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터닝포인트
‘파혼’
‘산티아고 가는 길’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큰 변화를 준 포인트를 말하라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다. 4년을 만나고 결혼을 앞두고 있던 연인과 헤어진 2011년 7월,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로 떠났다.
그곳은 잘 알려진 대로 프랑스 피레네 산맥을 넘어 800km를 횡단하는 스페인의 대표 순례길이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떠나온 사람들이 만나 고난의 길을 걷는 곳. 그 끝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 그 먼 길을 걷고 또 걷는 고행의 길이다. 걷다 보면 짊어진 것의 일부를 버리게 되고 짊어진 고통까지도 즈려밟게 된다. 끝에 다다르면 비로소 텅 빈 나와 마주하게 되고, 텅 빈 나를 새로운 것으로 채우기 위해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곳에 다녀온 후의 나는 달라져 있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운동하기를 극도로 싫어했던 내가 뛰다시피 산을 오르내리고 둘레길을 찾아다니며 걷는 걸 즐기게 됐다. 회사생활이 힘들지 않았고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으로 충만해졌다. 가장 큰 변화는 제2의 글쓰기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것!
결혼을 해서 해외살이를 계획했던 터라 남편과 함께하는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무산되고 회사원인 나만 남게 되었을 때의 그 허무함과 비참함은 무엇으로도 달래지지가 않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 걷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생각들만 정리했는데도 노트 한 권이 꽉 찼다. 쉬는 시간에 잠을 자는 것보다 노트를 꺼내 글 쓰는 게 재밌었다. 책은 무거워서 짊어지고 다닐 수가 없었고 TV도 없었으니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즐거운 일이 머릿속을 들쑤셔 그 안에 든 걸 끄집어내는 일이었다. 예상보다 많은 것들이 튀어나왔다. 그동안 머릿속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있던 걸까?
꽉 찬 노트를 들고 가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출간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책 한 권 분량의 글도 완성했다. 그때부터 난 이미 스스로를 작가로 인정했던 것 같다. 아니, 인정이라기보다는 아직 데뷔만 안 했을 뿐인 작가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 후 소설, 영화, 드라마,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글을 썼다. 한때 방송 구성작가였던 나름의 프라이드가 있어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할 거란 기대와는 달리 각 분야마다 글 쓰는 방식이 달라 애먹었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 성장하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실력이 성장했다기보다는 나 자신이 성장했다고 보는 게 맞지만 글쓰기를 놓지 않았다는 면에서는 충분히 칭찬할만했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계속해서 글을 쓰는 나는 없었을 것이다. 사건 즉, ‘터닝포인트’는 그렇게 예고 없이 인생을 변화시켰고 그 후로 크고 작은 터닝포인트들을 맞닥뜨리며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고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글 쓰는 삶을 살기로. 글을 쓰며 나를 찾고 글을 통해 너와 세상을 만나는 삶! 일종의 인식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렇다. 터닝포인트는 인식의 변화이며 그로 인해 달라진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말한다. 어쩌면 다른 모습으로 살았을지도 모를 나를 지금의 나로 살아가게 하는 터닝포인트.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소리없이 찾아오는 터닝포인트.
살다 보면 작건 크건 다양한 터닝포인트를 만나게 된다. 그 순간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건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이다.
상관없이 살던 대로 살 것인지, 터닝포인트가 말해주는 인식의 변화를 적극 받아들여 다른 삶으로 나아갈지 말이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사소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수많은 터닝포인트를 잡아채 내 것으로 만드는 깨어있는 삶! 깨어만 있다면 자주 터닝포인트를 만나게 될 것이다. 만나면 반갑게 악수하고 친구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