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초보들은 시합에서 어떤 피드백을 가장 많이 들을까. 내 경우에는 "침착하게, 잡아놓고 침착하게!"와 "공 쫓아가지 말고!", "숨지 말고, 도망가지 말고!"가 제일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경기장에서 대체로 혼자 급박하고, 쫓기느라 바쁘며, 내 몫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전전긍긍하고, 어느 위치에 서야 좋을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중인가 보다.
침착하지 못하고 급박한 이유는 시야가 눈 가린 경주마 수준으로 좁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필 여유 따위는 없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릴 뿐이다. 덕분에 "공 말고 사람을 쫓아야 한다(지은 언니! OO번 마킹!)"는 말을 귀에 피가 날 정도로 들었다. 물론 충고를 새긴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몸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코치님한테 혼이 날 때마다 귀담아 듣고 있다는 의미로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모아 오케이 사인을 보내지만 휘슬이 울리면 홀린 듯이 공만 쫓는다. 눈앞에 굴러가는 공만 마주하면 아무것도 안 들리고 그 공만 커다랗게 클로즈업 되니 참 신기할 노릇이다. 이러다가 공 따라 지옥까지 쫓아가겠어. 피리 부는 사나이가 어떻게 그렇게 아이들을 끌고 돌아다녔는지 알 것만 같다.
왜 나는 모든 공에 덤비는가.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내게는 '팀플레이'가 낯설기 때문 아닌가 싶다. 회사 내에서 상상했던 팀플레이는 이런 것이었다. 최고의 실력자들이 모여 최선을 다하면 그 모든 조각들이 모였을 때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 이를 위해 매번 내 몫을 다했다.
상사가 "이거 맡아서 해볼 사람?" 물어보면, 누구도 맡고 싶지 않아 하는 일이라도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해버렸다. 동료가 버거워하는 일은 손발 걷고 나서서 도와주고, 누군가 내게 일을 미루고 싶어 하면 기꺼이 눈감아주며 대신 처리해주었다. 나 하나의 노력과 희생이 결국 팀 모두를 살리는 일이라 생각하던 시간이 있었다.
그렇게 웬만한 업무를 도맡아 했더니 일적으로 유의미한 성장을 얻었고, 내 안의 인정욕구도 어느 정도 채워졌다. 동료들에게는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라는 인상을 심어주었고, 상사로부터는 '없어선 안 되는 팀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상대평가를 매기는 인사고과 시스템 아래에서 일할 때 한 번도 하위권에 위치해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인정도 한두 번이지. 팀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마음은 점차 '왜 나만?'이라는 의문으로 변하고 만다. '제가 할게요'라는 문장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누구의 일도 아닌 것들이 전부 내 몫으로 남는다.
상대는 자꾸 '누군가 알아서 하겠지' 생각하며 손을 놓아버린다. 내가 최선을 다하면 그에 대한 응답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웬걸, 내 몫만 점점 더 커져갔다. 그때 깨달았다. 회사에서는 팀플레이를 기대하면 안 되는 거구나. 나는 바라지 않아야 할 것을 바랐고, 그래서 혼자 고군분투하다가 억울해졌고, 결국 외로워졌다.
일단 한번 억울한 마음이 자리 잡고 나면 이후에는 동료의 작은 배려와 솔선수범 앞에서도 '왜 저거밖에 안 해. 지난번에 나는 그보다 몇 배는 더 했는데'라며 나도 모르게 평가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팀을 위해 희생하겠다던 마음이 억울함으로 변하는 순간, 팀워크는 무너진다.
축구를 하기로 결심한 까닭은 사회생활에서는 좀처럼 느끼지 못한 그 '팀워크'를 나도 한 번 경험해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내가 잘하든 못하든 애써 보듬어주는 우리 팀 친구들을 만났을 때, "모든 공을 언니가 다 막을 필요 없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사실 타박하는 말이었지만) 내심 안도했다.
일을 할 때는 '내가 모든 사항을 통제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강했는데, 축구를 하면서는 '혼자 다 안 막아도 되는구나, 모든 걸 잘하지 않아도 괜찮구나'라는 안도 아래에 있었다. 물론 뛰어난 기량으로 상대 수비를 제치거나 완벽한 방어로 맞은편 공격수를 무력화시켜야 할 때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수어 명이 함께 뛰는 공간에서 혼자 국가대표급 기량을 자랑한다고 해서 반대편 팀의 견고한 단합이 쉽사리 무너지지는 않는다. 하물며 나는 그럴 능력조차 없다. 자꾸 혼자 다 하려고 나서기보다는 내 자리를 지키며 내가 못 서는 자리는 다른 친구를 믿고 맡겨야 하는 것이다.
한번은 수비의 기본자세를 설명해주던 축구 친구 별로가 말을 이었다.
"보통 수비수가 공격을 막아내는 역할이라 생각하는데요, 수비의 기본은 '지연'이에요. 동료가 달려와 도와줄 때까지 시간을 버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설프고 부족한 나라서 완벽하게 상대를 막지 못해도, 조금만 견디다 보면 동료들이 내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달려온다는 이야기다. 그 말이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나는 내 자리를 지키며 동료를 기다리고, 또 동료가 위기상황일 때 그 힘듦을 나누어지기 위해 기꺼이 달려가주는 것, 그 신뢰감을 쌓다 보면 결국 우리만의 축구가 완성된다.
이제는 정말 공 말고 사람만 쫓을 생각이다. 내 자리에서 힘껏 버티고 또 버티다 보면 친구들이 내 곁으로 달려와 견고한 성을 쌓아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또 우리만의 팀워크로, 우리만의 팀플레이를 만들어내고야 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