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하기] 에이프릴의 서랍

메이데이를 기다리며

by An

누런 원고지에 붉은 펜을 휙 휘둘러요. 이게 너냐. 저것밖에 안돼? 이건 글이 아니야! 타자기를 쓰렴. 조울증이 왔대요. 머릿속은 부옇고 허공엔 글자들만. 깜깜한 방 안에 번쩍이는 모니터 빛에 의존해 활자를 읽어 내려가던 날들이 기억나요.


서랍엔 뒤죽박죽 놓인 책들과 위로 올려진 종이뭉치들. 사내는 무언갈 찾다 책은 우르르 쏟아지고. 날리는 종이 흔적에 그림자를 기댄 채 흐느끼는 눈물방울들. 볼콘스키 공작은 마지막으로 본 하늘에 나타샤의 붉은 뺨만. 톨스토이는 이 장면을 아주 신중히 썼대요. 누가 그러나요? 글쎄요, 나도 몰라요.


나는 잃어간 사랑을 잡으려 잡으려 창공을 부유했는데, 사랑은 땅 밑으로 가서 결혼식을 올리네. 드레스를 입은 그녀 곁, 내가 어울리지 않다는 걸 알아서 나는 멍청하게 울어버렸어. 4월의 신랑신부는 당차게 걸어 들어오고, 객석에 관중들은 환호하고, 시인은 인생에 기승전결이 없댔는데, 다 거짓말이야!


커다란 손이 나를 자꾸만 내려쳐서 아프다고 아프다고 속으로만 소리 냈어요. 그러다 부욱- 나는 내가 아니고 내가 나는 아니고. 주말의 비는 그치고 5월의 햇살이 찬찬히 걸어 들어오는데, 왜 나를 자꾸 창가에 두나요. 저 빛을 수혈한 나는 황달에 걸려 자꾸 기침을 하고, 켁켁 거리고, 그러다 어둡고 좁은 직사각형 서랍에 날 가둬버리고. 그러다 내가 필요해지면 또 부산스럽게 뒤지겠지. 네 그림자는 결국 내가 부유할 때 잠시나마 기댈 텐데 너는 모를 거야. 너는 평생 모를 거야. 그게 네 유일한 구원이란 걸.


좆같이 굴지 마. 병신같이 말하지 마. 시발 어쩌라고. 나는 나라고. 그렇게 방 안의 소동은 강강술래로 바뀌고. 글이 사람 잡는다! 경찰에 신고가 들어오고. 아니야. 그건 언어라는 거란다. 누가 지적질하고. 달력만 넘기면 5월이래. 5월은 메이, 5월의 하루는 메이데이. 에라 시팔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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