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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람 Jul 12. 2015

허위, 기만, 미완성, 그리고 삶

프란츠 카프카 - 소송

신부가 말했다.

"모든 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그것을 다만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울한 의견이로군요."

K가 말했다.

"허위가 세계 질서가 되어 있으니까요."


미완성 소설이라 그런지 중간 중간 이름이 틀리는 부분도 있고 카프카가 착각하고 고치지 않은 부분도 종종 눈에 띄었다.

그렇기에 더욱더 이 소설과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미완성으로 끝난 소설처럼 K의 인생 또한…….


소설은 주인공 요제프 K, 일명 K가 눈을 뜨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K는 평소와 다름없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은행으로 출근하기 위해 하숙집의 가정부를 부른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 두 명이다. 그들은 상황파악이 안 된 K를 비웃으며 그의 집에 마음대로 들어오고 심지어 아침 식사를 빼앗아 먹는 무례를 서슴없이 저지른다.

K가 아무리 설명을 요구해도 그들은 핀트가 어긋나는 말만 해대며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대화의 내용 중, 그나마 알게 된 것은 현재 K의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것. 그들은 법원의 말단 직원으로써 법원의 명령에 따라 K를 구류하고 있을 뿐이라는 거다.

K는 어이가 없다. 자신에 대한 소송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그 날 처음 알았을 뿐더러 누가 소송을 걸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게다가 누구도 그것이 어떤 소송인지 명확하게 말을 해주지 않는다.


참 이상한 소설이다 싶었다.

소송의 당사자라면 그 소송이 어떤 소송인지 누가 걸었는지 당연히 알 권리가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피고의 권리가 당연하다는 듯 묵살 당한다.


읽는 내내, 그래서 K의 소송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마지막에는 알려주겠지 싶은 마음에 끝까지 읽은 것도 있었다. 결국에는 작가에게 뒤통수를 거하게 맞고 말았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이상하게 슬프지는 않았다. 다만 어쩐지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K는 자신의 소송을 해결하기 위해 참 여러 사람을 만난다. 그렇지만 정작 도움이 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법원의 청소부, 직원, 숙부, 변호사, 또 다른 피고인, 신부 등…….

그들이 나누는 대화 자체가 어딘가 묘하게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풍긴다. 이게 아닌데 싶은 어긋난 대화들이 수시로 오간다. 뭔가 상황인지를 전혀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보는 기분이다.


K는 대성당에서 신부와 '법과 문지기의 일화'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그는 피곤함과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조급함에 의해 건성으로 대답을 한다.

허위가 세계 질서가 되어 있으니까요.

툭 내던지듯이.

어쩌면 그것이 카프카가 이 소설을 통해 전하고 싶은 말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끼워 넣은 듯 어색함이 느껴지던 등장인물들.

누가 기만을 하고 누가 기만을 당한 걸까.

어쩌면 기만 당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이 세계 자체가 허위의 질서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냥 그런 척 하고 살아가는 것일 뿐.

"당신은 죄가 없습니까?"
그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K가 대답했다.
그는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기뻤다.
일반인 개인에게 한 대답이라 어떤 책임도 뒤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특히 그랬다.
아직까지 아무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물어온 적이 없었다.
그는 이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덧붙였다.
"나는 완전히 결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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