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속도를 찾아서

구도자의 길

by 다시봄

구도자!

인도의 구루같은 존재인 내가 세상에서 누구보다 빠르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뽐내며 엄청난 속도로 걷다가 앞서 가고 있던 구루를 이끄는 무리들에 의해 경고를 받았다. 경고를 받는 순간 걸음은 멈춰지고 다리가 굳어버린다. 그리고 몸이 뒤로 돌려지고 내 힘이 아닌 다른 힘에 의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과거로 과거로…


과거로 걸어가며 나는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그동안 살아온 삶이 머릿속을 스치며 표정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웃지 않고 울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 그렇게 3년 전 과거로 가서 같은 장소를 걷는 나는 더이상 3년 후의 내가 아니다. 감흥이 없고 표정이 없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있다.


그때 어디선가 깔깔 웃는 소리가 들린다.

멀지 않은 곳에서 소녀들이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나름 박자를 맞춘다고 하지만 동작과 소리가 일치하지 않는 막무가내 춤이다. 하지만 소녀들은 즐겁게 몸을 흔들며 웃고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그들의 순수함과 열정이 마음을 흔든다.


나도 저렇게 웃고 싶다!

나도 저렇게 뛰고 싶다!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그저 지금을 느끼면서!!


3년 전으로 돌아가 소녀들을 목격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돼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세상의 것에 속박되지 않고 얽매이지 않고 내가 갈 길을 가겠다는 결심!


다시 앞을 향해 걸었다.

머릿 속엔 나만의 속도를 찾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걷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구도자의 삶을 개척해 나가기로 한다.




예전엔 꿈을 많이 꾸지 않았다.

아니, 꿈을 꾸긴 했어도 눈을 뜨자마자 기억이 모두 휘발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요즘은 꿈이 대체로 생생하고 어느 땐 얼른 깨서 기록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꿈을 꾸는 동안은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꿈의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스스로를 옭아매고 채찍질하고 더 빨리 나아가라고 보채는 삶에 경고라도 하듯 속도제한을 종용하는 꿈을 자주 꾼다. 자신을 못 믿어 멈추고 싶어서가 아니라 부족해도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것 같다. 위로가 아니라 격려라고 해야 하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 꿈 속의 내가 하는 소중한 조언을 따르려고 한다. 지쳤지만 나아갈 것이고 나아가더라도 나만의 속도를 유지할 것이다.


구도자.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다.

곳곳에서 의미를 찾고 깨달음을 얻고자 늘 진리를 갈구해 왔다. 성직자나 수도자처럼 온몸으로 그런 삶을 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진리에 다가가기 위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산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 종교나 예술 영역에 관심을 쏟았고, 그 안에서 나를 찾는 방법으로 작가가 되고자 했다.


작가란 무엇인가?

모름지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이라 해도 가고자 하는 방향이 맞다면 방향을 잃지 않는 게 더 중요할 것이다.



사소해서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되는 일들이 가끔은 삶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물론 익숙하고 길들여져서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엄청 큰 자극일 수도 있지만… 어찌됐든 어떤 자극이든 지금의 내겐 터닝포인트가 되기에 충분하다. 변화는 어렵지만 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걸로도 이미 변화에 불을 지핀 것이 아닐까? 스타트 라인에 선 것이 아닐까? 나는 또 어떤 사람이 되어 갈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