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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자유에 대하여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읽

by 구형라디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궁핍과 결핍이 고통을 낳는 반면, 안전과 과잉은 무료함을 낳는다. 곤궁이 민중의 계속적인 재앙이듯이, 무료함은 상류사회의 재앙이다.”


이 말은 내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경제적 자유를 얻으면 정말 삶이 무료해질까? 나는 지금 고통과 궁핍 속에 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아직 돈과 시간이 넘쳐나서 무료한 삶도 아니다. 과연 돈이 많아지고 걱정이 없어지면 따분한 삶을 살게 될까?


내 생각에 경제적 자유는 캔버스와 물감 같은 것이다.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화가의 마음, 즉 내 태도와 선택에 달렸다. 예를 들어, 은퇴한 리더들을 보면 이게 분명해진다. 그들은 경제적 여유가 생긴 뒤에도 강연을 하고, 책을 쓰고, 지역사회에서 봉사하며 바쁘게 산다. 그들은 무료함 속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 나도 언젠가 그런 삶을 살기를 꿈꾼다. 누군가의 삶에 작은 도움을 주고 싶다. 이런 일들은 내 삶에 색을 더하고, 무료함 대신 충만함을 줄 거라고 믿는다.


물론 경제적 자유가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건 아니다. 돈과 시간이 많아져도, 그걸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만약 럭셔리한 소비나 끝없는 여가에만 몰두한다면, 잠깐의 즐거움 뒤에 공허함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본다. 경제적 자유는 고통과 생존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더 큰 가능성을 열어준다. 예를 들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거나, 그동안 미뤄뒀던 취미를 시작하거나, 타인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이런 가능성을 어떻게 채우느냐는 내 내면에 달렸다.


결국, 무료함은 경제적 조건 때문만이 아니라,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나는 경제적 자유를 단순히 돈과 여유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삶을 그릴 기회다.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만 분명히 하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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