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는 비를 보며 아내가 던진 말 한 마디에 시작한 막걸리 만들기가 끝났다. 아직 거른 후 물 타지 않은 원주 한 병만이 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조용히 숙성되고 있다. 청주와 원주에 물을 타 도수를 낮춘 막걸리는 그림처럼 아내 생일에 개시했다. 매일 조금씩 저녁 먹으며 파전에 한 잔, 치킨에 한 잔, 고기구이에 한 잔씩 하고 있다. 처음 걸렀을 때는 꽤 많아 보였는데, 너도 한 잔, 나도 한 잔 하다보니 왜 더 많이 담그지 않았냐며 아내도, 동생도 성화다. 그래서 조만간 또 날을 잡을 생각이다.
누구나 삶에 드라마가 있다. 희극일수도, 비극일수도 있다. 코로나 덕에 인생 계획이 많이 흔들리는 중이다. 매일 날이 서 있는 와중에 막걸리 한 잔이 잠깐 많은 걸 잊게 해주더라. 술 못 먹는 체질이라 딱 한 잔이면 된다. 가성비 좋구나.
곧 많은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면 이곳에서 술 만들고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집중한 적이 생에서 몇 번이나 있었나 싶다. 누룩과 입국부터 만들기 시작해 막걸리와 청주를 지나 증류한 소주까지. 재미있을 것 같다.
'거 봐. 내 말만 잘 들으면 된다니까. 아내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잖아.' 막걸리 한 잔 하며 술 담그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하니 아내가 알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생색을 낸다. 자기가 마시고 싶다는 말을 안했으면 이 술도 못 마셨을 거고, 내가 양조의 즐거움도 몰랐을 거라며. 아니 술은 내가 다 담궜는데, 생색은 왜 니가...아니다. 맞습니다. 아내 말이 다 맞고요.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