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보고 느끼면 ‘당연’은 ‘감사’가 된다
광일 걔가 우리 아버지를 죽였다고.
동훈 나 같아도 죽였어. 내 식구 패는 새끼들은 다 죽여!
비록 정당방위 판결을 받았지만 광일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에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온 지안은 나 같아도 죽였을 거라는 동훈의 한마디에 그 간의 지옥 같은 삶을 치유받는다. 한 번도 자신에게 ‘괜찮아.’ ‘아무것도 아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길 한복판에서 작은 몸을 웅크려 오열하는 지안의 모습이 그 자체로 위로가 되는 이유이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다섯 번째로 정주행 하며 폭풍 눈물을 흘렸던 장면이다. 내가 드라마를 쓴다면 꼭 이런 드라마를 쓰겠다고 다짐했고 작가 친구들도 나와 정서가 맞는다고 했던 드라마이기도 하다. 드라마가 방영된 지 4년 만에 대본집이 발간되어 반가운 마음에 다시 꺼내봤는데 여전히 주옥같은 장면과 대사들이 가슴을 울린다.
올해 내 삶의 키워드는 ‘구원’이다.
구원. 때론 돈이나 환경일 수도 있겠지만 일순위는 사람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구원은 고통이 수반되어야 빛을 발한다.
실제로 우리는 고통의 순간이 찾아와야 구원받을 수 있다. 아니, 고통스러운 순간에만 구원이 구원으로 느껴진다. 실제로 고통이 없을 때 구원이란 단어를 꺼내본 적이 없다. 주위에는 언제나 나를 구원할 사람들이 있지만 필요로 할 때가 아니면 피부에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의 키워드를 구원으로 잡은 엄청난 계획이나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1월 1일이 되는 날, 눈을 뜨자마자 '구원'이라는 단어가 말풍선처럼 머리 위로 떠올랐고 그게 올해 내가 풀어야 할 숙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구원을 연결 지었다. 그러다 보니 고통의 순간이 아니어도 구원은 항상 주변에 가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작가교육원 동기 모임에서 심리학 수업을 같이 듣기로 약속하고 사이버대학에 등록했다. 한국장학재단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으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망했구나 생각하던 차에 보훈청에서 연락이 왔다. 국가유공자인 아빠 덕에 보훈청에서 장학금을 받게 된 것이다. 한 번도 아빠가 국가유공자여서 감사한 적 없었는데 과거 아빠의 삶에 대해 되짚어보게 되었다. 아빠의 이해할 수 없는 고집과 편견과 지지정당에는 나라를 위해 싸우느라 잃어버린 삶에 대한 보상심리가 깔려 있다. 그게 그렇게 싫었는데 그 덕에 장학금을 받게 됐다. 그뿐 아니라 아직 시작에 불과한 햇병아리지만 피 묻은 장학금으로 배우는 심리학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더불어 아빠에 대한 미움도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 내 태도가 달라지자 늘 굳어 있던 아빠의 표정도 온화해짐을 느낀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나는 구원을 보게 된다.
구원의 다른 이름은 ‘감사’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당연’은 일의 앞뒤 사정을 놓고 볼 때 마땅히 그러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보통은 앞뒤 사정은 무시하고 본다. 그렇기에 당연한 건 말 그대로 당연히 받아야 할 혜택인 것이다. 하지만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당연에 포함되어 있는 수많은 고통과 노력과 사랑을 발견하게 되면 함부로 당연하다는 말을 쓸 수가 없다. 당연히는 없다. 감사만이 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감사하게 여기면 구원이 찾아온다.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느끼게’ 되면 세상은 달라진다. 엄밀히 말하면 세상은 그대로이고 나의 사고가 달라진다.
변화라는 건 이런 게 아닐까?
구원을 통해 아니, 감사를 통해 그동안 보거나 느끼지 못했던 게 보이고 느껴지면서 틀에 가둬두고 작게만 보아왔던 세상을 더 크게 보는 것!
그러니 무너져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내 마음을 가둔 틀이어야 한다. 틀을 깨부순(깨부수고 있는) 내가 누군가에게 구원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