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갈팡질팡도 쓸모가 있다
나는 길치다. 같은 길도 반대 방향으로 걸으면 전혀 다른 길인 줄 아는 길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면 들어갔던 길이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모르는 길치다. 출근길도 내비게이션 없으면 다른 길로 가버리는 길치다.
처음 길치인 걸 알게된 건 고등학교 때다. 친구와 약속이 있어 터미널 가는 버스를 탔는데 목적지로 가는 버스 노선이 세 개 있었고 늘 타던 버스가 아닌 다른 버스를 타면서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 분명 기사님한테 물어보고 탔는데 엉뚱한 길로 가는 버스 때문에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로수도 다르고 건물도 다르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다른 낯선 길을 가는 기분은 두려움 그 자체다.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못마땅하게 보던 기사님이 “지금 내리면 돼!”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얼떨결에 내리긴 했는데 원래 알고 있던 터미널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닌 정도가 아니라 전혀 달랐다.
‘여기가 대체 어디야? 다른 터미널에 내려준 거 아냐?’
우왕좌왕 갈팡질팡이 시작됐다. 정신없이 헤매다 뒤늦게 이성을 찾아 이정표를 보고 차근차근 길을 따라가 보니 터미널은 맞은편에 있었다. 길 하나를 두고 오른쪽엔 터미널, 왼쪽은 버스정류장이었던 거다. 반대방향에서 내린 것뿐인데 완전히 다른 장소처럼 느껴지다니… 어이가 없고 화도 났다. 어쩜 이렇게 공간감각이 없을까?
뒤늦게 친구를 만나 자초지종을 침 튀기며 설명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단 한 마디.
“길치 중에서도 으뜸이다.”
그 후로 버스를 탈 땐 더욱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택시라고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어서 꼭 원하는 장소에 내려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니 조금 마음이 놓였다.
문제는 운전을 하면서부터다. 앞차와의 거리, 적당한 때 끼어들기, 똑바로 주차하기. 그게 문제가 아니라 길을 모르는 게 문제였다. 내비게이션이 없을 땐 무조건 아는 길로만 다녔다. 가보지 않은 길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꽉 막힌 운전 생활을 하다가 내비게이션을 달면서 여러 곳에 다닐 수 있었다.
그것도 잠시. 내비게이션을 켜니 길을 더 몰랐고, 알 필요도 없어서인지 점점 의존도가 높아졌다. 내비 없이는 운전이 안 되고 목적지가 신규일 때는 내비의 반응 속도에 따라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쓸데없이 고속도로를 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신기한 건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길치인 게 오히려 다행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는 거다. 만일 ‘길잘알(길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면 항상 다니던 길로만 갔을 텐데, 길치의 특권은 길이 늘 새롭다는 거다. 같은 길도 새롭고 모르는 길은 몰라서 새롭다. 목적지는 같아도 갈 때마다 다른 길로 가게 되니 목적지 가는 길은 늘 새로운 길이다.
길을 모르기 때문에 가다가 쉬어갈 수도 있고, 같은 장소를 다르게 보기도 하고, 운동도 된다.
어차피 앞을 알 수 없는, 아는 것 같아도 ‘다’ 알 수는 없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는 인생처럼, 초조하고 불안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새로운 길.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하면서 불안의 크기도 작아지고 심지어 도전하려는 마음까지 갖게 된다. 길치여서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