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꿈에서 영감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꿈을 그대로 시나리오로 옮긴 적도 몇 번 있다.
한 번은 스릴러 장르를 공부하고 있을 때였는데 꿈이 얼마나 생생하고 스펙터클 하던지 잠에서 깨자마자 폭풍 메모를 했다. 자료조사, 대본 완성까지 일주일 만에 일사천리로 완성해서 작법 수업 중에 공개했다. 좀비가 된 연인을 찾는 이야기였는데 지금 봐도 소재가 신선하긴 하다. 물론 결과는 대참사였지만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꿈의 등장인물과 나는 비슷할 때도 있지만 전혀 다른 경우도 많다. 그래서 답답하고 불쌍할 때도 있지만 통쾌하고 스릴 넘치기도 한다.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꿈속의 내가 현실을 '적극' 반영한다고 믿게 된 건 나 자신이 복잡한 사람이라는 걸 자각하고부터다.
인정받고 싶으면서 동시에 드러나길 싫어하고
사랑받고 싶으면서 동시에 사랑하길 두려워하고
작가가 되길 원하면서 동시에 글 쓰길 주저하는 나.
현실에서 하지 못하는 복수를 꿈에서 대신하고,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이상을 꿈에서 이루며 대리 만족하기도 한다. 꿈은 현재의 고민과 걱정의 연장선이다. 가끔은 해답도 제시해주는 고마운 동반자이다. 그때부터 기억나는 꿈은 모두 메모를 해뒀다. 꿈을 통해 나를 알게 되고, 꿈을 통해 '꿈'을 실현하게 될 거라는 기대가 생겨서다.
내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다.
방송작가로 일할 때는 늘 '작가’였지만 그 후 직장인으로 일하는 동안은 '작가 지망생'으로 살았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다시 '작가’라는 호칭이 붙긴 했지만 아직까지 내가 원하는 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채워지지 않는 빈 수레를 끌고 다니는 기분이다.
그런 내게 일침을 가한 친구가 있다. 작가로 데뷔한 친구다. 그토록 원하던 드라마 작가가 된.
데뷔만 하면 작가 지망생이 아니라 진짜 작가가 된 거니까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네. 사람이 아니라 글 쓰는 기계가 된 것 같아. 작가 지망생일 때는 미래가 불확실하지만 희망이라는 게 있었고, 글 쓰는 게 재밌었는데...
그때가 좋았다는 걸 이제 알았어.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그러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진지한 고민과 생각들을 공유했던 친구가 그토록 원하던 자리에 가서 그런 하소연을 하는 걸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목적을 향해 가고 있을 때는 괴롭고 불안해서 얼른 목적지에 닿기만을 바라지만,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행복하다는 보장은 없다.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니니까. 이룬 게 다 이룬 건 아니니까. 그래서 가고 있는 길에서 행복을 느껴야 한다. 목적지에서 과정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가 없도록!
자면서 꾸는 꿈은 또 다른 나이고, 이루고 싶은 꿈은 내가 가고 있는 길이니까.
꿈을 꾸고 있는 지금을 즐겨야 한다. 자면서 꾸는 꿈까지도 즐겨야 하는 이유다.
그림 : 조카 태호가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그린 그림이다. 그림은 못난이지만 실제로는 배우 유승호를 닮았다. 실력의 문제일까 또 다른 자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