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야 보이는 것들!
이번엔 회사에 다니면서도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입사 후 퇴근시간이 평균 9시가 되다 보니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일은 바쁘고 시간은 없고 피로는 누적되고. 회사에서 벗어나고 싶은 강한 충동이 느껴져 결국 연차를 썼다.
푸르른 숲과 잔잔한 호수, 여유롭게 노니는 새들이 있는 곳. 심신의 안정을 위해 가까운 곳에 있는 넓은 호수, 대청호에 가기로 마음먹고 집을 나섰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탈 때만 해도 괜찮았다. 적당한 속도감과 쾌청한 날씨 덕에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복잡한 머릿속은 싹 비우고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1번 국도 세종로 학나래교로 들어선 순간부터가 문제였다. 요즘은 곳곳에서 구간단속을 하지만 그 구간은 끔찍했다.
은하수 교차로까지 7.3km를 70km를 유지하며 달려야 한다. 차도 많지 않은 구간을 70km를 유지하며 달리려니까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액셀을 밟는 것도 아니고 안 밟는 것도 아닌 상태로 운전을 하려니 몸에 바짝 힘이 들어가고, 시간이 좀 지나니 허리가 당겨 아팠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영겁 같은 시간이었다.
편안한 코스로 선택한 건데 편한 게 아니라 속이 터졌다. 그 와중에 내 차를 추월해서 속도를 내는 차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벌금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건가? 그냥 밟아버려? 이렇게 고문받느니 돈 몇 푼 내는 게 낫지... 마음과 달리 난 70km를 넘기지 않으려 엑셀을 더 신중히 밟았다.
체감으로는 1시간은 된 것 같은데 계산해보니 10분도 채 안 달린 셈이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이 그렇게 끔찍하게 느껴지다니.
구간 단속이 끝나가는 지점이 다가오자 아까 나를 추월해서 속도를 내던 차들이 보였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결국 목적지에선 만나게 되는구나…
순간, 3개월 간의 회사생활이 그려졌다.
아무것도 못하게 됐다고 투덜댔지만 어쩌면 나를 잠시 멈추게 하려는 구간단속 같은 게 아니었을까? 잘하려는 마음에 답답해하고 짜증냈던 모든 일들이 추월해 가던 차들처럼 느껴졌다.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는 건 마찬가진데 혼자만 미친 듯이 달리느라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 것 아닐까?
구간단속이 끝나면 마음껏 속도를 낼 줄 알았는데 어느새 70km에 익숙해져 있었다. 액셀을 밟았는데도 75km를 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80km 단속 구간에 들어섰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르던지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밟고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작가가 되려는 마음에 글쓰기에 조급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목표만 보고 달리기만 했다. 그래서 자주 실망하고, 지치고, 힘들어하다가 포기했다. 그러지 않아도 돌아서 돌아서 가도 결국 지금 가는 길이 가야 할 길인데… 내가 선택한 길이라면 조금은 느긋해도 되는데… 누굴 원망하고 비난할 필요도 없는 일인데…
대청호에 도착했다. 예전에 와봤던 드넓고 시원한 호수가 아니었다. 도착한 곳은 대청댐 전망대였다. 급한 마음에 내비게이션 위치를 잘못 찍은 것이다. 여행객도 별로 없는 한산한 곳. 사람이 없는 만큼 볼 것도 없는 밋밋한 곳이었다.
내비를 다시 검색하고 대청호 오백리길 4구간으로 가기로 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코스다. 아까 오면서는 보이지 않던 길이 보였다. 나무 사이사이로 보이는 호수의 모습이 시선을 붙잡았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4구간으로 이어지는 중간이다. 차에서 얼핏 얼핏 보던 풍경보다 훨씬 아름답고 탁 트인 곳이다.
카메라 셧터를 정신없이 눌러댔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멋진 풍경이 담겼다.
멈추지 않았어도 4구간에 도착했을 테지만, 이렇게 멈춰도 결국 그곳에 가게 된다. 하지만 멈췄기 때문에, 멈춰야만 볼 수 있는 풍경과 빛과 소리와 냄새.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했던 말이 바로 이런 때 쓰는 말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영어 “Seize the day!”
라틴어 “Carpe diem!”
우리말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현재를 즐겨라!”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 지금을 살아가다 보면 가야 할 길에 닿아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