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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ke Oct 19. 2022

아이들, 마릴린 먼로, 물랑 루즈

수많은 레퍼런스를 촘촘히 엮어 탄생한 놀라운 뮤직, 그리고 비디오-누드

생각해 보면 이 브런치에서 뮤직 비디오를 다룬 적은 아직 없었던 듯하다. 뮤직 비디오에 신화 레퍼런스나 고전 오마주가 쓰이는 일은 비교적 흔한 일이었고, 필자는 그것들을 재밌게 여겼지만 분석,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까지 다다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도 그럴 이 뮤직 비디오는 채 4분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짧은 컨텐츠이고, 특정 가수의 팬이 아니라면 그 짧은 순간들을 여러 차레 곱씹게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17일 발매된 아이들의 신곡, Nxde의 뮤직 비디오는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결국 필자는 분석욕을 이기지 못하고 지금 이 정리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짧은 영상 안에 어쩌면 이렇게 촘촘한 레퍼런스를 엮어 놓을 수가 있는 건지, 길이와는 관계없이 영화나 헌정 영상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우선 아이들의 앨범 설명은 이러하다: "'I love'는 ‘나’는 다른 누군가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그냥 ‘나’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해야 마땅하며 내가 원하지 않는 겉치레는 벗어 던지고 꾸밈없는 본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미를 담은 앨범이다. 타이틀곡 '누드'(Nxde)는 꾸며지지 않은 개인의 본모습을 누드라는 단어에 빗대어 표현했다." 필자는 이 설명을 기반으로, 그녀들이 가져온 레퍼런스와 그 의미를 즐겁게 분석해 보고자 한다.


물랑 루즈, 마릴린 먼로, 미디어와 뱅크시


아이들이 가져온 레퍼런스는 크게 이 네 가지, 물랑 루즈, 마릴린 먼로, 미디어와 뱅크시로 나눠 볼 수 있겠다(물론 필자가 발견한 대로라면 그렇다는 의미이니, 반박 시 당신이 맞을 수도 있다). 이 네 가지의 어쩌면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이야기들은 촘촘하게 엮여 하나의 거대한 메시지가 된다.


1. 물랑 루즈

왼쪽 위 사진, 뮤직비디오의 이 오프닝부터가 영화 <물랑루즈!>의 오프닝(오른쪽 위) 오마주라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렇게 드러나는 무대(왼쪽 아래)는 영화 속 물랑 루즈의 붉은 무대(오른쪽 아래)를 꼭 닮았다.


영화 <물랑 루즈!>는 재능은 있으나 그를 뜻대로 펼치지 못하고 화류계에 매여 있는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만나 진정한 사랑을 쫓는다는 전개를 따르며 옛 고전문학 <춘희>와 오페라 <라 트리비아타>의 구조를 계승한다. 그 고전적 구조에 여주인공 사틴의 쇼를 천박한 방식으로 소비하는 관객들과 그녀를 돈으로 사려 하는 공작 캐릭터가 추가되면서 영화는 사람의 내면이 아닌 겉면과 물질적 조건이 우선시되는 상황을 풍자하고 비판한다.


사틴은 삼류 극장의 간판 대신 진정한 배우가 되기를 꿈꾸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는 일견 마릴린 먼로의 비극과도 닮아 있는데, 실제로 사틴은 첫 등장 때 그녀의 <다이아몬드는 여자에게 최고의 친구>를 부르며 나타나 관객들의 넋을 빼놓는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 사틴은 돈 많은 공작을 유혹해 극장을 키우고 진짜 배우가 되라는 극단주의 지시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분장실에서 가장 매혹적일 만한 모습으로 변신하며 그녀는 극단주에게 묻는다.

How do I look?
그렇다. 아이들의 Nxde 가사 속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바로 그 문장이다.


사실 공작이든 크리스티안이든, 그 순간까지 사틴과는 말 한 번 섞은 일이 없다. 아는 것이라고는 그녀가 보여 준 무대 위의 모습뿐. 후에 사틴을 만나 어느 정도 그녀를 알게 되는 크리스티안과 달리 공작은 그가 바라는 대로 사틴을 상상하기 때문에 끝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녀에게 분노하며 추악해지는 것이다.


아이들은 짧고 강렬한 이 가사와 레퍼런스를 이용해 그녀들을 마음대로 해석하는 시선을 비판한다.


또한 아이들의 이 복장은 <물랑루즈!>의 가장 유명한 OST 중 하나인 Lady Marmalade의 뮤직 비디오 속 가수들의 복장과 닮았다. 그리고 해당 곡의 가사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We independent women, some mistake us for whores

우리는 독립적인 여성들이야. 몇몇은 우릴 창녀로 착각하지만.


의미심장한 가사가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사틴도, 물랑 루즈의 댄서들도 그 재능을 팔고 싶을 뿐 자신의 몸을 팔고 싶어하지는 않았을 테니.


물랑 루즈 무대에서의 단체 안무 장면은 뮤직비디오 동안 계속해서 반복되며 후렴구와 함께 등장한다.


Yes I’m a nude
Nude 따따랏따라
Yes I’m a nude
Nude I don’t give a love


나는 누드 상태지만, 사랑을 주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I don't give a fxxk(전혀 신경 안 쓴다)이라는 슬랭을 이용한 말장난인 듯도 싶다.


2. 마릴린 먼로


아이들의 이번 신곡 주요 레퍼런스가 마릴린 먼로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녀가 입었던 의상이 다채로운 모습으로 재등장하는가 하면,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의 캐릭터 로렐라이가 유명한 장면과 함께 가사에 등장한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블론드>가 안 좋은 의미로 화제였던 바 있었다. 그 후에 공개된 작품이라 더욱 의미가 크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당시 대중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마릴린 먼로의 지성과 사회 비판적 의식을 존경을 담아 재현해 낸다.

그럼 다이아 박힌 티아라 하나에
내가 퍽이나 웃게 퍽이나 웃게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서 마릴린 먼로는 돈과 다이아몬드를 좋아하는 여성, 로렐라이로 분한다. 돈만 밝힐 뿐 어리석어 보이는 장면이 많지만, 사실 그녀는 생각보다 영리한 사람이다. 로렐라이의 대사 중 "전 중요한 순간에는 똑똑해 질 수 있어요. 대부분의 남자들은 똑똑한 걸 좋아하지 않지만요."라는 내용만 봐도 그렇다. 극 중 그녀의 노래 <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s>는 사실 그녀가 속물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장치가 아니라, 돈 없이는 무사히 독립적인 생활을 꾸릴 수 없는 여성들의 당시 처지를 풍자하는 곡이다.


A kiss may be grand
But it won't pay the rental on your humble flat
Or help you at the automat
Men grow cold as girls grow old
And we all lose our charms in the end
But square-cut or pear-shaped, these rocks don't lose their shape
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

입맞춤은 황홀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건 당신의 집세를 내주지 않을 거에요

식당에서 당신을 도와주지도 않겠죠(automat: 자동판매식 식당)

여자들이 나이 들면 남자들은 차가워져요

그리고 결국 우리는 모두 우리의 매력을 잃게 되겠죠

하지만 스퀘어 컷이나 물방울 컷 된 그 돌멩이들은 그 모습을 잃지 않아요

다이아몬드야말로 여자에게 최고의 친구랍니다.


여담이지만, 로렐라이는 본래 독일의 민간 전설에 등장하는 신비한 존재이며 이는 그리스의 세이렌, 즉 인어와 동일시된다. 이들은 흔히 아름다운 얼굴과 매혹적인 노래로 뱃사람들을 꾀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원래의 세이렌은 이와 조금 많이 달랐다.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로마식으로는 율리시스)의 모험과 고난을 다룬 고대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세이렌은 돛대에 스스로의 몸을 묶은 오디세우스를 향해 이렇게 노래한다.


자, 이리로 오세요, 칭송받는 오디세우스여, 아카이아 인들의 위대한 영광이여.

이 곳에 배를 세우고, 우리의 목소리를 듣도록 하세요.

우리 입에서 나오는 감미롭게 울리는 목소리를 듣기 전에

검은 배를 타고 이 옆으로 지나간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어요.

천만에,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후 즐겁게 돌아갔지요.

우리는 넓은 트로이아에서 아르고스 인들들과 트로이아 인들이

신들의 뜻에 따라 겪었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풍요한 대지 위에서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알고 있으니까요.


세이렌이 오디세우스에게 약속하는 것은 놀랍게도 지식이고 지혜다. 그가 알지 못했을 이야기들이다. 위대한 영웅이자 지략가였던 오디세우스는 지식을 향한 그녀들의 약속에 매혹되어 동료들에게 자신을 풀어 달라고 애원하게 된다. 이처럼 지혜로 사람을 매혹하던 그들은 어느 순간, 아름다움으로 남성들을 유혹해 죽이는 괴물적인 형상이 되고 말았다. 마릴린의 캐릭터 로렐라이와 절묘하게 맞아 들어가는 변화(혹은 퇴화)다.

그리고 뮤직 비디오 속, 상자 속에 들어가 있던 소연의 이 의상에 주목하자. 알 굵은 진주들과 과장된 머메이드 라인에서 분명한 인어 모티브가 보인다. 해당 파트의 가사는 이러하다:


(Ouch!) 실례합니다 여기 계신 모두 야한 작품을 기대하셨다면 Oh I'm sorry 그딴 건 없어요 환불은 저쪽 대중은 흥미 없는 정보 그 팝콘을 던져도 덤덤 행복과 반비례 평점 But my 정점 멋대로 낸 편견은 토할 거 같지!


실제로 인어의 존재를 믿었던 17세기에는 원숭이 등과 어류 꼬리를 이용해 가짜 인어를 만들어 박물관에 전시하는 일도 잦았다. 딱 저렇게 유리 케이스 안에 넣은 채로 전시된 인어는 많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물론 관객들이 기대했을 아름다운 여성의 상반신 대신 유인원의 상체가 달려 있었으니 실망한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인어라는 단어 자체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가졌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오, 미안합니다, 그딴 건 없어요!

다음으로 살펴볼 부분은 소품으로 쓰인 이 책, <풀잎(Leaves of Grass)>이다.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이 쓴 시집으로, 실제 마릴린 먼로도 이 시집을 좋아했다고 한다. 또한 이 시집에 실린 작품들은 성에 대한 솔직한 비유들로 인해 출간 당시의 비평가들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았고, 끊임없는 논란에 시달렸다. 마릴린 먼로의 생애와 몹시 닮아 있는 책이라고 할 밖에.


소연은 마릴린 먼로의 시대에 유행했고, 팝 가수 마돈나가 마릴린을 오마주하기 위해 입었던 콘 브라 스타일의 의상을 입은 채, 물랑루즈 속 사틴의 방을 닮은 붉은 대기실에서 이 시집을 읽고 있다. 그리고 바로 직전에는 "She's so sexy but stupid" 라고 적힌 신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기도 한다. 해당 문구는 당시 마릴린 먼로를 비판하던 가장 흔한 말 중 하나였다. 대중들은 자신들의 얄팍한 해석만을 믿은 채, 마릴린의 지성을 무시하곤 했다. 무척 난해하기로 이름난 소설 <율리시스>를 읽는 마릴린의 사진이 공개되었을 때 그들은 마릴린이 그 책을 이해할 수도 없으면서 읽는 척한다고 말했다.


이 장면을 한 번 살펴보자. 우기가 샤넬의 트레이드마크이자 마릴린 먼로가 즐겨 입었던 트위드 의상을 입은 채, 그녀의 포스터 앞에서 향수를 뿌리고 있다. 샤넬 NO.5를 입고 잔다는 것은 마릴린 먼로의 유명한 발언 중 하나였다. 잘 때는 아무 것도 입지 않는 누드 상태라는 것을 재치 있게 돌려 말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녀의 발언을 재치 있게 가사에 녹여 두었다.

아리따운 날 입고 따따랏따라


아이들에게 누드는 나 자신을 입는 것이다. 가장 본연의 내가 나타나는 순간이다. 그 자연스러움 속에 성적인 의도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의 노래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아리따운 나의 누드 아름다운 나의 누드 I'm born nude 변태는 너야 Rude.



3. 미디어(변화 혹은 퇴화하는 시대)


우선 뮤직 비디오의 배경이 모던 시기의 촬영장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소연이 선 17세기의 가짜 인어 전시회장에서 슈화가 선 신전으로 배경이 이동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선 모던 시기 촬영 스튜디오가 불타오른 후에는 이제 우기가 현대의 미술관에 서 있다. 그리스 시대로 돌아가자며 인본주의를 외치던 르네상스의 흐름이 여기서 보인다.


슈화 컷의 조각상들은 모두 비너스를 조각한 작품들이다. 왼쪽이 <목욕하는 비너스>, 오른쪽이 <이탈리아의 비너스>. 둘 모두 목욕을 하는 등의 사유로 맨몸을 드러내거나 가리고 있는 고전 시기의 조각이다. 함부로 천을 잡아당겨 조각상을 구경하는 남자 뒤로 발가벗겨져 버린 Movie star에 대해 노래하는 슈화가 등장한다.


그 다음으로 장면은 핀업걸 화보를 찍고 있는 미연에게로 이동한다. 핀업걸이란 20세기 초,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에 동원된 미군들이 막사 등에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여배우들의 사진을 핀으로 고정해 두었던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이 핀업걸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가 마릴린 먼로이기도 했다. 핀업걸의 이미지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면 오래된 코카콜라 광고 속 수영복 차림의 여성을 생각하면 된다.


(1)마릴린 먼로의 핀업걸 컨셉 사진, (2)코카콜라의 핀업걸 컨셉 광고 포스터, (3)아이들 뮤비 속 카툰 캐릭터


그리고 사진 속에 있던 카툰 캐릭터가 막을 당기면 아이들이 대상화되던 스튜디오가 마침내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스튜디오가 사라지면 나타나는 것은 현대 미술관의 정경.


(1) 뮤직비디오 속 그림 캡쳐,(2) 앨리스 파이크 바니, <엔디미온(1920)>, (3) 페테르 파울 루벤스, <사자 굴 속의 다니엘(1615)>


미술관에 선 우기 뒤로 보이는 이 그림 두 점은 실제로 존재하는 명화들이다. 왼편의 것은 1920년에 그려진 Alice Pike Barney의 <엔디미온>이다. 오른쪽 그림은 보다 유명한 작품으로, 루벤스의 1615년 작 <사자 굴 속의 다니엘>이다. 엔디미온은 아름다운 용모 때문에 달의 여신 셀레네의 사랑을 받았던 목동이다. 셀레네는 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제우스에게 그가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 잠들게 해달라고 청하고, 이 탓에 엔디미온은 영원히 젊은 모습 그대로이지만 영원히 깨어날 수 없게 되었다. 다니엘은 그의 능력을 질투한 간신들의 모략에 당해 맨몸으로 사자 굴에 던져 넣어진 성경 속 인물이다. 그는 하느님이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막은 덕에 살아남았다.


드물게도 성적으로 대상화된 남자의 그림과, 사자에게 금방이라도 찢겨 죽을지도 모르는 남자의 그림. 그러나 주목받는 것은 이들 명화가 가진 서사의 선정성이 아니라 조각상 받침대 위에 선 우기의 자태다. 사람들은 그녀의 춤과 포즈를 사진으로 찍느라 정신이 없다. 미술관에 조각처럼 선 여성에게는 저 그림들처럼 각자의 이야기가 있기는커녕 왜 그림들 한가운데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조차도 없지만 일단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본다. 예술을 향유하는 공간인 미술관에서 벌어지는 행태라기엔 심히 모순적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우기를 스쳐 지나갈 때, 다시 클로즈업되는 것은 소연이 등장하는 라이브 방송 화면이다. 정신없는 속도로 올라가는 댓글들이 섹시한 걸 보여달라느니, 저속하다느니, 더럽다느니, 남자들은 싫어할 거라느니 온갖 막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단의 (G)I-DLE-'Nxde'가 쓰인 창을 볼 때 음악이 재생되고 있는 것 같지만 누구도 음악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메시지는 왜곡되고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만화경에 들어있는 듯 여러 개로 갈라지며 도는 흑백 화면 속 아이들의 모습이다. 만화경은 거울로 만든 통에 다양한 모양과 색의 종이 등을 넣어 그 안을 들여다봤을 때, 반대쪽에서 들어온 빛이 그 조각들을 거치고 거울에 의해 계속 반사되며 평면 위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무늬들을 그려내는 물건이다.


이렇듯 촘촘히 이어지는 연계를 통해 여성의 몸을 성적으로만 바라보며 그것에 강한 자극을 느끼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비판을, 그리고 그런 선정성은 사실 사람들의 편견 속에만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담아낸 것이다.


4. 뱅크시

(1)뮤직비디오 속 파쇄된 누드 카툰 (2)뱅크시 <풍선과 소녀(2018)>


2018년, 영국 런던 소더비에서 자신의 그림 <풍선과 소녀>가 104만 파운드(당시 기준 한화 약 15억 5천만원)에 낙찰된 직후, 뱅크시가 미리 설치해 둔 장치에 의해 그림 절반이 파쇄된 에피소드는 몹시 유명하다.


뱅크시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상태로 활동하며 주로 기존 예술계와 사회 관습을 비판하는 활동을 한다. 이 <풍선과 소녀> 파쇄 퍼포먼스를 통해서는 자본적으로 변질된 미술 시장에 대한 비판 메시지를 전했다. 예술에 가격을 매기고 자본적으로 구매하는 상품화적인 행태가 무의미함을 말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 퍼포먼스의 오마주를 통해 인간 본연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의미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흥미 본위로 상품과 같이 소비되는 변질된 누드를 비판했다.


또한 파쇄된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는 새 작품으로 인정되어 새 제목이 붙었다. 새로운 제목은 바로 <사랑은 쓰레기통에(Love is in the bin)>이다. 아이들의 이번 곡에 담긴 비판적 시각과도 잘 어울린다.


5. 몇 가지 흥미로운 점들


Nxde에 샘플링된 곡이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라는 점도 흥미롭다. 이 곡은 자유로운 성격의 보헤미안, 즉 집시인 카르멘이 돈 호세를 유혹하려고 불렀던 곡이다. 하지만 이 곡 이후로 두 사람 사이에는 갈등이 수없이 쌓이고  결국 카르멘의 마음이 돌아서자, 그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탈선한 탓에 인생이 꼬여 버린 돈 호세는 카르멘을 죽이고 만다.


사실 여기서 카르멘의 행동은 평범하게 연애하는 현대의 여성들과 비슷하다. 사랑했고, 사랑이 식었고, 미지근한 관계를 유지하던 중 남자가 가족을 이유로 고향으로 돌아가자 식은 마음이 굳어져 남자를 다시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의 꼬인 인생은 모두 카르멘 때문이라며 그녀를 탓하고 끝내 살해하는 것이다. 돈 호세는 카르멘을 사랑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 주변에서 가장 매력적이기로 유명한 여인의 사랑을 받았던 자신의 빛나던 시절을 사랑했던 것일까?


또 흥미로운 부분은 중간중간 등장하는 카툰 캐릭터다.

핀업걸 스타일의 이 캐릭터는 마릴린처럼 금발 머리를 하고, 물랑 루즈 댄서처럼 옷을 입은 채 또 다른 멤버처럼 가사와 함께 등장한다. 마치 함께 노래하듯이.


마지막으로는 이 캐릭터를 보고 생각난 캐릭터를 소개할까 한다. <누가 로져 래빗을 모함했나>의 제시카 래빗이다.

술집의 팜므파탈 마담인 그녀는 화려한 외모로 온갖 남자들을 휘어잡는 듯하지만 사실 남편인 로저 래빗을 매우 사랑하는 순수한 인물이다. 대표적인 대사는 -

I'm not bad, I'm just drawn that way.

전 나쁘지 않아요, 그저 그런 식으로 그려졌을 뿐이죠.

그런 식으로 그려졌을 뿐이라는 이 대사는 Nxde의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런 식으로 그려져도 그게 진짜 '나' 는 아닌 것이다. 제시카의 경우 진짜 자신은 화려한 마담으로서의 그녀가 아니라, 늘 그녀를 웃게 해 주는 남편을 사랑하는 그녀일 것이다.


This story is about truth, beauty, freedom but above all things, this story is about love.
이 이야기는 진실, 아름다움, 자유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 중 무엇보다도, 이 이야기는
사랑에 대한 것이다.


영화 <물랑 루즈!>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이 대사는 아이들의 Nxde와도 무척 잘 어울린다. 이 노래는 진실, 진정한 아름다움, 자유에 대한 것임과 동시에 진정한 자신을 향한 사랑 노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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