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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드리 Dec 20. 2020

2020년 회고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내가 걸었던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다.

2011년부터 계속 일기를 써 왔다. 그런데 내 과거에 대해 짧은 단상을 남기는 게 아니라, 제대로 돌아보고 회고를 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연말/연초가 되면 많이들 그러는 것 처럼 일 년을 되돌아보고 새로 시작할 일 년을 계획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딱히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왔고, 뒤돌아 보는 것보다 앞을 보는 게 더 적성에 맞는 사람이라... 무엇보다도 술 먹고 정신없이 한 해를 잊다 보면 이런 생각이 사라진다. 그리고 연속적인 시간을 인간의 임의대로 잘라서 의미 부여하는 게 무슨 부질없는 짓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 순간부터 한 해 목표 이런 거 없이 살게 되었던 것 같다. 올해는 우연히 기회가 되어 기년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오전 10시부터 지금까지 행아웃으로 열심히 각자 회고를 하고 있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쓴 일기장들


사건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한 해지만, 올해 나에게 중요한 사건 6가지를 정리해본다.


1. 이직

2년 조금 넘게 다닌 회사를 떠나서 새로운 회사로 옮겼다. 관성을 깨고 삶의 방식에 변화를 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이 쉽지 않은 결정을 하고 실행한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이직 준비를 하면서 느꼈던 것은, 앞으로는 그냥 재미있는 대로 살면 안 될 수도 있겠구나 였다. 내가 만들어온 나와 시장에서 원하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 아무리 나의 능력이 뛰어나도 쓰일 일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최종적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고, 이에 맞춰서 오늘 내가 무슨 일을 할지 선택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막살면 안 된다ㅋㅋㅋ 나에게는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구!

이직하고 나서 느꼈던 것은, 역시 사람은 환경이 바뀌어야 더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학교에서 배웠는데, 인간의 정보 추구 행동이 가장 활발할 때는 새로운 환경을 접했을 때라고 한다. 이 장소는 화장실이 어디지?부터 시작해서 이 일은 왜 시작했고 왜 이렇게 끝났지? 등등 알아야 하는 것이 너무나 많고 이것들이 너무 재미있다.

다음에는 나와 시장의 얼라인을 맞춰서 어떤 새로운 일을 할지, 어떤 변화된 환경에 나를 둘 지 고민해야 한다.


2. 모닝 루틴

유튜브 보다가 갑자기 꽂혀서 9월 초반부터 11월 중반까지 오전 5:30~6:00 쯤에 기상해서 정해놓은 일을 하는 모닝 루틴을 했다. 일어나면 물을 한 잔 마시고, 일기를 쓰고, 내가 다짐한 것을 적은 글을 읽고, 공부하고, 시간이 남으면 책을 읽고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해서 운동을 했다. 대학생 때도 뭔가 이렇게 오전에 일어나서 많은 일을 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랑 이번의 기억을 종합해보면 역시 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오전에 나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가지면 하루가 너무너무 행복하다. 모닝 루틴을 했던 기간 동안 삶의 활력이 넘쳤던 것 같다.

2020년 10월 27일 오전 7:19, 한강 자전거 도로로 내려가는 길 

그렇게 계속될 줄 알았던 나의 아침형 인간 생활은 겨울이 되면서 해 뜨는 시간이 늦어지고 코로나로 인해 헬스장이 닫게 되면서 망했다. 그냥 내가 포기해 버렸다. 사실 쿨하게 포기하고 마음속에 아무 죄책감도 없이 살고 있었는데, 이렇게 회고를 하다 보니 이 경험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리고 내가 이 것을 지키기 위해 별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괜찮다. 알았으니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3. SOLO

올해 하반기는 애인이 없었다. 성인이 된 후로 이렇게 길게 애인이 없던 적이 처음이다.

이별부터 지금까지의 감정은, 이 복합적인 감정을 어떻게 몇 개의 키워드로 설명하리오 이다. 나에게 굉장히 큰 사건이었지만, 지금 와서 여기에 대해 별로 할 말은 없다. 뭐, 나는 혼자도 너무 잘 놀고, 나랑 잘 맞는 친구들도 참 많다는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느낀 것 정도?!? 

결론은, 타인과 함께인 나도 좋고 혼자인 나도 좋다. 그냥 알아서 잘 살면 된다.


4. 실수

평소 같았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실수를 했다. 나 때문에 실험이 하루 밀렸다. 아...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너무 사소한 실수라는 것을 알아서 더 속상하고 한심했다. 집에서 재택으로 일 하다가 눈물이 찔끔 났다.

나 답지 않은 실수를 한 이유를 곰곰이 따져 보니 그동안 휴식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사실 이렇게 따져보기 전에도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이직하고 일에 조금 익숙해진 후에 거의 폭주기관차처럼 계속 일하고 일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근데 그냥 재밌고, 지치지도 않아서 별로 신경을 안 썼던 것 같다.

그게 결국 이렇게 터졌다.

역시 주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고 휴일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폭주 기관차는 다 박살내고 다닐 뿐이다. 중간중간 쉬고 점검하면서 제대로 달릴 수 있어야 한다.


5. 스쿼드의 데이터 분석가

2020년 4분기는 스쿼드에 가서 업무를 하게 되었다. 개인적인 성장 방향에 맞는 업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담도 되고 내가 가진 무기가 너무 없는 것 같아서 걱정도 많이 했다. 여기는 전장인데, 내가 가진 무기는 다윗의 돌팔매뿐인 기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너무 좋은 팀원들을 만나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데이터 분석이라는 업무는 분석가가 만든 결과의 퀄리티뿐만 아니라, 그 분석을 접하는 다른 audience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여기서 경험한 것을 다른 곳에서 만들어낼 수 있도록 잘 정리하고 기록해야겠다. 또, 데이터 분석 업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쩌면 신뢰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요건 나중에 더 고민해서 글로 풀어 보고 싶다. 

이 짧은 회고에서 다루기 힘들 정도로 너무 값진 경험이었고, 앞으로 내 삶에 큰 자산이 될 것 같다. 잘 정리하고 기억하겠다고 한 것을 꼭 해야 할 텐데...!


6. 국립 중앙 박물관

심심했던 10월의 어느 날, 듣기는 많이 들었는데 지도에서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멀지 않아서 별생각 없이 찾아간 그곳이 나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 사실 서울에 별로 정이 가는 공간이 없었다. 좋은 곳은 사람이 너무 많고 장사꾼들도 너무 많아서 내가 마음을 편히 둘 수가 없었다.

2020년 10월 9일 오전 10:04, 국립 중앙 박물관의 첫 모습

너무나 아름다운 경치, 옛 것을 잘 조화시킨 조경, 의미 있는 문화재, 글 쓰고 공부하기 최고로 좋은 도서관까지... 포항 형산강 이후로 내가 맘 놓고 편히 있을 수 있는 곳을 서울에서 드디어 찾은 것 같아 너무 행복하다. 작고 소소하지만, 어찌 보면 꽤 오랜 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나의 서울살이에 큰 영향을 줄 사건이다.



얻은 것과 잃은 것

올해에는 그동안 놓았던 또는 놓쳤던 여러 가지 것들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첫째는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하고, 자주 만나게 되었다. 물론 그래도 타인보다는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훨씬 많았지만, 주변에 신경을 끄고 살았던 최근 1,2년에 비해 훨씬 대인 관계를 많이 가졌다. 

둘째로, 지식을 체계적으로 쌓는 일(=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더 자신감을 갖고 일을 하고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고, 역시 지식의 깊이는 자신감의 크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앞으로 할 공부가 더 많지만, 사실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거의 놓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 그것도 재미있게 시작한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자전거를 많이 타기 시작했다. 이직 후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게 되면서 내가 자전거 타는 것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잊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자전거를 타는 시간은 코로나 시국에 상쾌한 바깥공기를 맘껏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어서 특히나 더 행복했다. 나는 나중에 자전거 타는 할머니가 될 것이다.

다시 잡은 게 있다면, 놓은 것 역시 존재한다. 맥주에 대한 흥미를 많이 잃었다. 나는 맥주를 참 좋아한/했다. 그런데 올해 맥태기(맥주+권태기)가 찾아왔다. 연초에 벨기에 여행 가서 맥주를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뭔가 끝장을 본 이후로, 더 이상 맥주를 마실 때 설렘과 기대감이 없다. 누군가는 술을 덜 마셔서 좋은 거 아냐?라고 하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취미를 잃은 것 같아 아쉽고, 앞으로 가질 다른 취미도 이렇게 흥미를 잃게 될까 조금은 두렵다. 나라는 사람을 좀 더 잘 알고, 내가 재미있게 꾸준히 즐길 수 있는 취미와 그 정도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총평

나를 잘 아는 사람들, 또는 나를 안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 역시 내가 자존감이 높고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래서일까, 난 거의 후회를 하지 않는다. 어차피 되돌릴 수도 없기에, 난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고, 내 인생은 항상 나의 총 행복이 최대가 되는 상태로 향한다고 믿늗다.

이번 연말 회고는 사실 내 인생에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고, 사실 앞으로 또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느꼈던 것, 내가 놓치는 부분도 있다는 점은 꼭 기억에 남기고 싶다. 멋진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그리고 그 사람들 덕분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적어도 내일은 6시에 일어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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