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쨉 날리듯 툭툭 던지는 대화, 어느 순간 피멍 든다.

류재언 변호사의 "대화의 밀도"를 읽고 떠오른 생각

by 구형라디오

‘오늘 표정이 왜 그 꼴이야?’라는 말을 듣고 웃어넘기는 동료들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그럴 때면 “너도 거울이나 봐”라고 툭 받아치는 모습까지, 복싱 링에서 쨉을 날리듯 이어지는 이 까칠한 대화가 과연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걸까, 아니면 서로의 감정을 조금씩 갉아먹는 걸까? 겉으로는 장난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묘한 피로감을 느낀다.


류재언 변호사의 “대화의 밀도”에서 말하는 상어식 대화와 고래식 대화를 떠올리며, 내가 주변에서 본 투박한 대화에 대해 고민해 본다.

https://youtu.be/hW5e7S_aTM8?si=nf3Sjn4AdNbzKFdB


투박한 친근함, 정말 효과가 있을까?


내 주변엔 복싱 링에서 잽을 주고받듯 대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 표정이 왜 그래?”라고 던지면 “너도 거울이나 봐”라며 되받아친다. “도와줘서 고마워” 대신 “네가 도움이 되긴 하네”라고 하면, “너 혼자 하면 망칠까 봐 어쩔 수 없었다”라고 툭 내뱉는다. 겉보기엔 공격적인 말투지만, 그들은 웃으며 받아치고, 가까운 사이로 보인다.


이런 투박한 대화는 분명 효과가 있다. ‘상어식 대화’의 날카로움 속에 숨은 신뢰는 관계를 끈끈하게 보이게 한다. “너니까 이렇게 말해도 돼”라는 묘한 친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티키타카는 마치 서로의 리듬을 맞추는 춤 같다. 하지만 과연 이게 전부일까? 매번 부정적인 단어가 오가다 보면, 장난이라 해도 작은 상처가 쌓일 수 있지 않을까? 말하는 사람은 가볍게 던졌을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늘 웃을 수만은 없다. 수십 번 오가는 쨉 속에 어느 순간 강펀치를 날리는 건 아닐까? 결국 둘 다 감정을 소모하며 억지로 웃음을 유지하는 건 아닌지, 이 쨉 날리듯 툭툭 던지는 대화가 피로감만 남기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감정 소모의 위험 : 장난 뒤에 남는 찌꺼기


까칠한 애정 표현이 주는 따뜻함은 분명 매력적이다. “네가 도움이 되긴 하네”와 “너 혼자 하면 망칠까 봐”가 오가는 순간, 그들은 서로를 잘 알고, 그런 말 할 수 있는 사이라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하지만 반복될수록 듣기만 하는 나에게도 피로감이 밀려온다. “표정이 왜 그래?”와 “거울이나 봐”가 인사처럼 들릴 때, 대화는 더 이상 서로를 알아가는 도구가 아니라 습관적인 소음이 된다. 쨉을 날리는 듯한 이 대화가 과연 관계를 위한 최선일까?



꼭 이렇게 표현해야 할까? 서투름의 변명


“표현이 서툴러서 그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고마워”라고 솔직히 말하기 어색해서 “네가 도움이 되긴 하네”로 비튼다고. 이해는 간다. 진심을 드러내는 게 부담스러운 순간은 누구나 있다. 하지만 그 서투름이 꼭 까칠한 말투로 나와야 할까? “너 혼자 하면 망칠까 봐” 같은 장난으로 포장된 표현이 쌓이면, 정작 진짜 감정은 묻히는 게 아닐까? 솔직한 감정은 언제 표현할 것인가. 스파링의 시작과 끝에도 서로 인사를 하는데 그들의 대화는 쨉만 날리다 끝나는 게 아닐까?

자신의 감정을 알아보자

장난이 반복되면 신선함은 사라진다. 어느새 대화는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도구가 되고, 그 안에서 진심은 점점 흐려진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대화의 밀도”에서 말하는 상어식 대화가 될 것이다. 서로의 이빨은 드러내지만 서로 물지는 않는 대화이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고래식 대화의 가능성


고래식 대화는 온화하고 깊은 울림을 준다고 한다. 상어처럼 날카롭게 찌르지 않고, 묵직한 존재감으로 감정을 채운다.

“오늘 표정이 왜 그래?” 대신 “오늘 기분이 좀 다른가 봐?”라고 물어보는 건 어떨까? “네가 도움이 되긴 하네” 대신 “너 덕분에 잘 됐어”라고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는 건? 장난 대신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감정을 소모하기보다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주변의 투박한 리듬에 맞춰 “너 오늘 왜 이래?”라고 내뱉을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동료가 자신에게 날리는 쨉을 여러 번 맞아보았다면 이제는 다르게 말해보는 건 어떨까. 쨉을 날리는 대화가 서로에게 주는 피로감을 덜고, 변화를 만드는 게 쉽지 않겠지만, 작은 시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당신의 대화는 어떤 모습인가?


투박한 친근함이 주는 따뜻함은 부정할 수 없다. “표정이 왜 그래?”와 “거울이나 봐”로 시작된 티키타카는 그들만의 애정 표현이다. 하지만 쨉을 날리듯 툭툭 던지는 대화가 남기는 감정의 찌꺼기와 피로감도 무시할 수 없다.


굳이 이렇게 투박함과 티키타카로 포장된 까칠하게, 장난으로만 말해야 할까?


어쩌면 우리는 조금 더 솔직하거나 부드러운 대화로도 서로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상어와 고래 사이, 나만의 대화의 밀도는 어디쯤일까?


당신이라면 어떤 대화의 방식을 선택하겠는가



P.S. : 지난 주말 류재언 변호사의 "대화의 밀도"를 꺼내 다시 읽었다. 언제나 꺼내어 볼 수 있는 책을 선물해 줘서 고마워. Bro. (@20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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