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나 Jan 23. 2022

여기 근처에 바닷가가 있어요?

바다의 숲의 만조

 소금창고를 방문하시는 분들께서 종종 물으신다. 여기 근처에 바닷가가 있어요? 염전에 바닷물은 어디서 끌어오는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둘러봐도 바다가 보이지 않으니까 충분히 의문을 품을 만 하다.


 처음엔 나도 의아했다. 여기가 해안가라고요? 바다는 어디 있어요? 내가 아는 바다는 너른 모래사장이나 울퉁불퉁한 현무암 돌덩이들 너머로 짙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모습인데, 갯골에서는 물결은커녕 물 자체를 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골짜기가 메마르지 않고 촉촉이 물기를 머금고 있어 물이 드나들고 있다는 걸 짐작할 뿐이었다.


 골짜기 모양의 갯벌이라 ‘갯골’이라고 한다. 그런데 시흥의 갯골은 유독 내륙으로 깊이 형성되어 있다. 구불구불 골짜기가 도심 안쪽까지 들어와 있어서 바닷물이 들어오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내만 갯골이다. 골짜기에 물이 찰 때 염전에 가두어 소금을 만들 수 있었다. 지금은 바닷물의 수질과 염전 운영 여건을 고려하여 지하에서 끌어올린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고 있다.


 갯골에는 하루 2번 바닷물이 들어온다. 하지만 매일 시간이 달라 갯골의 물이 가득 찬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거대한 골짜기에 물이 차있는 모습은 어떨까? 머릿속으로 그려보지만, 상상조차 어렵다. 과연 이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한 번은 볼 수 있을까?




“오늘 갯골에 물이 찼네요! 가는 길에 꼭 보고 가요.”


 근무를 마무리할 때쯤 해설사 선생님께서 갯골을 둘러보고 오시면서 가져온 엄청난 소식! 안 그래도 퇴근할 생각에 설렜는데 갯골의 만조를 보고 갈 생각을 하니 남은 10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휴대폰 화면을 터치하니 뜨는 4:59. 9가 0으로 바뀌기만을 기다리며 거의 5초에 한 번씩 터치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5:00” 잽싸게 리모컨을 들고 소금창고 안내 영상 화면을 끈 후 내부 조명 버튼을 반대쪽으로 눌렀다. 눈으로 공간을 훅 훑으며 놓친 게 없는지 확인했다. 화면 껐고, 불 껐고, 쓰레기 없고! OK, 가자! 자물쇠를 챙겨 들고 투명한 미닫이문을 밀어서 잘 닫은 후 양쪽으로 활짝 열린 나무문을 모아 빗장을 걸어 잠근다. 자물쇠를 걸어서 번호를 휘리릭 돌려놓으면, 끝. 이제 진짜 가자!



매번 가던 오른쪽 말고 생태체험 학습장 방향인 왼쪽으로 걸었다. 이게 이렇게 설렐 일인가 싶을 만큼 심장이 두근두근 기분 좋게 뛰었다. 그리고 마침내 언덕을 넘어섰을 때는 이제껏 봐왔던 갯골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와- 대박! 말도 안 돼”


 바다가 있었다. 하늘색을  닮은 바다. 골짜기 사이를 걸어 들어가는데 나무 데크가 출렁거렸다.  넓고 깊은 골짜기가 빈틈없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노을빛 때문일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물빛이었다. 회색빛 종이에 분홍빛 물감이 스며든 묘한 색감이 하늘과 땅을 물들였다. 뜨겁고 짙게 타오르던 노을이 아니라 따스하면서도 답답하지 않고, 시원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이었다.




 매일 비어있던 갯골을 보다가  채워진 모습을 보니 낯설면서도 덩달아 기운이 채워졌다. 물이 주는 안정감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달되었다. 채도가 낮은 회색빛 분홍에 눈은 차가워 시큰거렸지만 어쩐지 마음은 부드럽게  안긴 기분이 들었다.


물이 들어오면 들어오는 대로 차오르고, 물이 나가면 나가는 대로 비워지는 이곳. 변화 앞에 주저앉거나 맞서지 않고 그저 물결을 타듯 자연스럽게 흐름을 따라간다. 고이지 않고 비워내야 다음을 채울  있으니까. 기꺼이  흐름을 같이 타보려 한다. 비움도 채움도 있는 그대로 품을  있길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비오는 날에 이불 밖도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