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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is Ku Jan 25. 2024

루앙프라방에 가지 않았다면 몰랐을 감정

Romantic Affair with German Guy in Laos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구글맵을 열고 가려는 동네의 카페를 검색해 본다. 라오스여행을 시작했을

때에만 해도 이곳 루앙프라방 까지 오게 될 줄은 미처 몰랐었다. 애초의 여정은 3박 5일 가성비 갑 패키지투어로 어머니와 새해 첫날 시작했고. 설마 어머니만 부산 가시고. 귀국 항공권을 버리게 될 거라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비엥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함께 치앙마이로 향하기로 계획했으나 어머니가 다시 태국 방콕으로 오시기까지 (아무 준비 없이 나이키 에코백으로 여행을 시작했기에 ) 일주일 정도 시간이 생겨서 동선을 위해서라도 남은 여정을 라오스를 더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난생처음 라오스여행에서 이토록 흠뻑 빠지게 될 줄 몰랐기에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로 오직 준비한 건

라오스 관련된 책을 두권 정도 본 게 다다. 그중 하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으로 <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 이 책은 커버만 보고 그러니까 제목만 아는 상태이고 또 하나는 부산 작가가 쓴 < 라오스에 할 말을 두고 왔어.> 비엔티엔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다 읽어버렸다. 나 또한 책을 내고 싶었던 프로젝트에서 이 책을 내신 거라 내심 얼마나 잘 썼기에 나는 뽑히지 않았지 하는 의심 반 질투 반으로 읽었는데 꽤 진솔하고 술술 읽혀서 좋았다. 뭔가 찾아보면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있을 것만 같은 작가라서 더 친근감이 든 건지 모르겠지만. 해외생활의 외로움을 응원해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예전의 라오스 여행에서 탁발하는 걸 볼 수 있는 루앙프라방도 다녀오셨다는 말에 그럼 나

역시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오기 전날 기차를 예매하고 그냥 나선 것이다.





이른 아침에 도착해서 가는 동안 내내 어느 동네에서 머무를까 하다가 도심 그러니까 야시장 근처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이 맘에 들어서 그곳으로 가려고 역에 나와 있는 아저씨의 차를 타고서 한참을 가다가 숙소 체크인 보다 루앙프라방 여정에 앞서 제대로 된 커피를 한잔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드는 것이었다.




위대한 여행은 맛있는 커피 한잔으로부터..
  All great journey will start
with a great Coffee.



짐도 어차피 미술관에 파는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가방과 에코백 하나라서 괜찮을 거 같은 거다.

그리고 선택한 카페는 메콩강을 바라볼 수 있는

리버사이드 모퉁이에 있는 다다 카페.







처음 가는 카페에서 주로 주문하는 따뜻한 카페라테를 미디엄 로스팅으로 주문한다. 로스팅도 하는 곳이라

이미 카페의 커피 내음이 맘에 든다. 메콩강을 바라보며 커피를 하니 기분이 살짝 업되면서 좋아진다. 당장 카드도 되지 않아서 환전하러 다녀와야 해도 그냥 예정하지 않았던 새로운 도시에서 맘에 드는 카페를 골라서커피를 한잔 하는 거 만으로 좋은 거다.  그리곤 옆에 앉은 외국인과 인사를 나눈다. 나 바로 앞에 주문한 남자다. 그는 3가지를 주문하길래 나는 일행이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을 위해서 다 오더 한 것. 메인은 드립커피, 그리고 조그만 디저트 초코바, 망고요거트 스무디까지 알차게 드시는 이 분은 하노이에

5년 가까이 살고 있는 expat 독일인 J 다.

나란히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며칠 전 혼자 여행 와서 오토바이 빌려서 근처

water fall  폭포에 다녀왔고. 한 군데 더 유명한

꽝시 폭포를 가볼까 어쩔까 하는 중이라고 한다.


나는 이제 막 도착했고. 폭포 같은 관광지보다는

체크인할 곳을 정하고 소소하게 하루 둘러볼까 한다고 서로의 일정을 공유하다 둘 다 특별한 계획이 없어서 그가 건너편 마을에 페리 타고 가보려고 하는데 같이 가보자고 하여 갑자기 1일 투어를 같이 하기로 하게 된 것이다.








그는 독일인 특유의 냉정함이나 진지함 보다는 친근하고 친절한 사람 군에 가까웠고. 나보다 한참 어렸지만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가 혼자만의 카페 타임을 즐기는 동안 나 역시 환전하러 가면서 동네를 슬쩍 둘러보는데 여기가 딱 맘에 드는 거다.

 






베트남에 사는 이를 만나서 그런가? 길을 걷는데

호이안 같은 느낌의 거리가 내내 나와서 기분이 더 업 된다. 흐드러진 나무와 카페 분위기가 프랑스풍인 듯 하지만 그와는 다른 매력. 유럽의 좋아하는 도시 리스본의 어느 길이 떠오르기도 하고 자주 보이는 라오스의국화 프랑지파니 덕분에 이내 향기에 취해서 기분이 더 몽롱해지는 듯한 묘한 취기가 올랐다.

커피 한잔에 취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거?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환전하기 위해서 그냥 은행을 가기로 했는데 한 군데는대놓고 수수료가 얼마야. 다른 데 가도 좋아하길래

근처 다른 은행을 갔고. 환율이 나쁘지 않았고. 어쩌면 은행의 탈을 쓴 환전소 일지라도 소량을 환전하고 가고싶던 숙소가 아니라 그냥 이 동네에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한다.

루앙프라방에 오려던 하나의 이유였던 탁발 행렬만을 보기 위해선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데 그곳에 가면

2~3km 나 아침에 걸어야 하기에 그냥 일단 여기에서 하루 이틀 지내보기로. 카페로 돌아가는 동안에 보인 게스트하우스, 호텔 은 아주 많았고, 마음에 들면 역시나 가격이 부담스럽고 체크인하고도 내내 외부에 있을 텐데 싶어서 그냥 카페에서 가까운 호스텔로 정했는데 가격도 좋고 개인실 베드룸이라 그냥 정했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나중에 약간 후회했다.




my bed





that’s the other good hotel



위치가 좋다는 거 말고는 그리고 나 말고 손님이 1도 없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지만. 강가 바로 앞이라는 거 착한 가격 말고는 단점이 더 많은 곳이지만 그냥 괜찮았다. 그리고 독일인은 시간 약속이 정확하다고 했던가? 내가 만난 대부분의 그들은 그랬다. 10분 전에 나오거나 딱 제 시간 전에 나오는 그들의 습성 그 역시 미리 내 숙소 앞에 와서 나를 부른다.


어느새 점심 때라 그냥 보이는 메콩강이 보이는 곳에서간단하게 허기를 채운 뒤 그가 제안한 건너편 마을로 가기 전에 잠시 동네를 함께 둘러본다. 그리고 여행사에 가서 꽝시 폭포 가는 걸 알아본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꽝시 폭포는 22km 정도 떨어져 있기에 오토바이로 가기엔 아주 살짝 부담스러운 거리라서 교통편 물어보니 100,000킵(6,500원 정도) 하기에 그럼 내일 가볼까? 하고 바로 예약해 버린다.


그리고 페리를 타고 건너편 마을 가기. 동네에 뭐가

있냐 하면 딱히 없다. 그저 로컬 사람들이 사는 곳이고

몇 개의 사찰이 있다는 거 말고는 모른다. 그런데 그냥 강을 건너가는 것도 좋고. 바람도 살랑살랑 기분이

일렁인다. 일요일의 햇살은 더없이 뜨겁고

어제는 몰랐을 두 사람 그리고 오늘이 카페에 나란히 앉지 않았더라면 평생 모르고 지났을 둘은 오늘 하루 같이 데이트립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가는 대화는 별 다를 게 없고.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특별하게 없다.

그저 오늘 하루를 무탈하게 보내는 것.

우리나라로 치면 1970년대 시골 동네 같은 아주 오래된 느낌의 마을과 사람들을 지나고 사찰을 몇 지나고

스님이 보이기에 인사를 하자고 청한다.

우리나라에도 잘 모르는 절에 가서 함께 갑자기 차를 마시지는 않지만 그냥 영어도 통하지 않는 스님에게 절을 한다. 그리고 그중 젊은 스님이 나와 그의 손에 오렌지색 실을 매듭지어주면서 뭔가를 중얼중얼 빌어주신다. 뭔가 에너지를 전달받은 기분.

새벽같이 방비엥에서 출발해서 점심 후에 약간 졸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젊은 스님이 손과 팔을 통해서 그리고 어떤 말로 무엇을 빌어주셨는지 모르지만


좋은 기운이 스며들었다.






졸음도 사라지고 또 다른 사찰에 올라가서 아주 잠시 파워 냅을 청하고 어느새 선셋을 마주한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고. 처음 가보는 카페에서 커피를마시고. 낯선 이와 하루를 보내기로 하고.

새로운 숙소에 체크인하고.

그리고 그와 아주 짧은 입맞춤을 한다.

진한 키스가 아니라 청춘이 할 법한 얕은 입술의 만남.


그리고 뭔가 낮잠을 자기 전과 후의 기분이 조금 다르다. 다시 페리를 타러 승선장에 왔을 때 때마침 선셋이

붉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는 나를 아름답게 담아주었고.

우리는 밤의 루앙프라방을 걷기로 한다.

우리의 밤은 분명 어제는 없을 어쩌면 내일도 없을

그런 아름다운 밤이다.






가려고 하던 레스토랑이 손님으로 꽉 차서 나는 첫날이라 야시장에 가서 먹어도 된다고 말하며 이미 그쪽으로

몸이 향한다. 소소하게 아이쇼핑을 하고 좋아하는 과일로 주스를 하나씩 마시고. 그리고 탄탄멘을 주문하고

군중 속에서 소란스럽게 식사를 한다.

그리고 은은한 가로등이 이어지는 루앙프라방 올드시티를 천천히 돌아서 걷고 각자 숙소로 간다.

내일은 또 폭포로 가야 하니까 일찍 쉬기로 한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까?

루앙프라방에 오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감정을

하나 배운다. 느끼는 게 아니라 배운 건 이런 감정이 들지 몰랐기에...


그 감정을 가르쳐 준 도시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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