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한다니?

by 아난드

이전 글에 이어서, 이번엔 스타트업 동료: 절망편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스타트업을 다니면서 빛나는 영웅들을 만난 만큼, 많은 빌런들 또한 존재했다. 물론 빌런 없는 회사가 어디 있겠냐만은, 여기에서는 스타트업이기에 존재할 수 있었던 빌런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어보고자 한다. 다만 공식적인 뒷담화(?)가 되지 않기 위해, 여러 사례를 합치거나 수정 및 각색한 부분이 있다. 따라서 아래에 소개된 각 항목이 '실제 인물'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달라.


20160707_165124.png?type=w800 소설입니다 소설. (출처: JTBC 크라임씬)



1. 우리는 모두 평등하잖아


앞에서 말했듯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평등주의에 입각한 조직문화를 가진다. 그 배경에는 '모두의 의견이 존중받는 곳에서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샘솟고, 그렇게 얻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빠르게 실천함으로써 회사가 발전한다.'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다녔던 곳도 그러한 문화를 추구했고, 그렇기에 호칭도 '이름+님'으로 통일되었다. (대표님에게까지도 적용되었다.)


당연히 좋은 문화이지만, '평등'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확대해석하여 그릇된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내 모든 의견이 존중받고 채택되어야 해.'라던가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걸 보니 회사는 나를 무시하나 봐.'와 같은 것들이다. 여기에서 더 변질되면 '너는 나에게 업무지시를 할 권한이 없고, 우리 모두는 같은 업무를 수행해야 해'와 같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까지로 발전한다. 결국 중간매니저(특히 직책이 없는 실질적 업무 리더)들은 매번 '평등주의'를 지키느라 업무의 진전 없이 속만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구성원들은 평등하지 못하다는 불만 속에 살아가게 된다.


만약 전통적인 기업이었다면 바로 부장님의 제노사이드 커터를 맞고 '그냥 해 이 자식아!' 소리를 들었겠지만, 우리는 스타트업이잖아~ 하하호호~ 앞에선 그럴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본질을 잊을 때 발생한다. 여기서 본질은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존중하는 토론문화이다. 그러니, 평등한 관계 속에 치열하게 토론하되,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수직적으로 따라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만 상위 매니저들이 중간 매니저 및 구성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해야 함을 잊지 말자.


내가 개인적으로 느낀 것은, 두 가치의 황금 밸런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평등주의에 매몰된다면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가게 되어 회사가 아무런 진전을 하지 못할 것이고, 탑다운 방식이 과도하다면 고집스러운 독재 정권이 되어버려 다수의 구성원이 불만을 가지고 결국 퇴사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어렵다는 뜻이다...)


8AveLsIyJ.jpeg 훈육 없는 아이는 금쪽이가 되기 마련이다. (출처: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2. 낮은 역량의 구성원


다른 규모의 기업에 비해 스타트업은 높은 역량의 구성원을 확보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구직자라고 가정해 보자. ① 연봉과 복지가 빵빵하고 누구나 아는 대기업, ② 적당히 월급 나오고 어디선가 이름을 들어본 중견기업, ③ 박봉에다가 지방에 있지만 비전이 있다는 스타트업. 세 군데에서 입사를 제안한다면 당신은 어디에 갈 것인가? 거의 대부분은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대기업을 선택할 것이다. (물론 비전에 베팅하는 눈이 빛나는 청년도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들 중 하나라면, 나는 진심을 다해 응원한다!)


회사가 구직자의 역량을 평가하는 만큼 구직자 역시 회사의 매력도를 평가한다. 그러니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구직시장에서의 회사 본인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매력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가진 카드가 별로 없는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높은 역량을 가진 인재들을 대부분 상위 기업들에 뺏길 수밖에 없다. (다만 오해하지는 말라. 기업의 성공을 위해서 반드시 모든 구성원들이 슈퍼스타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회사 역시 밖에서 봤을 때 매력적인 기업이 아니었고, 여러 요인들로 인해 이를 끌어올리기도 힘들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조직 구성원들의 역량에 비해 우리가 마주한 과업의 난이도가 높았고, 그래서 원하는 성과를 내기가 매우 힘들었다. 나 역시 중간 매니저급으로 일하면서 많은 좌절을 맛보았다. 나 역시 누군가의 좌절 생성기였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다만 긍정적인 측면에서 돌이켜보면,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구성원들을 활용하여 최대한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 덕분에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역량을 많이 키울 수 있었다.


그곳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을 나는 잊지 못한다. (...)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다. 함께 으쌰으쌰 하면 되니까. 하지만 본인의 역량 수준을 착각하여 더 어려운 과업을 요구하면서 사고를 계속 치거나, 더 높은 포지션을 요구하거나, 혹은 앞의 1번 유형과 결합되어 큰 목소리를 계속 내거나 한다면, 그때부터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거나 미치)게 만들어버릴 것이다.


184fc5b98b932631c.jpeg 실제로는 우유도 안 사 오는 경우가 있다. (눈물)



3. 고인물은 썩기 마련


당장 구글에 '스타트업 고인물'만 검색해도 많은 결과가 쏟아진다. 이것만 보아도 고인물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스타트업 고인물이란 무엇인가? 대개 창업 초기에 합류하였지만 언제부턴가 수준 이하의 역량과 태도로 주변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창업 초기에는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었고, 그 당시에 필요한 역량을 보여주며 회사의 성장에 기여했지만, 회사의 성장 속도를 미처 따라잡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버리고 만 사람들이다. 고인물이 위험한 이유는 초창기부터 회사와 함께했던 사람이기에 주변인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말이나 행동은 다른 구성원들에 비해 훨씬 큰 무게감을 가진다.


고인물은 다시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실무자로 입사한 사람이다. 이들은 회사가 성장하면서 외부에서 새로운 구성원이 계속해서 유입됨에 따라 본인이 설 자리가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혹은 본인은 초창기부터 회사에 헌신했지만 외부인에게 밀려 상위 직책을 받지 못한 채 헌신짝처럼 버려졌다는 생각에 흑화한다. 여기서 역량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직에 성공해 회사를 떠난다. 하지만 낮은 역량으로 인해 이직이 안 되는 경우 회사에서 불평불만을 계속해서 쏟아내며 부정적인 분위기를 곰팡이처럼 서서히 퍼뜨린다.


두 번째는, 파운딩 멤버 또는 임원급의 구성원이다. 이들의 위험성은 가히 핵무기급이라 할 수 있다. 일단 그들의 발언은 매우 강한 힘을 갖는다. 따라서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따라 업무 분위기가 빠르게 바뀌며, 아직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한(?) 신입들은 그들의 영향에 쉽게 휩쓸린다. 또한 '내가 몇 년 전에 그걸 해봤는데 소용없었어.'와 같은 혁신을 저해하는 발언을 하여 회사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가장 위험한 것은 그가 상당한 양의 주식을 가지고 있고, 회사의 평가 가치가 높아진 경우이다. 그의 높은 보상 현황과 터무니없이 낮은 역량의 괴리로 인해 주변의 많은 구성원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근로 의욕이 상실되며, 그 과정에서 진짜 필요로 하는 인재의 이탈을 유발할 수 있다.


Screenshot 2025-11-01 at 20.21.36.png 한기용 코치님도 고인물의 위험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출처: EO)




여기까지 스타트업 동료의 희망편과 절망편을 풀어보았다. 스타트업에 입사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위와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 스타트업에 재직 중인 사람이라면 내가 빌런의 유형에 속하는 것은 아닌지 한 번씩 되돌아본다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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