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그에게도 말 못 할 사정이 있었겠지...

by 다시봄

반쪽짜리 집에 사는 꿈을 꿨다. 외관은 멀쩡하지만 지지대가 없는 허울 좋은 집. 툭 건드리면 푹 무너져 내릴 부실한 집. 지금의 내 모습 같아서일까? 나를 버린 그놈이 생각났다.




10년이 지났지만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의 결정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수도 있다는 걸 뼈아프게 느끼게 한 그의 입장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왜 지금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그에겐 아버지가 없었다. 집을 나갔다고 들었다. 그의 어머니는 남편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무책임한 인간이라고...


그래서 그의 집에선 아버지라는 단어가 금기어였다. 4년을 만났지만 아버지에 대한 자세한 사연을 듣지 못했다. 그만큼 지우고 싶은 존재였나 보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를 그리워했고 찾고 싶어 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어머니가 채워주긴 했지만 어머니는 그에게 엄격한 사람이었다. 그는 똑똑하고 자상했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늘 부족한 자식이었다. 겉으로는 어머니를 존경한다고 말했지만 난 알고 있었다. 그가 어머니를 무서워하고 있다는 걸.


그는 나와 만나는 동안 가족에 대한 말을 아꼈고 그의 선택을 존중했기에 캐묻지 않았다. 어쩌면 거기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르겠다.


숨기고 싶어 하는 그의 속마음을 들췄어야 했다. 속시원히 털어놓게 했어야 했다. 그의 인내를 참지 말고 말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야 했다.


두려웠다. 건드리면 그가 떠날까 봐. 가슴 깊이 묻어둔 비밀을 들쑤시면 그와 헤어지게 될까 봐.


결혼을 앞둔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를 생각했을 거다. 틀어진 부모님의 사이처럼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불안에 사로잡혔을 거다. 자신이 아버지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자 두려웠을 거다. 때마침 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했을 거고 무서운 어머니의 말을 거역하지 못했을 거다.


어쩌면 깨져버린 사랑에 대한 합리화 인지도 모른다. 나를 설득하기 위한 완벽한 소설 인지도.


하지만 그가 안쓰럽다. 이건 진심이다. 언제쯤 어머니의 손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왜 지금 그를, 그놈의 입장을 대변하려고 하냐고 하겠지만 우리가 함께 먹었던 멍게 철이 다가와서 그런가 그를 잠시나마 이해하고 싶어 진다. 반쪽짜리 집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진 것일 수도... 이러다 또 복수를 하겠다느니 잘 사나 두고 보겠다느니 할지도 모르겠지만...

오늘만큼은 그를 용서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