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을 다니면서 함께 했던 사람들은 실로 다양한 배경과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특성은 나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대학교는 그 특성상 다양성이 많이 부족했다. 즉,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비슷한 인생을 거쳐 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된 사람들의 집합체였다. 나 역시도 그 일원으로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가장 먼저 우물 밖을 내다보게 된 때는 우연찮게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을 때였다. 그때 처음으로 '내 세상' 바깥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내 편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로도 최대한 다양한 각도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애썼다. 졸업하고 다니게 된 첫 직장은 애석하게도 다른 방향으로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던 곳이었다. 그 속에서도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었지만, 이러다간 나도 비슷한 사람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빠른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렇게 합류한 스타트업. 돌이켜보면 그곳에서 일한 덕분에, 혹은 일했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그렇게 만날 수 있었던, 함께 일했던 멋진 사람들을 소개할까 한다. 이 사람들 덕분에 나는 눈부신 성장을 할 수 있었고, 새로운 나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님은 누가 뭐래도 회사에서 가장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직함이 CEO(혹은 대표)라서가 아니라, 이런 사람이어야 회사를 창업할 수 있다는 걸 직접 보여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회사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대표님 Zone'의 존재에 대해 말하곤 했는데, 그 말인즉슨 대표님과 이야기를 하고 온 모든 사람들은 회사의 비전과 미래에 취해서 나온다는 뜻이었다. 나 역시도 이에 홀려서 입사를 결심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본인의 사업에 대한 비전을 진심으로 믿고, 실천하고, 구성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사람이었다.
조직 구성원들을 하나로 결집시키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도록 하려면, 구성원들에게 동일하고 강력한 믿음을 이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스타트업은 모든 측면의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비전'이라는 연료가 더욱 필요하다. 그러한 면에서 대표님은 사람들을 결집시켜 이끌어나가는 최고의 기수(旗手)였다.
한편으로는,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깨닫게 해 준 사람이다. 그전까지 나는 일을 '월급 받기 위한 수단'으로써 하찮게 여겼다. 회사와 나를 적대 관계로 여겼으며, 회사는 항상 나를 '착취하는' 나쁜 존재이고, 나는 월급을 받기 위해 '희생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표님이 일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진심으로 일의 가치를 믿고, 이를 존중하는 사람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회사-구성원의 관계를 더 이상 가해자-피해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내 성장 가능성만 줄어들고 내가 회사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득만 줄어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앞뒤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일에 뛰어들었던 것 같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회사를 위해서' 회사를 다니라는 것이 전혀 아니다. 당연히 '나를 위해서' 회사를 다녀야 한다. 어찌 되었든 회사와 나는 단순한 쌍무적 계약관계이고, 한쪽의 요구에 의해 언제든지 종료될 수 있는 관계이다. 이 부분을 잘못 이해한다면 '내가 회사를 위해 이렇게 희생했는데 이제 와서 나를 헌신짝처럼 버려?' 라던지, '우리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여기를 나가?'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 최대한 '이기적으로' 일하라. 조직에서 본인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가치를 창출하라. 배움이 있는 모든 기회에 뛰어들어라.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자산으로 내 안에 남을 것이다. 그런 뒤에 더 이상 성장의 기회와 배울 수 있는 롤모델이 없다면, 미련 없이 조직을 떠나라. 이렇게 일하는 것이 조직에게도 최대의 가치를 가져오겠지만, 동시에 나를 위해 일하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다만, 이것이 직장생활의 '옳은' 방식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회사를 다닐 것인가라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루려고 한다.
두 번째로 언급하고 싶은 사람은 CTO이다. 이 분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geek'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흔히 생각하는 K대 천재 괴짜의 느낌이 있었다. 본인의 색깔이 강하던 사람이었기에 좋아하는 사람만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 역시 그와 함께 일하며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함께 일한 덕분에 여러 스킬을 익힐 수 있었다. 그중 하나는, 효과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된 것이었다.
팀원이 생기고, 한 유닛의 리더가 되면서 우리 팀이 담당하고 있는 제품에 대한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 보고를 시작했을 땐,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내가 일주일간 실행한 모든 내용을 잔뜩 가져가서 보고를 했다. 하지만 발표를 할 때마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거나 아무 피드백을 받지 못하기 일쑤였다. 몇 번 그렇게 하고 나니, 내가 완전히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듣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은 보고는 결국 자기만족에 불과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 이외에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발표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는 상대방이 내 보고에서 무엇을 얻고 싶은지, 어떤 내용을 궁금해할지, 어떤 부분을 이해하지 못할지 계속해서 고민해 가면서 보고 자료를 만들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보고 중에 날카로운 질문을 많이 받았다. 게다가 질문의 내용이 예컨대 'A라서 B이고, 그래서 C니까 결국 D인 거 아닌가?'라는 질문을 'A니까 D잖아?'라는 식으로 중간의 context를 모두 뛰어넘는 것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예상 질문을 미리 파악하고 준비하는 방법,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고 알맞은 대답을 하는 스킬을 익히게 되었다. 그렇게 하드 트레이닝을 거치면서 발표 능력이 많이 늘었다. 한 번은 옛날 데이터를 찾아보기 위해 2, 3년 전 보고자료를 다시 열어본 적이 있는데, 완전 엉망인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보고 내가 이 정도였나 하고 놀란 기억이 있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사람은 인사 담당 고문님이다. 고문님은 대기업의 인사 담당 임원으로 오랜 시간 재직하시다가 우리 회사로 스카우트된 케이스였다. 처음 그분을 대면한 것은 그분이 입사하신 후 꽤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당시에 나는 작은 유닛의 리더였는데, 그분께서 회사의 모든 매니저들과 미팅을 잡으셨다. 처음에는 커피챗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들어갔지만, 알고 보니 거의 면접에 가까웠던 것 같다. (다행히 불합격 같은 것은 없었다.) 그때 내가 받은 인상은, 내공이 아주 깊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평소처럼 지내다가, 면접을 계기로 그분과 조금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당시 회사가 급격하게 커지면서 많은 수의 인원을 채용해야 했다. 그래서 엄청난 면접 웨이브가 불어닥쳤는데, 그때 면접관으로 자원했고 그분과 함께 면접에 들어가게 되었다. 면접은 그분이 메인 면접관으로 흐름을 주도하고, 내가 서포터로 추가질문을 하는 방식이었다. 덕분에 노련한 면접관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곁에서 배울 수 있었고, 이 경험을 통해 면접이 무엇이고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하는지, 면접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나도 당시에 좋은 인상을 주었는지, 이후로 그분께서도 나를 많이 챙겨주셨다. 나 역시도 그분을 많이 따르게 되었고, 이후 회사 생활이나 커리어 개발에 대해서도 몇 번 조언을 요청드렸다. 아쉽게도 내가 퇴사를 하게 되면서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때에도 축하와 행복을 빌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했다.
돌이켜보면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행운이었다고 생각하고, 아직도 그 시간에 감사한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 다음에는 함께 일한 사람들의 절망 편으로 돌아오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