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살아온 인생을 돌아 보기에는 짧은, 41년이란 세월 속에서, 플라멩코가 내게 남기고 간 흔적은 여간 강렬해서 도저히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고는 생각 할 수가 없다. 한참 고열을 앓다 깨어난 것처럼, 몽롱하고 반쯤 잠긴 초점없는 눈은 허공을 해맨다. 마치 연인과의 잠자리를 나눈 꿈에서 깨어난 듯 고르지 못한 숨결을 내쉬듯 심장 박동은 고르지 못하다. 오늘도 나는 플라멩코를 한참 추던 그 시절의 어딘가에서 서성이다 잠에서 깨어난다. 그렇게 플라멩코는 또 다시 강렬하게 다가왔다가 그 여운을 가시지 않고 불쑥불쑥 불현듯 고개를 내밀며 내 곁을 서성거린다.
지금은 마치 회답없는 이에게 편지를 쓰듯,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이를 그리워하듯 무작정 펜을 움직인다. 이렇게 아직까지도 내게 펜을 움직이게 하는 이 위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무엇이 아직까지도 내게 플라멩코에 집착하게 만드는 걸까? 앞뒤 가리지 않고 온몸을 불사르며 퐁당 그 열정에 몸을 던지던 그 시절이 그리운 걸까? 아니면, 미쳐 다 이루지 못한 꿈, 미쳐 다 맞추지 못한 퍼즐 조각을 완성하기 위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