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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rinsk Sep 05. 2016

누가 더 세상을 망칠까?

"Better Call Saul"

행동 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보통 사람들이 저지르는 '작은' 거짓과 '사소한' 타협의 순간들이 생각보다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개개인에게 별 것이 아닐지 모르지만, 그 총합의 사회적 비용은 클 수 있다는 것이다. 개개인에게 자투리(margin)로 보이는 것이라도 모이면 커진다. 작은 행동 요소가 큰 문제(혹은 큰 개선)의 지렛대가 된다는 시각에서 행동경제학자답기도 하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책의 연구들을 반박하긴 힘들겠지만, 정말로 그럴까는 여전히 나에게는 의문이다. 어떤 사회가 지니고 있는 신뢰(trust)의 위력은 반대로 그것이 발휘되고 용인될 수 있는 여지(라고 쓰고 "유도리"라고 발음하고 싶다)에서 잴 수 있지 않을까? 개개인이 작은 거짓말에도 날을 세워야 하는 혹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동기화하는 제도/심성/의무가 자리 잡은 사회가 내 눈에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꽤 오래전에 읽었던 애리얼리의 이 책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미드 "Better Call Saul"(이하 BCS)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내 인생의 걸작(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Breaking Bad"(BB)의 스핀오프 시리즈다. BB의 주인공 월터 화이트와 긴밀하게 얽혔던 두 인물들이 BCS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BB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Better Call Saul"은 극 중 등장하는 악덕(?) 변호사 사울 굿맨의 TV 광고 문구다. 사울 굿맨은 돈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악마라도 대변할 수 있는 그런 변호사다. 다른 등장인물 마이크 어만트라웃은 경찰 출신의 노회하고 능숙한 해결사다. 인기 시리즈의 스핀오프 드라마는 사실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 본작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쉬운 전략이 드라마의 생기를 앗아가기 마련이고, 독자적인 개성을 못 살린 채 원작을 기웃거리다가 지리멸렬해진다.

가족이라는 주제는 BCS와 BB를 관통한다. BB의 처음 세 개의 에피소드를 보고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암에 걸린 소도시의 화학 선생이 전문지식을 활용해 마약을 만들어 팔 결심을 한다. 온전치 못한 아들을 비롯해 갓 태어난 딸까지 뒤에 남겨질 가족들에 대한 가장으로서의 걱정 때문이다.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BB가 처음 방영된 해가 2008년이다. 서브프라임 사태 때문에 많은 미국의 중산층 가정이 큰 고통을 겪었던 시기다. 물론, BB는 이후 5개의 시즌을 거쳐 2013년까지 방영되면서 가족을 초월하는 여러 가지 오묘/씁쓸/사악한 주제들을 포괄하며 더욱 풍부한 우주가 되었지만, 시리즈의 시작은 이랬다.

BCS에서 법률가로서 승승장구하던 지미 맥길의 형 척 맥길은 사고를 계기로 부인을 잃었고, 전자파를 두려워하는 심인성 질환을 앓게 된다. 전자파 차단을 위해 전기를 모두 끊은 집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있는 그를 돌보는 것은 동생 지미, 이후의 사울 굿맨이다. 폐인에 가까운 형을 돌보면서 지미는 형이 예전의 영광을 회복하게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미에 대한 형의 불신은 한때의 부랑자 지미가 법률가가 된 이후 더욱 강해진다. 사실 그의 지미에 대한 미움은 동생의 방탕한 과거 때문이 아니다.

지미는 타고난 친화력으로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사람이다. 형은 그런 지미를 시샘했고, 사람들이 지미를 좋아하는 그 이유 때문에 그를 싫어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미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물 먹이고, 별 볼 일 없는 자리에 지미응 묶어두는 데에는 이상하리만치 애릉 쓴다. 한편, 전문 해결사 마이크 어먼트라웃 역시 법 밖에서 힘을 쓰는 존재지맘 무관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자신만의 도덕 원칙 같은 것이 있다. 이 고유한 정의감이 그의 삶에 균형을 잡아주는 노릇을 하지만 역시 약점은 죽은 아들이 남기고 간 두 혈육들이다. 역시 인간을 무리수를 두게 되면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어떻게든 사달이 나게 마련이다.

인간군상들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는 BB와 BCS의 쇼러너 빈스 길리건을 당할 제작자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는 지상의 인간들이 마주하는 지질한 순간을 잡아채 이를 기발한 이야기와 녹여낼 줄 안다. 마약 제조라는 강렬한 소재를 중산층의 실패와 포개 둔 BB의 솜씨는 BCS에서도 그리 녹슬지 않았다. 젊은 사울 지미 맥길로 분한 밥 오덴커크(Bob Odeenkirk)는 BB의 강렬한 캐릭터 월터 화이트를 연기한 브라이언 크랜트슨과 견줄만하다. 비교적 무명의 배우들이 지닌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도 빈스 길리건이 지닌 미덕 중 하나다.

이 블랙 코미디가 내게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대부분의 순간 윤리와 도덕의 경계에서 살지만 결정적인 때 균형 감각을 놓치지 않는 것과 매 순간 원칙에 집착하며 각 잡고 살지만 사실 집착으로 가득 찬 쪽, 둘 중 누가 세상에 더 혹은 덜 해를 끼칠까? 물론, 소설이나 미담 속의 주인공들처럼 대쪽같은 원칙과 세상을 향한 무해함을 조합할 수 있다는 이것이 최선이겠지. 하지만 역시 우리는 최선(first-best)보다는 차선(second-best) 혹은 차악을 바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지미 맥길이든 마이크 어만트라웃이든 이런 도덕 경계에서 어떻게든 균형을 찾고자 하기 때문에 흥미로운 캐릭터들인 것이다. 대부분은 순간 거짓말을 하다가도 결정적인 한번 거짓말을 하지 않는 그 균형감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드라마에서 흔히 추구하는 과도한 설정이나 장치 없이도 BCS가 재미있는 이유는 일상에 닥칠 법란 딜레마의 연속과 어느 순간 절묘하게 회복되는 도덕감 때문이다. 그런데, 시즌2까지도 왜 지미 맥길이 "사울 굿맨"이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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