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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Sep 30. 2021

지독히 고독한 그 남자의 춤, Israel Galvan

# 010 열번째 이야기

옛말에 "큰 나무 옆에는 작은 나무가 크기 어렵다"라는 말이 있다. 이를 뒤짚어 버린 집시 가족이 있다. Galvan Family이다. 여기서 커다란 나무라 하면, 부모님인 호세 갈반 Josè Galvan 과 엔제니아 데 로스 레우에스 Engenia de los Reues이고, 그늘에 가려질 작은 나무들은 이들의 자녀인 이스라엘 갈반 Israel Gavan과 파스토라 갈반 Pastora Galvan 이다. 플라멩코를 배우는 이들이라면 갈반 패밀리 Galvan Family의 공연 비디오를 안 본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플라멩코의 정규 교재 리스트 마냥, 빠지지 않고 보고 배우는 것 중 하나이다. 이들의 플라멩코는 영락없는 집시 집안의 정통 플라멩코이자, 가족들의 따스하고 질긴 연대감이 잘 드러나며 뜨거운 플라멩코의 열기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런 플라멩코의 정통적 집시 가정에서 자란 이스라엘 갈반 Israel Gavan은  성인이 되자, 정통 플라멩코 춤을 추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몸의 언어를 귀기울이며 독특한 자신만의 방식의 플라멩코를 창조해 나갔다.이로써 외부 세계에서 센세이션을 몰고오고 세계 곳곳에서 불려 나갔지만, 정통 플라멩코 세계에서는, 특히 자신의 부모님과 친지들에게는 한때 플라멩코의 반항아라던가, 인정받지 못하는 편륜아 취급을 받기도 했었다. ( 현재 그는 세계 곳곳의 플라멩코 비엔날레들에 초청받고, 스페인 국내에서도 플라멩코 댄서들 중 한 손가락에 꼽히는 댄서로써 인정받고 있다. )



그럼, 무엇이 그를 정통 플라멩코계에서 그렇게도 모질게 취급받게 만들었었던 것일까? 그의 춤을 딱 보면, 정통적인 플라멩코 춤과는 꽤 거리가 멀었다. 보통 남자들의 움직임은 팔 동작을 절제하면서 발의 움직임에 더 많이 집중하고, 마치 소를 죽이는 투우사처럼 허리와 등을 꼿꼿이 세우는게 일반적이다. 그에 반해, 그의 몸의 선을 보면 마초적인 면보다는 여성적이며 부드러운 형태를 고수한다. 또한, 팔 동작을 많이 쓰고 투우사이기보다, 투우사에게 죽임을 당할 소를 더 연상시키게 하였다. 그는 정통적 플라멩코를 그냥 받아들이는데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자신에게 맞게 융화시켜서 새로운 형태의 자신만의 플라멩코를 만들어내었다.


이런 그의 공연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세비야 Sevilla에서 생겼다. 그것도 공짜 공연이! 와우! 공연표를 구하러 새벽부터 일어나 줄을 서서 표를 받으러 가는 수고 따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옛날 어린시절 서태지(유일하게 한국 가수를 열광적으로 좋아했었던 때였다.)의 공연표를 구매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아니 그 전날부터 밤을 지새우던 아이들을 상상하며, 나도 이들처럼 그 전날부터 밤을 지새워야 하는건 아니야? 하는 걱정을 하며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했었다. 자연히 그 다음날 새벽 자명종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새벽 공기를 가로질러 매표소에 가보니, 예상 밖으로 나의 앞에는 2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만족스럽게 얻은 귀한 공연표를 가지고 그의 공연장으로 발을 옮겼다. 그의 공연장은 여느 공연장과는 전혀 달랐다. 여기저기 무너져서 폐허에 가까운 러프한 공간에, 바닥 또한 흙으로 뒤덮여져 있었다. 공간 자체가 억지로 분위기를 만들지 않아도 무대의 역할을 해주는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무대 바닥 또한, 페허인 공간 그대로를 사용하면서 지름이 몇미터 안되는 바닥판이 깔려져 있을 뿐이었다. 무대는 아주 긴 직사각형 복도처럼 되어있고, 관객들은 건너편 관객과 얼굴을 마주보게 되어있었다. 이는 무대의 앞과 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의미는 앞과 뒤를 에워싼 관중들을 감안한 연출을 준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드디어 그가 무대에 나왔다. 그는 혼자였다. 그를 서포트해 줄 기타 연주라던가, 깐떼(노래 부르는 이), 빨마(박수와 추임새를 넣어주는 이), 까혼(나무 박스형태의 북) 등, 아무도 무대에는 보이지 않았다. 약 1시간 30분가량의 공연 내내 그는 모든 소리를 혼자서 주도했다. 압도적인 침묵 속에서 온전히 그가 만들어내는 움직임과 소리만이 존재했다. 격렬했다가도 침묵과 함께 이어지는 그의 발소리와 간간히 들려오는 박자를 세는 소리, 그의 빨마, 그의 발이 만들어 낸 모래 연기가 흩뿌려지는 순간의 시간이 멈춘듯한 정적과 다시 시작되는 그의 발이 내는 리드미컬한 소리. 정통 플라멩코에서는 보지 못했던 그의 특유의 손놀림과 몸놀림등. 그의 춤에 빠져서 나도 모르는 새, 공연 내내 나의 입은 벌려져 있고, 눈의 동공은 커지고, 나의 귀는 예민해질만치 예민해지고, 나의 팔의 소름이 돋듯 모든 신경세포가 깨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는 혼자였다. 공연이 시작했을때부터 끝날때까지 그를 제외하고서는 단 한명도 무대에서 볼 수가 없었다. 다만, 그가 춤을 추며 이용하는 몇몇 도구들이 전부였을 뿐이다. 흔들 의자, 나무로 짠 관, 나무 바닥 등.... 흔들 의자와 함께하는 그의 춤은, 마치 마루인형과 단 둘이서 인형극을하며 놀던 지극히도 개인적이고 은밀했던 어릴 적 그 때를 연상케 하였다. 그는 모든 사물들을 어린 아이가 새로운 사물을 보고 가지고 놀듯 그 물건의 용도의 의미를 상실한채 마냥 가지고 논다. 그럼으로써, 그들과의 소통을 시도해본다. 그리고 나는 그의 춤 속에서 소통의 울부짖음을 보았다.


황소처럼 고집스럽고 고독한 그 남자의 춤....


그 남자의 춤을 다시 한번 보고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BTXf01hRr94


https://www.youtube.com/watch?v=WQXQIGivW0k


https://www.youtube.com/watch?v=15lXsNhX_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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