권좌를 민중으로 끌어내린 게 바로 신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론 현장과 정치·사회·문화 등 현장에서 발굴하는 정보와 진실의 유통은 공론장의 첫 단추다. 기자의 존재 이유는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는 한 여전히 유효하다.



현직 대학언론인 분들은 대부분 숨을 고르거나, 다음 취재를 준비 중인 상황이겠다. 다시 전투태세로 모드를 전환해야 할 때가 왔다. 시즌1(개강호~중간고사 전)이 끝나고 시즌2를 맡는 지금, 다시 펜을 들 준비를 하자. 여러분들이 존재하는 한 대학의 공론장은 살아 있다. 이제 여러분들의 생생한 외침이 듣고 싶다. 미국의 언론학자 알철은 언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항상 흥분으로 가득 차게 하는 것.” 교정을 지나치다 지면을 펼친 지금 나는 다시금 알게 된다. 그땐 우리는 모두 기자였는데, 지금도 우리 모두는 뜨겁게 언론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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