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의 기록
[에디터의 말]
우리를 향해 진부한 두 개의 질문이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인공지능 예술과 인간의 예술은 어떻게 다른가? 이러한 질문은 우리를 불편하게 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닫힌 문으로 살 수 없는 우리는 결국 그들을 맞이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런 고민엔 예술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예술에 대한 고민은 작게는 오락거리지만 삶을 이해해보려는 절박한 몸부림으로 확장될 수도 있습니다. 스펙트럼은 당신이 상상하는 이상일 겁니다.
우리는 예술이라는 미학적 실천이 계급의 도구가 되고, 과학기술에게 대체되는 불안을 맞이했습니다. 평소에 생각치 않던 문학, 비문학, 음악, 그림, 영화, 사진 등 앞에 멈춰 서는 일은 정신을 긴장시키는 일이지요. 그래서 잠시 일상에서 끊임없이 매체와 텍스트를 접하면서도 넘겨 흘렸던 순간을 다시 붙잡을 것입니다.
이들을 저는 비교의 광장으로 끌고 데려오고자 합니다. 저는 광장에서 비교하는 자이자 비교되는 자로서 다양한 매체를 횡단하는 일을 작업할 겁니다. 작품에 대한 저만의 체온을 고스란히 담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횡단하기]에서는 감상과 분석이 동시에 시도될 것입니다. 많은 비판 바랍니다.
근대로 이행하며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변화는 후원자(patron)가 없어지고, 대중 앞으로 알몸을 드러내야 했다는 사실이다. 모던(modern)으로서 근대의 산물 속에 흠뻑 젖어 살아가는 당대인에게 예술은 그 자체로 향유(Jouissance)하는 곁가지가 되었다. 그러나 일상으로 갑작스레 찾아온 예술을 여전히 멀리서 바라보는 존재가 있다. 그들을 우린 비평가(批評家)라고 부른다.
비평가들은 스스로를 화폭에서 제외시켰다. 다만 저열한 밑바닥에 위치한 채 고독한 시선으로 예술을 바라본다. 이들의 모습은 동양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동양산수화는 1인칭을 밀어내 3인칭의 세계만 차갑고 그립게 그려낼 뿐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예술작품은 진실을 위한 고투다. 비평가는 스스로를 정치화하지 않는다. 다만 고통이 있는 곳으로 그들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걸어간다. 비평가는 ‘말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난감한 질문 앞에 서서 난공불락으로 보이는 세계를 이렇게 진단한다. “고통의 절대성만이 오늘날까지 계속되어온 유일한 것이다.”(아도르노)
그들에게 예술은 사건(알랭 바디우)이 벌어진 현장이다. 모든 사건은 수많은 단서들이 착종되어 있는 거대한 질문인데, 비평가는 이 질문이야말로 진실이라 여긴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비평가가 택한 길은 정치가 아니라 윤리다.
그들은 대답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발화의 종말과 행위의 파국에서 예술은 시작되고, 그때서야 비로소 비평가는 그들의 입을 연다. 이때 포착된 표정은 어떤 종류의 진실한 표정이다. 진실은 선(善)이 아니다. 선의 윤리는 시스템을 지키고, 진실의 윤리는 시스템을 리셋한다.(신형철) 이 싸움은 “지푸라기 하나에서도 큰 싸움을 찾아내는”(<햄릿> 4막 4장)의 일이다. 비평가는 그러한 임무는 늘 수행해 왔다.
가라타니는 문학의 지위가 높아지는 현상에 대해 도덕적 과제도 함께 짊어지는 것이라며 그 과제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길 바란다면 문학은 그저 오락이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예술에 열광하는 비평가는 저급하다. 비평가에 대한 한 명제, “그의 손 안에서 예술작품은 정신들의 투쟁 속에서 번뜩이는 칼이다.”(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나는 이 명제를 더욱 신뢰한다.
나를 뒤흔드는 순간은 전시회에 걸린 그림을 봤을 때가 아니다. 작품을 덮고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 고요히, 그러나 뜨겁게 비평의 책무를 다하는 비평가를 볼 때마다 마음이 동요했다. 하지만 비평가가 되기에 나는 볼품없다. 이제는 지워져버린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을 걸어갈 만큼 담대하지도 않다. 다만 나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 혼이 나가는 사람이고, 도그마에 휘둘리는 부조리하고 무책임한 사람이다. 나는 언제나 내가 차가운 칼과 텍스트에 대한 온기를 모두 감당하길 바란다.
나는 예술의 모든 현장을 지키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날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어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경을 담아 내가 듣고 사랑했던 매체에 대한 얄팍한 나의 정신을 기록하려고 한다. 대학 레포트 수준이래도 이해해주길.
다음은 가을이 오기 전까지 쓰게 될 5개 주제 목록이다. 그러나 나의 변덕과 게으름으로 지켜질리는 만무하다. 당장은 음악, 문학, 그림, 사회, 비평 철학에 초점을 맞췄다. 가을, 겨울엔 영화, 사진, 언론 등으로 범주를 넓힐 것이다.
내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주제이므로 업로드 주기는 일정치 않다. 주제의 수정과 변경, 추가가 있을 수 있다.
1. 크라잉넛과 <클라라와 태양>(가즈오 이시구로): 펑크록의 청춘론, 정동, 서정, 윤리
2. 김훈 산문과 도스토옙스키: 바흐친으로 횡단하는 산문의 미적 실천
3. 재난은 어떻게 계층을 구조화 시키는가: 아감벤의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보수주의의 윤리학
4. 도시 근교의 정신증(Psychosis)과 메가서울: 라캉으로 독해하는 지방-수도균형발전론
5. 황현산과 고바야시 히데오: 비평가의 두 얼굴, 부정학과 긍정학의 교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