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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코치 Dec 01. 2021

<시민케인>의 서사는 어떤 점에서 시대를 앞선 걸까

시민케인 분석 2편

지난 시간에는 <시민 케인>이 역대 최고의 영화로 꼽히는 데 있어 그 배경에 놓여있는 것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시민 케인>이 현대영화의 특질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까닭에 비평가들로부터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히는 작품으로 논의되었다는 점을 말씀드렸었지요. 오늘은 <시민 케인>의 현대영화적 특질이라 할 딥포커스를 통한 시퀀스 쇼트와 서사에서의 파편적 액자 구성이 기존의 영화와는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비평가들이 그것을 왜 특별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시간부터 가급적이면 영화를 감상하신 뒤 보시는 것을 권하겠습니다. 내용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당부의 말씀드립니다.


1 <시민 케인>의 서사 구조가 갖는 영화사적 의미


<시민 케인>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로즈버드에 의문을 갖는 뉴스팀


언론계의 거물인 찰스 포스터 케인이 사망한다. 이때 나지막히 '로즈버드'라는 말을 남기는데 한 영화제작사의 뉴스팀이 이 ‘로즈버드’의 정체가 무엇인지 추적한다. 뉴스팀의 취재원 톰슨은 로즈버드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케인과 가깝게 지냈던 다섯 사람, 후견인 대처, 동료 번스타인과 릴랜드, 아내 수잔, 집사 레이몬드를 만나 케인에 관해 듣는다. 그러나 로즈버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고 톰슨은 끝내 로즈버드가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한다. 영화는 관객들에게만 로즈버드가 무엇이었는지 보여주며 끝난다.


5명의 회고 또는 회상의 플래시백을 통해 케인의 생애를 들여다보는 구성입니다. 케인의 삶이 소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연대기 순으로 펼쳐지는 편이지만 이것은 5명의 시선을 거친 다면적인 접근입니다. 이때 이 5명은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겪었던 범위 안에서 케인에 대해 말합니다. 영화 속 어느 누구도 케인의 생애 전체를, 케인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 관객이 전지적 관찰자가 되기도 하지만 <시민 케인>에서는 아닙니다. 케인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하는 것은 관객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관객들은 특집 뉴스를 보며 케인의 주요한 삶의 궤적을 확인하고, 이후 주변인들의 회고로부터 사적인 삶까지 들여다 보게 되지만 찰스 포스터 케인이라는 이 인물에 대해 속시원히 알지는 못합니다. 심지어 로즈버드에 관해서도요.


케인과 가장 친밀했던 인물들인 번스타인, 릴랜드, 수잔


그렇다면 이게 왜 특별한 것일까요?


앞서 <시민 케인>은 현대영화의 특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현대영화는 고전영화로부터의 탈피에서 시작되었다고 말씀드렸었지요. 따라서 현대영화에 대해 알려면 고전영화에 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일단은 간략하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전영화는 고전적 서사와 고전적 편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 고전적 서사는 저희 채널에서 그동안 말씀드렸던 드라마의 기본 구조를 따르는 서사입니다. 주인공이 문제 상황, 즉 곤경에 처함으로써 그에게 할 일이 주어지고, 주인공이 그 일을 마치면, 그에게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다시 안정 상태에 들어섬으로써 이야기가 끝나는 구조입니다. 이때 이 과정은 인과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찾아 그것을 처리하거나 해결해야만 하는,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야기는 원인은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직선적 구도를 갖습니다.


고전적 서사의 구조


반면 <시민 케인>의 파편적 구성은 인과적이지도 직선적이지도 않습니다.


<시민 케인>의 서사를 고전적 서사의 기준으로 보면 묘하게 뒤틀려 있습니다.


첫째, <시민 케인>은 두 겹의 주인공을 갖습니다. 고전적 서사의 구조에서 보면 톰슨이 주인공이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케인이지요.


앞서 이야기 했듯 고전적 서사의 전개는 주인공에게 임무가 생기고, 주인공이 그 임무를 완수하면 사건이 종결되는 구도를 띱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임무를 완수하는 과정 또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인과적으로, 직선적으로 전개됩니다. 이때 관객은 주인공의 시점에서, 즉 주인공의 입장에서 사건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따라서 주인공이 고분분투하고 있는 가운데 몰입과 동일시, 감정이입이 일어납니다. 주인공의 임무 또는 할 일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동기인 것이지요.


반면 <시민 케인>에서는 톰슨이 로즈버드의 의미와 정체를 찾는 것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동기인데 톰슨은 매개자, 징검다리 역할만 할 뿐이고, 관객이 주목하고 관심있게 바라보는 이는 케인입니다. 뿐만 아니라 케인은 객관화되어 제시됩니다. 관객은 케인에게 동화되지도, 그의 입장으로 빠져들지도 않습니다.


둘째, <시민 케인>의 서사는 직선적 일면 구조가 아닌 파편적 다각 구조, 순환적 이중 시간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전적 서사 구조를 따른다면 <시민 케인>은 이런 식으로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고전적 서사를 따른다면


톰슨이 주인공이 돼서 로즈버드에 대해 조사하고 파헤치는 과정을 중심으로, 의외의 인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실이 드러나고, 그 사실이 드러남으로 인해 악영향을 받는 어떤 중요한 인물이 이 사실을 감추려하는 가운데 톰슨이 위험천만 상황을 겪게 되고, 결국 로즈버드와 관련된 결정적인 비밀이 밝혀지면서 그동안 케인이나 주변 인물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위상이나 오명이 뒤바뀌는 식의 전개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인과적, 직선적 전개입니다.


반면 <시민 케인>에서는 톰슨의 얼굴 조차 볼 수 없으며 그는 이야기를 밀고나가는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도 않습니다. 뉴스, 대처의 일기, 번스타인, 릴랜드, 수잔, 레이몬드 등 여섯의 화자가 찰스 포스터 케인이라는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들은 각각 다른 입장에서 다른 시기, 다른 면모의 케인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톰슨은 케인과 친밀했던 인물들인 번스타인, 릴랜드, 수잔에게서 마저 로즈버드에 대해 듣지 못합니다. 톰슨은 로즈버드에 대해 끝내 알지 못하는데 이는 초기에 설정된 목적이 달성되지 못하는 것이지요. 관객들에게는 로즈버드가 무엇인지 확인시켜주긴 하지만 사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데이비드 보드웰과 크리스틴 톰슨은 『영화예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시민 케인>이 이러한 전통에서 만들어진 대부분의 영화들보다 더욱 애매모호하게 되는 몇 가지 방식을 알게 될 것이다. 욕구, 성격, 그리고 목표들은 항상 설명되는 것은 아니며, 갈등은 때로 불특정한 결과를 낳고, 마지막에는 전지성의 강조가 미약하게 된다. 특히 결말은 고전적 영화에서 기대될 수 있는 완결성의 정도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1950), 알랭 레네 감독의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1961) 등 파편적 다각 구조를 가진 작품들이 영화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보았을 때 <시민 케인>의 시도는 꽤나 선구적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순환적 이중 시간의 구조


뿐만 아니라 4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필름 누아르에 있어서도 <시민 케인>은 선구적인 작품입니다. 순환적 이중 시간의 구조는 필름 누아르에서 전형적으로 쓰입니다. 필름 누아르가 정형화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수수께끼(mistery)로부터 시작해 미궁으로 빠져드는 사건, 탐정의 탐문과 추적 같은 면면들을 서사적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데 <시민 케인>이 꼭 이러한 구성을 가지고 있지요. 시각적으로는 표현주의적 모드(mode)라 할 로우 키(low key) 조명과 강한 콘트라스트, 비스듬한 하이-로우 앵글, 그로테스크한 무대(공간) 구성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역시 <시민 케인>의 특징입니다.


표현주의적 모드


내용이 너무 길어졌지요? 딥포커스를 통한 시퀀스 쇼트까지 한꺼번에 말씀드리려고 했지만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여기서 끊고 다음편에서 이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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