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본질이 뭔데?

'그 무엇'

by 다시봄

카톡 프로필에 오랫동안 ‘본질’이란 단어를 써 놓고 있다. 본질은 내 삶의 화두다!




본질에 처음 물꼬를 튼 건 드라마 작법 첫 수업 때였다. 강사였던 작가님이 칠판에 쓴 단어는 '격물치지'였다.


격물치지(格物致知) : 사물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여(격물) 지식을 넓히는 것(치지)


앎에 이르기 위해서는 모든 사물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래서 본질이 뭔데?'라고 스스로에게 되물었지만 아무리 깊이 연구해도 알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깊이 연구하는 게 어떤 건지조차 몰라 내가 아는 선에서 연구했다. 책을 읽고 논문을 찾고 사람을 관찰하고.


나름의 본질 탐구를 하며 지내다가 3년쯤 후에 과거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 한 편을 썼다. 예상하겠지만 또 그 마지막 사랑이야기다. 한 번은 토해 내야 할 것 같아 팩트 10, 픽션 90으로 대본을 쓰고 합평(글을 읽고 평가하는 시간)을 했다. 쓰면서 눈물까지 흘렸던 글인데 결과는 참담했다.


인물이 평면적이다. 대사에 감정이 없다. 설정이 작위적이다. 자극적인 요소에 자극이 없다 등등...


하나같이 형편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인물이 평면적이고 감정이 없다는 평이 가장 충격이었다. 왜냐면 '내 이야기이고 내가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떻게 평면적이고 감정이 없을 수가 있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합평 이후로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왜 나를 버렸을까? 나는 왜 그가 미울까?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왜라니? 왜일까? 왜였지?

그는... 나는... 우리는...


엄마가 반대해서, 나를 버려서,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요소가 아니라 스스로도 미처 알지 못했던 더 깊숙한 곳에서 나온 이유 때문이다.



깊숙한 곳? 거기가 어딘데? 그곳은 바로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신념이나 가치관처럼 거창한 것은 아니어도 내 삶을 지탱하는 '그 무엇'!



그는... 여러 가지 이유로 결혼이 두려웠고 나를 버릴 구실을 찾기 시작했고 어머니 핑계를 댔다.

나는... 완벽하게 짜 놓았다고 생각했던 미래의 계획을 무참히 부순 그에게 화가 났다.


단지 서로에게 지치고 사랑이 식어서 헤어진 게 아니다. 실연을 당했다는 사실만으로 미운 게 아니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그 사정에 깊이 깔린 배경 때문에 헤어진 거다. '그 무엇'때문에 미운 거다.


나는 가끔 일탈을 꿈꾸는 계획적인 인간이다. 계획에서 벗어나는 일을 싫어한다. 계획에 목매는 이유는 흐트러지기 싫기 때문이다. 흐트러진다는 건 버림받을 충분한 이유가 된다... 고 여겼다. 그래서 내가 버림받았냐고? 항상 그랬던 건 아니지만 그런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건 내가 아니라 부모님이나 가족 중 누군가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겐 '그것'이 삶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래서 그걸 망가뜨리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난다.


어쩌다 보니 또 자기 고백을 하게 됐지만 이런 식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그 사람의 '본질'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다.


본질에 다가가는 하나의 방법으로 '그 무엇'을 찾기 시작했다. 무엇들 중 하나이겠지만 그걸 찾아내면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더불어 쓰고 있는 글 속의 인물을 이해하는 데도 엄청난 도움이 된다.


누군가를 만나고 어떤 현상을 지켜볼 때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에 대해, 현재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한다.


"그래서 본질이 뭔데?"



사진 : 겨울의 거미줄