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말을 걸다

융 아저씨에게 배우는 마음의 언어

by 다시봄

“너 예전부터 팩폭 날리고 그랬어.”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 남아있을 정도로 받아들일 수 없는 내 모습이었다. 나는 항상 조심성 있고 친절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팩트폭격을 했다고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내가 그랬다고? 나 그런 사람 아냐.”

“너 원래 그랬거든?”

“…니 기억 속의 내가 그런 사람이야?”

“응! 아 물론 요조숙녀같을 때도 있고 신중한 면도 있긴 하지. 그래도 니가 팩폭 날리던 게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 한편으론 통쾌하기도 했거든.”

통쾌라는 말은 그 순간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생각하던 나와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내가 다르다는 게 충격일 뿐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그때부터 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다양한 면이 있을 수 있다고 이론적으로는 알았지만 내가 모르던 내 모습을 대면하니 이론이고 뭐고 다 소용없었다. 그저 충격 그 자체였다.

하지만 잠시 내보인 마음일 뿐이라고 부정만 할 순 없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만나온 친구가 보기엔 잠시가 아니었을 뿐더러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내가 낯설긴 해도 아니라고 반박할 수 없었다.


‘내 속엔 내가 많다.’

융은 그걸 페르소나와 그림자라고 말했다. 페르소나는 겉으로 드러난 다양한 역할같은 것이고 그림자는 감춰진 모습이다. 그림자는 내가 만들어낸 ‘나’라고 생각하는 모습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나. 숨겨져 있지만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나.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다!


낯선 나를 만나는 일은 전혀 유쾌하지 않다.

그림자는 계속 말을 걸지만 나는 그를 모른 척 한다.

밀어내고 싶고 부정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나이다. 내가 인정하는 나만 내가 아닌 거다. 아마 그래서인 것 같다. 내가 약해졌을 때 치고 들어오는 그림자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에 취하지 않고 떨리는 무대 위에 올라가지 않았다.


친구의 말을 통해서 숨겨진 마음과 대화하게 된 나는 그 후로 어땠을까?

여전히 팩폭을 날린다. 하지만 지금은 내게 그런 면이 있다는 걸 의식하면서 날린다. 팩폭은 촌철살인이 되기도 하고 사이다 발언이 되기도 한다. 모르고 하는 것과 알고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인정하게 되니 마음이 편해진다. 누군가는 그게 내 매력이라고까지 한다.


나는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집에서 회사에서 학생으로서 부모님에게 친구나 지인에게 나는 각각 다른 사람이다. 집에선 게으르고 책상보다는 침대를 좋아하는 나로, 눈치를 살피며 소심한 항변을 늘어놓는 회사원으로, 부모님 앞에선 아직 아이같은 막내딸로, 시험은 못보지만 출석은 거르지 않는 학생으로, 술 잘 마시고 팩폭 날리는 친구로 살아간다. 돈 자랑하는 사람은 싫어하지만 돈 벌고 싶은 욕망이 있고, 자기의 신념 안에 갇힌 융통성 없는 사람을 미워하면서 나만의 개똥철학을 남에게 강요하기도 하는 모순적인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조금은 알겠다.

모순이란 게 단지 모순은 아니라는 것을. 모순은 내 안의 또 다른 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 뿐 모순이라고, 이중적인 태도라고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내 안에 얼마나 많은 게 있을지 모르기에 그들이 말을 걸어와 자신을 봐달라고 할 때 과연 손을 잡아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한명씩 차근차근 만나보려고 한다.

친구를 사귀듯이 천천히. 나와 달라서 거부감이 든다면 더더욱 그와 손잡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만나다보면 정들 날이 오지 않을까?




브런치작가 김덕성님이 진행한 ‘ 심리학 에센셜 클래스’ 강의를 듣고 어마어마한 생각들이 물밀듯이 몰려와 몇 자라도 적어봅니다. 강의 완전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