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예람 Jun 07. 2017

처음에서 시작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소설.

미나토 가나에 - 리버스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이층짜리 목조 건물. 후카세의 집은 일층이다. 부동산을 찾았을 때, 햇볕이 잘 드는 이층 모퉁이 집이 비어있어 손님은 운이 좋다고 했지만 실제로 둘러보고 하나 더 비어 있던 일층 집으로 정했다. 이층 모퉁이 집은 철제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카랑카랑 경쾌하게 들렸다.

아주 잠깐, 마음이 흐트러졌다. 다음 순간 현기증이 날 정도로 머리 꼭대기를 짓누르는 압박감에 휩싸였다.

저 소리와 함께 나를 찾아와주는 사람은, 이제 없다. 하지만 나는 분명 저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 녀석을 떠올릴 것이다.


'후카세 가즈히사는 살인자다.'

소설, 리버스의 첫 시작이다. 소설은 비교적 갑자기, 난데없이 라이트 훅을 날리면서 독자를 잡아끈다. 그러면서도 해일이라도 닥친 것처럼 거세게 몰아치던 분위기를 상쇄하려는 듯 비교적 일상적인 이야기가 잔잔히 진행된다.

참 이상하게도 첫 문장 때문인지, 상당히 평화롭게 진행되는 일상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전체적으로 스산한 분위기가 감돈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주인공은 살인자라는 문장이 독자의 머릿속을 내내 휘저어놓는다.


어쩌면 후카세라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후카세라는 인물이 마치 나와 같다면서 공감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지도 모른다.

주변에 관심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매우 의식을 하고 있고 성격은 소심하고 자신감이고 자존감이고 바닥이나 다름없다. 과거에도 현재도 어쩌면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없을 것 같은 사람. 본인 스스로도 나는 별로 특별하지 않다고 말을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후카세 가즈히사라는 주인공이다.


커피를 컵에 따른 사람이 커피메이커 옆에 놓아둔 저금통에 커피 값도 직접 넣는 것이 규칙이라 장사한다는 느낌도 없고, 원두 값을 일일이 보고할 필요도 없다. 예산에 맞추려면 사실 한 단계 낮은 블렌드가 적정선이다. 블렌드라도 양판점에서 파는 가장 비싼 원두보다 몇 단계는 품질이 높지만, 매주 다른 종류의 고급 원두를 구입하는 것은 하루 중 고작 몇 분이라도 원의 중신에 있고 싶기 때문이었다.
먼저 드시라고 선배에게 양보해도 다들 후카세가 첫 잔을 잔에 따른 다음에야 줄을 서는 것도 기뻤다.
시시한 특기일지도 모르지만, 덕분에 그가 있을 자리가 존재한다.
후카세의 행동을 기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p. 25

처음에 다소 불안한 첫 문장으로 시작했던 이 소설은 이야기가 거듭됨에 따라, 후카세 가즈히사는 살인자다 라고 적힌 편지를 증거처럼 내미는 미호코에게 후카세가 줄곧 숨겨왔던 이야기를 털어 놓고 지금까지 자신이 친구라고 생각했던 히로사와의 흔적을 밟기 시작함에 따라 점점 성장소설처럼 변모해간다. 그래서 결국 나중에 가서는, 모든 진실이 파헤쳐졌다고 섣불리 판단을 하며 애써 짠한 마음을 억누르면서 후카세와 미호코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지에만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 사건 때문에 두 사람이 결국 헤어지게 되겠지만 그래도 상처를 딛고 미래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속없이 생각하면서.


어쩌면 은연중에 결말을 예측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결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예측했다고 해야 옳겠지. 사실 내가 생각했던 것이 완벽한 결말은 아니더라도 그에 조금쯤은 가까웠으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심 충격을 받았던 것은, 소설 내내 감돌던 불온한 분위기가 온전히 해결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나자 어쩐지 작가에게 속았다는 기분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버렸다. 한 여름 밤인데도 온 몸에 소름이 돋은 탓이었다.


툭 내뱉듯 던져진 마지막 대사. 한 순간에 모든 내용이 스쳐 지나가면서 그것을 뭉뚱그려 나타낸 것 같은 자조적인 마지막 대사. 어쩐지 지금까지 읽어왔던 모든 내용은 그 대사만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연 듯 들었다.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미나토 가나에는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바라건대 독자 여러분, 어서 읽어보시고 그다음에는 '나는 알지'의 웃음을 킬킬 흘리며 '앗!'의 비밀을 꼭 지켜주세요."

이제는 작가가 언급한 '앗!'의 비밀을 알게 되었건만, 기분이 왜 이리도 축축 가라앉는지. 이거는 너무 악의적인 농담이 아니냐고 울상을 짓고 싶어질 정도다.


"자네였나."
히로시와의 아버지가 뺨을 누그러뜨렸다.
"예?"
"우리 귤밭에서 형님이 벌을 치기 시작했거든.
집사람이 요시키에게 벌꿀을 잔뜩 보냈어.
빵에 뿌려 먹는 걸 좋아한다더구나.
그렇더라도 너무 많이 보냈다고 잔소리를 했더니,
집사람이 확인해보겠다며 전화를 걸었지.
그러더니 의기양양한 얼굴로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친구한테 줬더니 기뻐했대요,
늘 굉장히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주는 친구래요,
하고 말하지 않겠니?
그러고는 그 친구라는 게 여자 친구 아닐까?
하고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하길래
시샘하는 거구나, 그렇지? 하고 놀렸지.
커피는 대개 애인하고 마시는 거라면서."


작가의 이전글 양심없는 욕망의 결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