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은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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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스>는 지금까지의 마블 영화 중 가장 신화적이며 또한 역사적인 영화다. 명확한 신화적 근원을 가진 영웅들과, 여러 가지 유물과 전설을 통해 짜맞춰진 '이터널스'의 행적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대체 이걸 어떻게 다 이렇게 이어 내는 데 성공했는지 절로 감탄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의 아쉬움 역시 거기서 시작되는 것일 테다. <이터널스>의 영웅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하고 개성 있다. 저마다의 특징과 색깔이 몹시 확고하며, 이전에 비해 정말 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대표한다. 문제는 그 방대한 서사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 힘이 약한 편이라는 데 있다.
우선 세르시, 테나, 이카리스, 마카리, 파스토스, 에이잭. 열 명의 이터널스 중 무려 여섯 명이 그리스 신화를 기원으로 한다. 세르시는 그리스 신화의 최고 마녀 키르케, 테나는 전쟁과 지혜, 승리의 신 아테나, 이카리스는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신화 속 이카로스, 마카리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로마 식 명칭인 머큐리, 파스토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 그리고 에이잭은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이아스다(그의 이름을 영미 식으로 발음하면 에이잭이 된다).
길가메시는 수메르의 영웅이자 최초의 영웅 서사시 주인공이다. 이로 인해 헤라클레스 혹은 삼손 등, 강력한 힘을 가진 영웅 설화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킨구의 경우 바빌로니아 신화 속에서 어머니 티아마트 여신(지구에서 태어날 예정이었던 셀레스티엘의 이름이 맞다)을 지키다 사망한 용신, 킹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지만 코믹스에서 일본의 사무라이로 등장했던 점이나, 바빌론 신화 기준으로는 악신으로 분류된다는 점 때문에 확실한 것은 아니다. 이터널스 중 유일하게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스프라이트는 켈트 신화의 요정 스프리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피터 팬 등 나이 들지 않는 소년과 근원을 공유한다. 미음을 조종하는 드루이그는 켈트의 신비한 사제 드루이드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이터널스는 그리스 신화/켈트 신화/메소포타미아 신화(바빌론-수메르-아카드-아시리아 신화가 모두 이에 속함)라는 세 개의 신화를 섞어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이렇게 다른 출발점을 가진 이들을 같은 근원에서 탄생한 것으로 설정했으니 연결성이 약할 수밖에 없었던 듯싶다. 그나마 길가메시와 테나가 이들을 이어 주는 역할을 한다. 테나의 원형인 아테나 여신은 가나안의 아나트, 수메르의 인안나와 동일시 된 바가 있으며 인안나 여신은 후에 수메르가 바빌론에 정복되면서 이슈타르와 동일시되게 된다. 길가메시와 이슈타르는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에서 함께 등장하는데, 이슈타르가 길가메시에게 차여서 분노했다는 내용 혹은 길가메시가 이슈타르가 기르던 세계수에 자리잡은 괴물들을 무찔러 주었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이터널스는 길가메시가 이슈타르를 도왔던 보다 로맨틱한(?) 전승을 채택했는지, 영화 속 길가메시와 테나는 누구보다 잘 맞는 전투 파트너이자 동반자로 그려진다.
하지만 각기 다른 문화에서 탄생한 세 가지 신화가 자연스럽게 섞이기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영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관객들의 평가는 아마 이 때문이리라. 고대 바빌론을 누비는 그리스의 신들과 아즈텍이 정복자들에게 짓밟히는 날에 분노하는 켈트의 드루이그는 확실히 낯선 조합이기 때문이다.
이터널스는 분명 최대한의 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의 추구를 시도한 듯하다. 다양한 인종, 적절한 성비, 성 소수자의 가시적 등장과 청각장애 영웅의 등장. 이는 이전까지 없었던 일이며 분명 성과라고 칭할 만한 변화다. 하지만 이 변화는 역설적으로 마블이 여전히 백인 남성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는 점을 지적하게 한다.
작중 유일하게 어린 나이인 스프라이트(리아 맥휴)의 서사가 이를 가장 잘 드러낸다. 이터널스가 갈등할 때, 셀레스티얼이 탄생할 수 있도록 지구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이카리스(리처드 매든)는 동료들을 공격해서라도 작전을 막겠다고 말한다. 이때 유일하게 이카리스를 따라 떠난 것은 스프라이트. 그녀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그들을 지구에 보낸 셀레스티얼 아리솀을 향한 믿음도, 더 많은 생명을 위해 소수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믿음도 아니었다. 그 행동은 '오직 그녀가 오래도록 이카리스를 사랑해왔기 때문에'라는 말로 순식간에 설명된다. 심지어 그녀는 오래도록 자신과 가족처럼 살아온 세르시를 단도로 찌르기까지 한다. 한 캐릭터가 가족과도 같은 동료를 공격하게 만들면서 그 이유를 이루지 못할 사랑만으로 설명한다는 건 지나치게 1차원적인 해석이다. 자랄 수 없는 운명에 처한 여자아이가 어른 모습의 남성을 사랑하고 동경하여 어머니/언니 위치의 여성 가족에게 공격성을 드러낸다는 건 엘렉트라 컴플렉스(아버지를 사랑하여 어머니에게 공격성을 보임)와 비슷한 이야기가 아닌가?
세르시의 서사 역시 아쉽기는 매한가지다. 그녀는 물질 변환이라는 강력한 힘을 지녔는데, 이 힘을 생명체에게는 사용할 수 없어 전투에서 늘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데비안츠 앞에서 망설이지 않고 지형지물을 이용해 싸우며 일반인 남자친구인 데인 휘트먼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세르시의 서사는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결국 에이잭의 죽음을 겪고, 전투를 거치며 성장해 데비안츠의 성질을 나무로 변환해내는 데 성공한다. 분명한 성장의 징조다. 하지만 셀레스티얼을 대리석으로 바꿔놓을 때, 그들의 계획을 저지하려는 옛 연인 이카리스가 날아와 그녀 앞에 선다. 그리고 이카리스를 막아 세운 것은 세르시가 아니었다. 그녀는 방어하려는 최소한의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작중의 설명에 따르면, 생명을 제외한 모든 물질의 성질을 바꿀 수 있는 세르시의 힘으로는 공기의 성질도 변환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방어벽 정도는 세워 볼 만도 했을 테다. 하지만 그녀는 옛 연인 앞에서 눈을 감고 무방비하게 다가올 공격을 기다린다. 그리고 차마 사랑하는 여인을 공격할 수 없었던 이카리스는 스스로 무너져 유니마인드에 본인의 코스믹 에너지를 내어준다. 강력한 사랑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다는 것은 알겠지만, 결국 세르시의 이 마지막 성공은 이카리스의 항복에 의해서 완성되었다고밖에 할 수 없다. 세르시는 이카리스의 추억을 자극하는 말 한 마디조차도 한 적이 없다. 이것이 정말로 여성의 성장식 영웅 서사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카리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에도, 그녀는 이전의 일반인 남자친구 데인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아리솀에게 끌려간 세르시를 구하러 가기 위해 외면하고 살아온 가문의 신비한 힘에 손을 댈 마음을 먹는 데인의 마지막 쿠키 장면은 세르시의 성장 서사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테나의 서사는 작중 여성 서사 중에서는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 여전히 아쉬운 편이지만 말이다. 아테나는 아버지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여신이며 전쟁과 승리, 지혜를 관장한다. 지혜의 여신에서 모티브를 얻어온 테나가 그 오랜 기억들을 모두 잃지 않고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그로 인해 정신의 붕괴가 일어나 '매드 위리' 증상과 싸워야 한다는 점은 나름 합리적인 설정이다. 가장 믿음직스런 파트너 길가메시만이 그녀를 현실에 붙잡아줄 수 있다는 설정도 나쁘지 않다. 두 배우의 액션 합과 연기 합도 좋았다. 하지만 결국 테나는 전쟁의 여신이자 이터널스의 가장 뛰어난 전사가 아니었던가? 길가메시의 죽음 앞에서 테나는 지나치게 무력하다. 기억의 혼돈으로 처음에는 전투에 참여할 수 없었더라도, 평생의 연인이 눈앞에서 코스믹 에너지를 뽑히며 고통스레 죽어 가는데 덜덜 떨기만 하는 전쟁의 여신이라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카리스와의 전투에서도 테나는 승기를 잡지 못하고 제압당한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리스 신화 속에서 이카리스, 그러니까 이카로스는 지나치게 오만했던 죄로 날개를 잃고 바다에 떨어져 죽은 한낱 인간이다. 늘 승리하는 전쟁의 여신과 인간의 싸움이라면 결과는 뻔할 텐데, 지나치게 균형이 맞지 않는 설정이라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테나의 마지막 전투 상대는 데비안츠의 우두머리였다. 처음에는 테나가 우위를 점하는 것 같지만, 데비안츠는 길가메시의 힘을 흡수했던 것을 이용해 테나를 홀린다. 테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해 등 뒤로 두 손이 묶이는 데까지 갔다가, 에너지를 다 뽑혀 죽기 일보 직전에 정신을 차리고 데비안츠를 쓰러뜨린다. 속이 시원하기보다는 속이 타들어가 죽을 것처럼 아슬아슬한 장면이었다. 이 장면에서 테나가 조금 더 강력했더라면, 조금 더 분노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눈 앞의 상대는 테나가 가장 약해졌던 순간을 이용해 수천년 간 그녀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며 지켜 온 연인을 죽인 자다. 조금이나마 홀렸더라도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감히 연인의 목소리를 이용한 상대를 압도적으로 찍어 눌러 죽였더라면 테나의 캐릭터와도 더 잘 어울리는 장면이지 않았을까? 테나는 성장했다기보다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것처럼 보인다. 감독은 그 지점을 의도했을지도 모르겠으나 글쎄, 관객에게 이 상황이 정말 테나의 연약한 면모를 돋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길가메시를 희생시킬 가치가 과연 있는 서사였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카리의 서사는 꽤 멋진 편이다. 그녀는 강력한 스피드를 지혜롭게 활용하여 이터널스 중 최강자인 이카리스를 순간적으로 압도할 수 있으며, 이카리스의 예상을 벗어나는 유효 타격을 여러 차례 성공시킬 수도 있다. 이카리스나 킨고, 테나와 길가메시처럼 전투 계열의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님에도 능력을 누구보다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200퍼센트 이상의 활용력을 발휘하는 마카리의 모습은 그녀의 뛰어난 지략적 면모를 보여 준다. 그녀의 모티브가 된 헤르메스 신 역시 재치 있는 작전들로 인간들과 신들을 수차례 도왔음을 생각해 보면 모티브 신화와도 잘 어울리는 모습이라 하겠다. 또한 그녀의 장애는 그녀를 제약하는 족쇄가 아니며, 이터널스 역시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 보다 배려한다거나 하는 기존의 시혜적 모습을 연출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아쉬운 점은 마카리의 비중이 필요 이상으로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마카리는 초반 이터널스 모두가 나오는 장면들이 지나가면 한참 동안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마카리와 가장 가까웠던 드루이그가 아마존 한가운데에 정신 조종으로 낙원을 건설하는 동안 그녀는 그를 말리지도 않고, 동조하지도 않고, 이터널스의 우주선 도모 속에서 수집품을 모으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드루이그가 이카리스에게 공격당한 것을 보고 폭발적인 분노를 드러내는 후반의 모습과 상당한 괴리가 있는 설정이다. 더군다나 그 수집 생활마저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우주선 내부를 비추는 것으로 갈음한다. 발리우드 배우가 된 킨고의 약간은 뜬금없는 춤과 노래 장면이 삽입된 것이나, 대안 가족을 꾸린 파스토스가 눈물로 남편, 아이와 작별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삽입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기껏 장애를 가진 히어로 캐릭터를 멋지게 만들어 놓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모양새다.
신화/역사적 배경 지식 없이 <이터널스>에 오롯이 집중하기 어렵다는 점 역시 일반 관객들의 혹평 요인일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인물들의 배경 신화 역시 그렇지만,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면 아마존 삼림 한가운데서 난데없이 등장하는 드루이그에 대한 부분을 지적할 수 있다. 자연을 귀히 여기며 균형을 이루어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쳤던 드루이드의 이념을 잘 알지 못한다면 영국과는 무관해 보이는 아마존에 드루이그가 자리잡았다는 점이 뜬금없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은 이미 대부분의 자연 상태를 상실한 영국과 달리, 드루이드가 여전히 지킬 것이 남아 있는 땅이다. 그렇기에 드루이그는 옛 드루이드들이 인간들을 이끌고 가르치며 사회의 구심점으로 기능했던 것처럼, 아마존에 자신만의 낙원을 만들어 무리를 이끌며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적해야 할 것은 백인 남성 중심의 시각이 여전히 짙게 남아 있다는 부분일 것이다. 이터널스에서 최강의 전투력을 지닌 것은 이카리스와 길가메시, 이렇게 두 사람이다. 킨고도 코스믹 에너지를 총처럼 발사하는 능력을 사용하지만, 킨고는 스스로가 결코 이카리스를 당해낼 수 없다고 여기며 그를 '보스'라 칭한다. 테나는 전쟁의 여신이지만 이카리스와 오래 맞서지 못하고 제압당하며, 마카리 역시 압도의 순간이 끝나면 이카리스에게 붙들린다. 파스토스의 기술 역시 이카리스의 힘으로 부술 수 있다. 드루이그는 이카리스를 조종할 수 없다. 스프라이트는 애초에 이카리스와 싸울 생각을 하지 않으며, 에이잭 역시 저항조차 않은 채 죽는다. 세르시는 생명의 성질을 바꿀 수 없기에 전투력 비교가 어려우며, 마찬가지로 이카리스와 싸울 생각이 없다.
아마존 삼림의 전투 장면에서 드러나듯, 이카리스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를 제대로 도울 수 있는 건 그나마 길가메시뿐이다. 하지만 동양 배우가 연기한 수메르의 길가메시는 사랑을 위해 희생, 무대에서 일찌감치 퇴장한다. 이 장면에서도 카메라는 테나의 오열에 집중하기 전, 이카리스의 동요를 집요하게 앵글에 담아낸다. 그리고 이제 남은 모든 것은 이카리스에 의해서 일어난다. 에이잭을 죽게 한 비정함도, 이터널스를 분열시키는 선택도 이카리스의 것이며 누구보다 빨리 지구가 희생될 것임을 알고 도망침으로서 세르시를 떠난 것에 대한 정당성을 스스로 부여하는 것도 이카리스다. 또한 후반의 전투 장면은 대부분이 이카리스와 나머지 이터널들의 전투다. 심지어 세르시가 세계를 구해낸 것 역시 이카리스의 사랑 '덕분에' 가능했으며, 그는 죄책감에 휩싸인 채 이카로스 신화를 그대로 담습한다-태양으로 날아가 몸을 던진 것이다. 정말이지 압도적인 분량이며 비중이 아닐 수 없다. 세르시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세르시는 이카리스 없이 등장한 적이 많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대비는 더욱 극명하다. 다른 인물들의 인종과 설정은 자유롭게 바꿨던 마블이 하필 이카리스 캐릭터만은 백인 남성으로 설정을 유지한 이유가 따로 있을까?
파스토스는 폐허가 된 히로시마에서 절규한다. 확실히 히로시마만큼 기술의 폐해를 드라마틱하게 보여 줄 수 있는 연출이 많지 않다는 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못내 불편해지는 것은, 우리가 한국인이라서뿐만이 아니다. 파스토스는 흑인이며, 성 소수자 캐릭터다. 그는 기술자지만, 사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건 백인 남성 과학자들이었다. 어째서 그들과 공통점이 하나도 없는 캐릭터가 그 죄책감에 대해 사죄하고 있는 것인가? 이는 타인의 입을 빌려 죄의 책임을 흐려 놓는 것처럼 다가온다(킨고 캐릭터의 국적을 바꾸면서 불만을 가졌을 일본인들에 대한 사과를 함께 섞어 놓은 듯한 연출이기도 하다).
드루이그가 아마존에서 이끄는 사람들은 또한 모두 백인이다. 아마존 원주민이라면 백인이 아닌 편이 더욱 자연스러울 텐데도 그렇다. 이 부분 역시 꽤나 기이하다. 이터널스는 고대 바빌론의 인간들을 수호하고 가르침을 내리지만, 백인들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부분은 나오지 않는다. 아즈텍에서 그들이 휘두르는 총기는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등장한 것으로 서술된다. 마블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기본 설정값에 백인을 두고 있으며, 발전과 가르침을 표현할 때는 타민족을 가져오고 있음을 느낄 수밖에 없는 연출이다.
또한 한 가지의 의문을 더 제기하자면...
신화 속 신들과 영웅을 본따 만든 나머지 모든 이터널스를 제치고, 인간 모티브의 캐릭터가 최강자로 군림하는 이 상황이 상당히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필자뿐일까? 수많은 행성을 셀레스티얼에게 바치기 위해 파괴해 온 에이잭이 하필 지구에서 행성의 생명체에게 감화된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스프라이트가 하필 지금 지구에서 인간이 되기를 원하게 되는 것은 또 어떤가? <이터널스>는 이 넓은 우주에 존재할 수 있는 수많은 지적 생명체 중 인간만은 무언가 다르고 특별하다는 메시지를 영화 전반에 걸쳐 전하고 있는 것이다(개중에서도 백인 남성에 조금 더 방점을 둔 셈이지만.).
<이터널스>가 많은 발전 시도를 했음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신화적 요소들과 역사적 사건들을 유의미하게 배열하고 짜 맞추기 위해 엄청난 품이 들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캐릭터 캐스팅이 백인 남성으로만 채워지지 않았다는 점도 그들의 노력을 잘 보여준다. 기존의 마블 영화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며 유의미한 변화다. 하지만 여전히 마블은 변화 자체보다는 '이렇게 PC한 영화를 만드는 우리'의 이미지에 보다 취해 있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변화와 발전에는 끝이 없고, 한 가지를 개선하면 또다른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부디 잊지 않아 주기를 바란다. 이터널스의 세계관이 더욱 확장될 다음 영화에서는, 마블이 이번에 새로 얻은 장점들을 잃어버리지 않은 채 조금 더 많은 생각을 거친 뒤 돌아와 준다면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