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케인 분석 3편
(이어서)
<시민 케인>이 가지고 있는 기념비적인 의미를 이해하려면 여러 차례 강조했다시피 ‘고전 영화로부터의 탈피’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새로운 예술적 패러다임의 등장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민 케인> 첫 화부터 읽어오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잘 아실 겁니다. ‘고전 영화로부터의 탈피’는 간단히 말해 고전 영화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전 영화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고전 영화에서 관습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구문론적 규범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고, 흔히 사용하는 말을 빌리자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문법 체계’를 따르지 않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은 이러한 구문론적 규범을 따르지 않는 작품입니다. 그중 서사에 관해서는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고 오늘은 편집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파편적 서사가 고전적 서사에 대응하는 개념이라면 오늘 말씀드리는 딥 포커스는 고전적 편집에 대응하는 개념입니다. 앞서 딥 포커스의 중요성은 기술이 아니라 비평적인 측면에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딥 포커스-전심의 데쿠파주-시퀀스 쇼트가 하나로 묶이는 개념인데 이 개념이 고전적 편집, 즉 기존의 편집 문법 체계를 대체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민 케인>의 시퀀스 쇼트가 갖는 차별점을 알려면 먼저 고전적 편집의 형태를 알아야겠지요? <시민 케인>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카사블랑카>를 보며 고전적 편집의 형태를 확인해보겠습니다.
주인공 릭(험프리 보가트)은 카사블랑카에서 아메리카나라는 술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메리카나는 독일군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려는 사람들이 은밀한 거래를 주고받고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비자를 파는 우가테(피터 로리)라는 인물이 독일군에게서 훔친 통행증을 릭에게 맡기는 장면입니다.
소동을 처리하고 있던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릭에게 우가테가 말을 걸어 그를 멈춰세웁니다. 릭은 잠깐 말을 받아주고 자기 자리로 돌아갑니다. 우가테는 릭의 테이블로 와 다른 화제를 꺼냅니다. 우가테의 구부정한 자세에 맞춰 화면에 릭과 우가테, 두 사람이 꽉 차도록 리프레임이 이루어집니다. 우가테가 의자에 앉자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사람이 화면에 꽉 차도록 리프레임이 이루어집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통행증에 관한 대화가 시작됩니다. 릭의 얼굴이 중심이 되는 쇼트, 우가테의 얼굴이 중심이 되는 쇼트로 나뉘어 대화의 맥락에 따라 두 쇼트를 번갈아가며 보여줍니다. 이때 꼭 말하고 있는 순간에 맞춰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듣는 사람의 표정이나 반응이 중요할 때는 말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고전적 편집은 오늘날에도 쓰이고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볼까요? 기우와 민혁이 슈퍼 앞 간이 테이블에 앉아 술잔을 기울입니다. 두 사람이 테이블로 와서 자리에 앉으면 한 사람, 한 사람을 번갈아 보여줍니다. 대화가 고조되자 기우와 민혁의 얼굴을 조금 더 크게 보여줍니다.
제가 대화 장면을 집중적으로 말씀드리는 이유는 대화 장면이 고전적 편집의 가장 전형적이자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지만 파악하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고전적 편집은 오늘날에도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일일 연속극, 주말 연속극은 장면의 7-80%가 이러한 고전적 편집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그런데 <시민 케인>은 기존의 관습을 거스르고 무언가 다른 것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